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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하는 마음 - 나날이 바뀌는 플랫폼에 몸을 던져 분투하는 어느 예능PD의 생존기
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카카오 TV에서 방영된 <톡이나 할까>
독특한 포맷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프로그램이다.
작사가 김이나의 카톡 토크쇼를 제작한 권성민 PD가 에세이집을 출간하였다. 벌써 3번째 책으로 예능 PD으로서의 고민과 생존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직면하는 마음/권성민 지음/한겨레출판
예능?!
권성민 PD의 말처럼 예능의 카테고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예능의 프레임과 포맷은 무궁 무궁해진다. 그는 드라마와 시사교양 그 사이 어디쯤이 예능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드라마(온전한 허구)이거나 확실히 시사교양인 것들을 빼고 난 뒤에 남은 애매한 것들이 모여 복닥거리는 곳이란다. 정해진 모양이 없는 만큼 자유롭고, 좋은 뜻으로 제멋대로인 예능판에서 10년을 살아남은 권성민 PD의 생존기는 예능을 향한 직진 열정이 가득하다.
MBC 예능국에서 PD 생활을 시작한 그는 상암동 시절을 회고하는 것으로 <직면하는 마음>을 연다. 그곳에서 PD 생활을 하면서 체득하고 연마한 기술과 자세 그리고 사람들과 시간을 노래한다.
옷차림부터 조금은 철이 부족하게 든 어른 같다는 분석까지 예능을 생활화하는 상암동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전해진다.
소비자인 시청자 입장에서 확 와닿는 이야기가 있었다. 방송을 만드는 PD에게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해도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편성'이란다. 죽이든 밥이든 '채우기로 약속한 자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채워줘야 하는 것'은 아날로그가 태생인 미디어의 숙명이다. 늘어지는 방송이나 편집된 방송을 보면서 그 이면의 수고와 아픔을 미처 읽어내지 못한 채 눈살을 찌푸렸던 1인인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PD, 제작진들이 가장 안타깝고 속상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으로 시청하고자 한다.
그는 PD 개개인이 시스템인 곳에서 8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뭐 하나. 다른 기본적인 것들을 탄탄하게 갖춰놓은 다음 뭔가 새로운 거 하나, 독특한 거 하나. 이 하나에 대한 고민이 프로그램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톡이나 할까?>에서의 '뭐 하나'는 '만나서 카톡한다'였다.
……
'세로 화면'이라는 형식이 정해지고 '카톡'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 기획의 '뭐 하나'는 '만나서 마주 보고'라는 조건이었다.
기획을 거쳐 MC 김이나를 영입하면서 <톡이나 할까?>는 생명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로 화면에 2,3 명의 인물이 핸드폰으로 연신 카톡을 주고받는 모습이 색달랐다. 추임새처럼 들리는 숨, 웃음소리 등 각종 의성어들은 카톡과 카톡 사이를 끈끈하게 채워주었다.
사실 '만나서 왜 카톡을 하지?' 생각했던 관객으로서 방송을 접한 후 "왜?"가 "오!'로 극적인 태세 전환을 하였다. 특이한 거 하나가 통했다. 아는 건데 새롭다. 이런 묘미로 예능 PD를 하지 않을까 싶다.
PD 스스로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 한국 방송업계와 나날이 새로워지는 플랫폼 모두를 겪어보고 '살아남는 콘텐츠'를 고민하는 예능 PD의 고군분투는 웃고 즐기는 재미와 감동을 표출하는 시청자들의 표현과 인정을 얻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실제'라고 느끼는 것에 강하게 반응한다. 진실에 좀 더 마음 놓고 감동하고 싶기 때문에 '거짓'에 민감하다. 권성민 PD는 이 마음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재구성된 현실'을 보여주는 예능 PD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한다. 즐거움은 주되 속이지 않는 것. 혹은 어디까지 마음 놓고 즐겁게 속아줄 것인지 정확하게 약속하는 것.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예능 PD로서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우려도 드러내고 있다.
규칙적인, 정기적인, 잦은, 단골의, 일상의 미디어인 TV는 오랜 세월 레귤러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세월은 끝나간다. 더 이상 레귤러는 프로그램의 기본이 아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독특하고 창의적인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일하는 재미는 있지만, 가끔은 괜찮을까 싶다고 한다. '틀면 늘 그 자리에' 있던 프로그램들이 사라져 간다. 이 예측 가능한 익숙함, 안온함, 지루함 같은 느리고 미지근한 덩어리들이 삶에서 자꾸 닳아 없어지고 있다. 익숙한 것들을 디디고 있어야 새로움도 느끼는 데, 디딜 곳이 점점 없어진다.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쾌감도 있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뛸 수 없다고 느껴지면 아찔하단다.
새롭고 창의적인 것만 항상 반가운 게 아니니 조금 낡고 지루해도 항상 그 자리에서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우리 삶에 계속 남아 있기를. 저자의 말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나만 그렇게 느끼지 않다. 다들 지치지 않게 익숙하고 안온하고 느린 것들이 받쳐주면 좋겠다.
예능 PD로서의 묵직한 고민들이 직업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자세와 연관된다.
세상이 좁은 게 아니라 어떤 좁은 세상의 안쪽 깊숙이 들어왔다고 느꼈다고 한다. 안주하지 말고 다른 물리적 공간으로의 이동은 새로운 마주침을 만들고 이는 세상을 섞는다.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야 하는 창작자들은 영감을 어디서 얻을까? 궁금하다. 김영하 작가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도 실렸지만, 권성민 PD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스위치를 켜고 사는 것'. 그냥 살되, 매 순간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사소한 것이라도 꼬리를 물고 이야깃거리를 따라가 보는 것. 좀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무언가 흘러만 보내지 않고 수집하는 삶 같다.
<톡이나 할까?>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한 점도 인상적이다. '베니'의 구경선 작가, 농인예술전문기획사인 '핸드스피크', 이길보라 감독.
구경선 작가와 이길보라 감독은 작품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좋았다. 그리고 핸드스피크의 섭외는 신의 한 수였다.
한번 웃겨봐라 버티는 시청자가 아닌지라 예능 PD에 대한 호기심과 선망으로 읽어내려간 <직면하는 마음>은 '스위치를 켜고 사는 것'으로 나에게 닿았다. 왠지 쓸쓸하고 지쳐가던 정신에 'ON' 스위치 불이 들어온 느낌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