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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독서법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9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평점 :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 우리에게 희망의 시간을 전해주는 김선영 작가를 소설집 『바람의 독서법』으로 다시 만났다. '시간과 바람'의 공통분모로 다가온 이 책은 다섯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 바깥은 준비됐어
- 바람의 독서법
- 흔들리는 난타
- 나는 잘 지내
- 중독
김선영 작가는 세간에서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미완의 시기'라 칭하는 '청소년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순간으로,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그려나간다.
"자랄 때마다 가지를 넓혀 가는 건 나무나 사람이나 똑같지 않니?" (바깥은 준비됐어, p18) 소설 속 글처럼 자신이 느끼든 못하든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그 하루를 자양분 삼아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사람의 나이테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제각각 다른 모양일 것이다. 같은 나이의 묘목들이 다른 굵기와 높이로 자라듯 같은 나이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넓어지는 가지의 마디를 느끼는 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전해지는 소설이다.
배움의 터전인 학교, 하지만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할 뿐 아니라 성적과 다양한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채워나가야 하는 중압감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리고 어울리는 무리들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미묘한 신경전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불필요한 긴장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바깥은 준비됐어
집에서 멀고 원하지 않았지만 배정된 귀족학교에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오유라'였다. 어린 시절 큰 상처를 준 아니 주었다 믿은 존재.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인서는 엄마의 추천으로 '쉼·숨·숲'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비둘기 알을 고양이에게서 보호하려고 보초를 서고 그림을 그리면서 깊숙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의 힘. 글처럼 그림에도 그린이가 묻어난다. 엄마를 동굴로 숨어드는 박쥐로, 자신을 구덩이에서 환하고 활기찬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쥐로 그린 인서는 이제서야 밖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단단한 무언가가 생긴 듯하다. 가지가 뻗어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생명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셀지도 모른다. 겁먹지 말자."
바람의 독서법
표제작인 이 단편은 참 흥미로웠다. 영재인 형이 엄마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게 되면서 자유를 만끽하게 된 강우는 이를 지키기 위해 어중간한 삶을 선택한다.
바람을 타고 세상 구석구석에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희원. 사원 앞의 타르초, 초원의 룽다에 기록된 경전의 말씀이 바람을 타고 멀리 있는, 글자를 모르는 중생들에게 전해질 거라는 바람과 믿음이다. 이런 강한 염원을 담은 바람이 강우에게 머물렀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강우는 형 때문에 어중간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 바람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흔들리는 난타
"언제까지 그렇게 어리광 부리며 살래? 이제 엄살 그만 떨 때도 되지 않았니?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정말 소중한 건, 네 주변이 아니라 바로 너야, 알겠니?"
'말'을 주제로 그린 채원의 그림을 유심히 본 미술 선생님이 표창처럼 던진 날카로운 말들이 꽂힌 후 달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변화는 분명 어렵다. 하지만 그림과 난타, 채원이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나에 대한 예의가 어떤 건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나는 잘 지내
예뻤던 언니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언니를 지키기 위해 매일 마중 나갔던 엄마는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생기를 잃은 언니의 모습은 동생이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서도 짊어져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딸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엄마에게 딸이 말한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로 이모처럼 되지 않아."
"이모 잘못이 아니잖아. 그냥 사고 같은 거 아니야? 교통사고 같은."
중독
"유일한 사치?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낭만 같은 거. 사는 데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게 없으면 건조해서 견딜 수 없는 데,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
쓰다듬고 보듬던 수집품이 홍수로 사라졌지만,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는 듯한 엄마에게 "엄마한테 수집품은 뭐였어?"라고 물었다. 엄마의 손길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손'에 대한 집착과 중독은 낭만일까? 스스로에게 묻는 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바람의 독서법』 단편들 속에서 여러 엄마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엄마이기에 더 크고 뚜렷이 다가오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다 할 수 없지만 미처 닿지 않거나 어그러진 모양새로 숨을 조이는 폭력이 될 수 있어 마음이 저미었다.
직장에서 갈등을 겪고 사표라는 큰 결단을 내리는 엄마, 영재 아들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해 은둔에 들어가게 만든 엄마, 가부장적인 남편에 반항하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다 애인을 만든 엄마, 예쁜 언니의 끔찍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불안해 딸에게 집착하는 엄마, 한결같은 태도와 거리로 자식을 대해 오히려 손길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엄마.
소설집 주인공들은 이런 엄마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협화음과 오해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자신을 소홀히 하거나 돌보지 않는다. 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집착하여 비밀을 만든다.
"새순들은 방금보다 조금 더 펴져 있을 것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변화한 주체인 흔들리는 난타의 채원이처럼 진실되게 표현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주변이 싫어 놓아버린 게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 채원이는 빛나는 생명력을 뽐냈다.
"지금 뭐 하는 거니?"
바람에 담긴 누군가의 간절한 기원이 잠시 머물다 가는, 놀라운 경험을 하듯 바람을 쐬고 잠시 생각에 잠겨보길 바란다. 오늘, 나는 나로 살았는지.
나의, 너의, 우리의 하루가 채워져가는 과정이 어떤 모습이든 아름다울 거라 믿는 소설 『바람의 독서법』으로 우리 집 십 대들에게 다정한 격려를 전해야겠다.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생명의 강인함으로 오늘을 바로 서기를 응원한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