여자를 돕는 여자들
이혜미 지음 / 부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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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싸우고 ◆ 다정하게 빛나는 여자를 돕는 여자들

- 이혜미 인터뷰집

여자를 돕는 여자들/ 이혜미 인터뷰집/ 부키출판 



 

최근에 읽은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홍칼리 인터뷰집, 한겨레출판, 2022.11.30)」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접하는 인터뷰집이다. '연대와 공존'을 말하는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교차하면서 그 울림의 강도가 세졌다.

 

인터뷰어 이혜미 기자는 현재 한국일보에서 여성젠더페미니즘을 다루는 뉴스레터 '허스펙티브'를 보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는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여자를 돕는 여자들』,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균열을 내고 영토를 넓힘으로써 궁극적으로 다른 여성들에게 더 넓은 길을 열어 준 개척자 여성들을 조명하고자 붙여진 제목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If not me, who? If not now, when?"

- 엠마 왓슨

 

 

젠더뿐만 아니라 소수자, 약자를 향한 차별, 분노, 혐오까지 자신과 주변의 상처와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존재하고' '버티고' '발언함'으로써 경직된 세상을 균열 내고 있는 여성들, 9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볼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궤적과 나의 궤적이 겹치는 곳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하였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지.' 공감되면서도 씁쓸하고 미안함이 밀려오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여러분도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 콘텐츠 플랫폼 '뉴닉' 대표 김소연

 

'능력주의'로 공정을 말하는 기득권을 향해 일침을 던지며 '능력주의'의 이면과 '능력'이라고 이름 붙은 스킬의 집합체가 포괄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순간 본질보다는 한계와 선이 그어지는 듯한 상황에서 이를 넘어서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또 '여성'에 국한되지 않고 대부분의 사회 담론과 운동에 따라오는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정보기술 분야의 여성 창업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가 진짜 잘해서, 누군가가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김소연 대표의 단단함이 전해져 왔다.

 

 

자신을 믿고 가세요

함께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논픽션 작가 하미나 · 과학기술학자 임소연

 

과학 안에서 여성의 영토를 넓히고 있는, 과학기술여성연구그룹의 공동설립자 하미나, 임소연의 이야기다.

과학기술학은 하나의 과학기술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적용되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바라보면서 세상은 미처 알지 못했던 '빈틈'을 찾게 된다. 인종·젠더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은 과학기술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설명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배제하는지.

성형수술을 주된 연구 주제로 삼은 임소연과 여성 우울증을 탐구한 하미나는 이런 과학기술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돌베개, 2022.11.11)」을 출간한 임소연 과학기술학자를 이렇게 지면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차별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흔히 취하는 선택 중 하나가 '내가 더 잘하면 되겠지'라고 마음먹는 거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선택이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될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목소리가 덩어리지면 권력이 생겨요.

 

 

누구도 내 영혼에 손톱만큼의 균열도 낼 수 없어요

-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나임윤경

 


 

인터뷰들 중 가장 와닿은 인터뷰였다. 지향점, 가치관 그리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의 삶은 너무나 당당하고 눈부셨다.

 

"성평등을 위해 타자와의 공존을,

20, 30대 구성원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비전,

그리고 맥락을 고려하시겠다고 했던

첫 만남을 기억합니다. (…)

일상과 관계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셨던

그 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퇴임 자리에서 받은 감사패 문구이다. 성평등, 일상과 관계의 민주화. 개인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로 생활하는 사회를 향한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재임 시 직접 원고를 쓰고 목소리 출연을 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제목의 6분짜리 교육 영상이 화제의 중심에 섰었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호도한다'라고 의도적 곡해와 저급한 주장으로 본질을 훼손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더 쉽게, 누구나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성평등 언어를 다듬어 나갈 것이라 다짐하게 된다. '절대적 위치'란 없으며 어느 누구나 상대적으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우리의 시민적 의무를 말하고 있는, 중요한 본질을 너무나 쉽게 부숴버리는, 의도된 행위에 집중하고 달궈지면서 심해지는 젠더 갈등, 혐오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공존과 연대, 배려를 말하고 이끌어내는 데도 시간이 너무 부족한 데...

 

젊은 여성들 내 '자기 계발 서사'에 대한 나임윤경 교수의 상상력에 온마음이 갔다.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은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면,

한 사회에서 그런 엘리트들이 할 일은 탑을 쌓는 게 아니라 대청마루 같은 평상을 까는 것이어야 한다."

그의 삶이 보여주고 있기에 후배 여성들에게 더 진실되고 묵직하게 와닿는 말이 아닐까. 다같이 편히 여유있게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대청마루, 떠올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임윤경의 '사회문제와 공정' 교과목의 강의 계획서

류호정의 악플 전시회

서한나의 여성들을 위한 사회주택

김은희의 민사소송 판결문

 

이 책을 통해 만난 이들은 연대와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나섰더라면 다른 이가 겪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후회와 반성을 딛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내딛는 걸음에 매번 더 큰 무게를 싣는다. 함께 살아남기를 바라고 나를 위한 용기와 결국에는 다른 이를 위한 희망이 되는 내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희생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라는 한승희 글로벌리더쉽컨설팅 대표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과 팁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이라 서로에게 다정한 길이 되지 않을까.

 

 

"야, 아무것도 아니야." 힘겨운 지금을 사는 여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주는 곁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이 책으로 다시 일어서 버티는 이들이 보인다.

현상을 바라보는 데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경제적 이득이 아닌 사람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 '개인'이 뚜렷해진 세상에서 '우리' '동료'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세상을 그리는 이들이 있어서 힘이 난다. 경직된 사회, 단단한 차별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은 '우리'를 말하는 이들의 응집된 힘과 목소리일 것이다.

 

당신을 도운 여자는 누구인가요?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 고민해 보자. 그리고 이런 질문이 필요없는 그날을 그려본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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