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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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이지 소설집/한겨레출판




팔, 다리가 다른 부분에 비해 과장된 신체로 표현된 두 여성이 붉은 길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역동적인 표지가 시선을 잡아끈다. 【나이트 러닝】이지만 푸른 하늘은 그들이 달리는 길 옆에 봉긋 솟은 무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달리고 또 달리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우리 아니 봉인된 선과 악이 벌어진 틈새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생에서 곁에 있는 이의 숨소리에 비로소 평온한 잠을 이룰 수 있다.

 

사랑하는 이, 가까운 이의 죽음, 이별이 소재가 되어 그 상처에 새살이 돋기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움직여 행동하고 변화를 갈구하는 인물들에게서 '사랑'의 끊어지지 않는 생명력을 느끼기도 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듯 집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부터 당연한 관계와 노력해야 하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이끌리는 마음은 '사랑'의 범주만이 아닌 '운명'처럼 인연을 이어주게도 하였다.

 

 

찬바람이 불고 따뜻한 공간과 뜨거운 차에 마음이 가는 요즘에 딱! 어울리는 소설집이었다. 읽다 보면 마음이 시려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읽기도 하고, 주인공과 함께 울다 먹먹하고 멍해지기도 하였다. 지나간 것에 대한, 내가 놓쳐버린, 내가 놓아버린 것에 대한 설움에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기도 하였다. 헛헛하다가도 지금의 안온함에 감사하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갔다. 이리도 힘내서 사는, 이리도 섞여서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이들을 만나는 그 순간에 집중하였다.

 

소설집은 표제작인 <나이트 러닝>을 시작으로 8편의 이야기로 꾸려졌다. 유일하게 죽음이 등장하지 않은 <모두에게 다른 중력> 또한 '의안'이라는 생경한 소재가 주인공의 보장된 미래에 묵직한 무게를 더해 중력을 증가시켰으니 '죽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생명은 모두 죽는다.'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우리는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너머의 영속성을 갈구한다. 별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팔을 자르면서까지 환생을 바라기도 한다(나이트 러닝).

 

어떤 하룻밤은 아주 짧지만 어떤 하룻밤은 모든 것을 바꿔놓기도 한다.

나는 그 어떤 밤, 끝도 없이 달리며 생의 내력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트 러닝, 34)

 

 

 

<곰 같은 뱀 같은> 이야기에서는 한밤의 울음소리를 내는 이가 누군지 명확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울음소리라 생각하는 모습만 나온다. 울음소리에 죽음이 연결되고, 이는 슬픔인지 죄책감인지 모호하다. 사람의 얼굴에 새 몸통으로 그려진 고대 이집트의 영혼을 뜻하는 바(Ba)처럼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한 이 이야기는 꿈인지 여행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날카롭게 고개를 쳐드는 느낌이 좋았다. 나도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죽음과 퇴사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내가 언니를 찾아떠나는 이야기 <슈슈>

슈슈,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숨소리였다. 이지 작가의 명명법이 매우 맘에 들고 흡족하다.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와 좋아한다고 믿었던 나. 좋아한 적이 별로 없지만, 미워하지도 않는다 말하는 언니의 집에서 지난 시절 함께 했던 시간을,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따뜻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나 다르게 변해버린 언니의 현재와 실제를 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옆에서 아주 오랜만에 꿈 없는 잠을 잔다, 슈슈.

 

"한 번은 참새가 차에 치여 죽는 걸 본 적 있어.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거든.

새가 못 날면 죽어도 할 말 없지 안 그래? 근데 돌아서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법을 잊어버렸으면, 완전히 잃어버렸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슈슈, 66)

 

 

 

 

 

【나이트 러닝】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독특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드리, 드레, 은유, 온유, 단, 오리 가슴, 교호, 유구, 해원…… 어떤 의미로 지었을지 작가의 시선을 쫓아가고자 했으나, 닿지 못한 의미들도 있다. 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마음이 헝클어졌다가도 아니지, 나만의 감상이 더 좋다 싶어서 다시 읽었다.

타인의 악을 꺼내는 재능을 지니고 사랑을 계속 생각한다는 유구가 남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무덤에 기대어 누워 자신이 누워있기를 소망하는, 남겨져 기다리는 '나'를 애도하였다. 그가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것도 영원히 오해하는 것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랐다.

 

살아있는 우리는 작은 악과 작은 선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오늘을 보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것들을 베풀었든 저질렀든 오늘 여기 발붙이고 있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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