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평점 :
이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때마다 이 소설이 떠오를 듯하다. 아니, 한동안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지 못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와 상반되는 고통과 폭력 그로 인해 사라진,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영혼의 절규가 오롯이 새겨진 그 노래를 말이다.
너무 빨리 금방 읽었다. 이 빠른 호흡 때문에 소설이 주는 충격과 파장이 너무 컸다. 집중한 만큼 일우에게 빠져든 만큼 결말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크리스마스 캐럴/주원규/자음과모음/네오픽션
'반인간선언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크리스마스 캐럴]은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온 세상 사람들이 사랑의 온기를 나누고 갈구하는, 거룩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터져버린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그로 인해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주일우가 펼치는 핏빛 복수는 섬뜩하다기보다 처절했다. 오로지 하나, 그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주일우의 집념은 그를 괴물로 만들고야 말았다. 복수의 길 끝에 마주하게 될 진실을 주일우는, 우리는, 이 사회는 감당할 수 있을까?
날카로운 펜을 사정없이 휘둘러 토해내는 악의 세계, 폭력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살아남는 방법 밖에 익히지 못한 이들을 그린 작가는 그들을 만들어낸 사회, 학교에 주목한다. 주일우, 고방천, 문자훈, 백영중, 최누리 그리고 주월우와 손환을 그렇게 만든 진짜 악의 실체를 파헤친다. 악의 민낯을 낱낱이 들추는 그의 손길에 오히려 자비를 베풀라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가면 속 진실은 잔인하다. 손환의 눈빛, 그 눈빛을 아로새긴다. 분노도, 증오도, 울화도, 놀라움도, 두려움도,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지독히도 냉정하고, 지독히도 객관적인 눈빛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크리스마스 아침, 성곡 아파트 17동 물탱크 청소를 하던 이들이 시체를 발견한다. 정신지체 3급 장애였던 주월우의 죽음은 단순 익사 사고로 처리되고, 단 3일 만에 부검도 없이 화장 처리되었다. 쌍둥이 형인 주일우는 이 모든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어느 곳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눈을 뜬 일우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눈을 마주하게 된다.
한 줌의 분노도, 가슴이 조여드는 슬픔도 없었다.
그 순간 주일우는 자신이 죽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같은 얼굴, 같은 몸, 같은 옷을 입고 자란 주월우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다.
_1장. 괴물의 등장 p.36
그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주월우와의 마지막 통화를 기억했고, 진실의 퍼즐을 직접 맞추기로 했다.
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 소년. 악을 응징하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악이 되었다.
'난 괴물이 될 수 없다. 아니, 괴물이 되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만.'
_ 3장. 괴물들의 사회학 p.169.
소년원에서 만난 교정 교사 한희상과 상담 교사 조순우외 다른 어른들과 원생들 모두 방관자들이다. 모르는 척 정도를 넘어 무관심한 그들의 태도에 가슴이 답답하다. 학교에서든 소년원 밖 사회에서든 이런 이들이 가장 많다. 그렇기에 한희상도 조순우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고방천, 문자훈 무리와 주일우, 주월우 형제 그리고 손환이 우리 옆에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얼굴엔 '이건 너희들끼리 해결할 문제야'라는
무책임한 무관심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_2부. 괴물의 이유 p.111
소년원은 푸른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여 상식과 사회적 통념이 깡그리 무시되는 지옥으로 그려진다. 무소불위의 힘으로 원생들을 굴복시키는 한희상, 하지만 주일우가 들어오고는 모든 게 틀어진다. 그 이후 자신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고방천까지 등장하여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자신의 몸이 바로 자신의 신념인 고방천이나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고자 했으나 방법을 모르고 시간도 놓쳐버린 주일우 모두 가정, 학교,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폭력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아이들이었다. 소년원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 없이 지옥이었던 그 아이들에게 한희상 본인만 모를 뿐 특별할 게 없는 어른이었다. 폭력으로 군림하던 권력자의 몰락은 씁쓸한 맛을 남긴다. 오히려 상담 교사 '조순우'를 눈여겨보게 된다.
주일우의 복수극은 성공인가.
복수 하나만을 목표로 시작한 암담하고 무거운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은 마지막 장까지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지 못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남은 이들의 내일은 해가 떠오를 것인지 궁금하다.
이 [크리스마스 캐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가 제작되어 12월 7일 개봉 예정이다.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 <구해줘>에서 흡입력 있는 연출을 선보였던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핵심 인물인 주일우·월우 쌍둥이 형제는 가수이자 배우인 박진영이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활자로 만난 세상은 지독히도 아프고 쓰리고 자극적이었는데, 이를 영상으로 담아낸다고 하니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 그 폭력의 이유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