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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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민족,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자연스레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나'라는 의식은 개개인을 결집시켜 사회적 연대를 이뤄 나라를 강건하게 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라 간 경계가 느슨해져 온 오프라인 소통 모두가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가 되었다. '지구촌', '세계시민' 등 국적이 아닌 전 세계적 관점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이 낯설지 않다. 국경은 희미해지고 디지털 스페이스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인류의 모습이 익숙한 요즘이라 '국가'의 존재, 울타리를 의식하지 않았다. 아니,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역설적으로 '국가' & '국적'이 강조되는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벌어진 국가 이기주의를 떠올려 보자. 강대국들의 백신 선점으로 가난한 나라들은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 위기 앞에서 각국은 '국경'을 단단히 봉쇄하고, 자국민을 우선으로 지키는데 힘을 쏟았다. 정책과 제도로 보호받을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배타적인 자세는 차별을 야기한다.

 

한 나라 안에서든, 나라 간에든 차별은 존재한다. 차별로는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차별이 만드는 생채기의 주인은 특정인이 아니다. 누구나 될 수 있다. 오늘 '내 일'이 아니라고 내일 '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이란주 글/한겨레출판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다룬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책은 '이주민'에 관한 총체적인 접근이다. 그들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그들의 꿈과 미래를 담고 있다.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이 아닌,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는 본인의 이야기는 선명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얕고 좁은 시야에 갇힌 '나 자신'이 보였다. 의도가 분명한 배제와 차별이 큰 벽이고 높은 산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구분 짓고 선을 긋는, 선량한 차별도 이주민에게는 깊은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주 노동자, 이주민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란주 작가는 이주민 24명의 삶과 꿈을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엮어 풀어내고 있다.

이주 1.5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함께 자라다 -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함께 일하다 - 다양한 이주민의 삶과 꿈을 보여준 함께 살다 - 새로운 시대를 향해 힘껏 나아가는 이주민의 따뜻하고 당찬 용기가 가득한 함께 변화하다


 

 


 

<이주노동자가 웬 헌법 소원이냐고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우다야 라이 씨의 이야기 중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 발표 사례가 나온다. '기막힌 이야기에 놀라지 마세요.'라는 당부처럼 비참하고 끔찍한 노동 현실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주 노조가 청구한 위헌소송 결정에 관한 대목에서는 분노하다 염치가 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23일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청구를 기각했어요.

외국인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사용자가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고, 또 더 나은 근무 환경과 임금이 있는 직장에 외국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내국인의 고용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외국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딸에게 '독도는 한국 땅' 야무지게 말하라고 가르쳤다> 혐오에 대응하는 일본 출신 사토미 씨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출신 민족이나 국가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신 배경을 이유로 차별하고 놀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양한 나라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을 거예요. 누구를 만나든, 그 출신 배경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개인의 생각과 처한 상황을 잘 살펴보며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랍니다."

 

<왜 외국인들을 여기 모아놨어?> 함께 일하고 함께 늙어갈 한국인 조니 씨 이야기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귀화를 했어도 "한국 사람은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는 그의 처지와 심정이 어쩔지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차별에 익숙해요. 직장에서 겪는 하대와 무시는 그냥 일상이어서 우리에겐 공기와 같은 일이죠.

한국은 신기하게도 두 가지가 다 있는 나라예요.

무시와 차별이 심하면서도 따뜻한 정이 있어요.

"야, 돈 많이 벌었어? 나라 언제 가? 돈 벌었으면 빨리빨리 나라 가야지?"

"어디 가? 또 일하러 가? 한국 사람 됐다고 너무 한국 사람처럼 일만 하는 거 아냐?"

 

너무 정겨운데 예의는 없는, 무례하고 다정한 참견을 견디며 노후를 준비하는 조니 씨께 고마움이 전한다. 한국인 아내를 만나 사랑해서 귀화까지 했는데 한국인으로 대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그는 굳세다.

 

<뒷짐 진 열 살 소년 한달라를 아시나요> 팔레스타인에서 온 유학생 마흐무드 알나자. 표지에 등장하는 뒷짐 진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팔레스타인 만화가 '나지 알리'가 그린 '한달라'라는 캐릭터다. 뒷짐 진 손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식 해결책을 거부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고슴도치 같은 머리를 하고 기운 옷을 입고 항상 뒤돌아서 있는 아이는 맨발의 난민캠프 아이들 모습 그대로다. 아이의 얼굴과 표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팔레스타인이 자유와 평화를 되찾는 날 한달라가 함박웃음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열 살 소년 한달라가 뒷짐을 풀고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생명을 지니고 힘차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이주민이 내게 들려주었던 그들의 상처, 고통, 고민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사랑, 행복, 꿈은 가볍게 흩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이 속한 이곳,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길 염원한다. 자연스레 우리에게 스며들어 이주민에 국한된 현실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되는 날을 그려본다.


 

 

 


약 30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다. 30년의 세월 동안 우리나라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솔직히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서로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의해 시작된 교류이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주 1세대뿐만 아니라 2,3세대까지 확장되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주민을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평등하고자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수긍한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는 아니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주민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 준 이란주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진실되고 따뜻하고 용기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선을 알았고, 넘게 해주었다. 어느 나라 출신이든 우린 같은 '사람'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자. 함께 사는 세상,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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