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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인생 그림 - 자화상에 담긴 상처와 치유의 순간들, 2022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강필 지음 / 지식서재 / 2022년 9월
평점 :
자화상 :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
화가가 자기를 그린 초상화인 '자화상'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는 책 - 『화가들의 인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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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인생 그림/강필 지음/지식서재
강필 저자가 14명의 화가들이 남긴 자화상에 담긴 상처와 치유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덕분에 국적도, 나이도, 추구하는 바도 달랐던 14명의 개성 넘치는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예술가가 아닌 '기술자'로 분류되었던 시기의 화가부터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팽배해진 현대사회에서 자신을 상품으로 소비한 화가까지 너무나도 극과 극인 삶을 되짚어보면서 그림 속에 담은 화가들의 진짜 마음을 읽어내는 작업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화가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세상에 남긴 그림 특히 그들 스스로를 그린 초상화인 자화상이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당신의 그림이 내게 말해 주는 것들"
올해는 미술에 관련된 책과 인연이 많다. 그래서인지 14명의 화가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만큼 그들의 인생 이야기에 더 깊은 충격과 고통을 느끼고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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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이 알아주기 않아도 자신의 가치를 믿다 - 얀 반 에이크의 수수께끼
2.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만들다 -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기애
3. 폭군 고용주와 치열하게 일하는 법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처세
4. 그릇된 선택으로 자신의 미래를 망치다 - 카라바조의 살인
5. 성폭력의 트라우마를 딛고 거장이 되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복수
6. 편견과 차별을 이기고 최고 위치에 오르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계획
7. 쇠락해 가는 노년의 시간들을 담담히 기록하다 - 렘브란트 판 레인의 자세
8. 인간이 만든 지옥 같은 세상을 경험하다 -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암흑
9. 주변의 냉소와 멸시에 굴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노력
10. 삶을 덮치는 죽음의 공포와 이별의 슬픔에서 살아남기 - 에드바르 뭉크의 공포
11. 자식을 잃은 세상 모든 부모들을 위로하다 - 케테 콜비츠의 사랑
12. 내게 닥친 모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다 - 프리다 칼로의 고통
13.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를 사랑하는 법 - 프랜시스 베이컨의 분열
14.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상품이 되다 - 앤디 워홀의 전략
강필 저자는 '자화상'이라는 개념을 확장하여 적용하였다. 그래서 14명의 화가들 이야기 속에서 화가가 등장하지 않은 그림을 자화상의 좋은 예라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화가의 성격과 인생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부연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빠져들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니, 저자의 한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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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오늘날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붉은 포도밭>이 팔린 거의 유일한 그림인 비운의 화가였다. 남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생활할 수 없었던 그였지만, 자기 그림에 대한 노력과 확신, 자신감이 충만하였다. 10년이라는 짧은 작업 기간에 2,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강필 저자는 <빈센트의 의자>라는 그림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이 그림을 통해 빈센트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투박한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등받이와 네 다리, 골풀로 짠 좌판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인 의자. 군더더기 없이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것이 소박하고 직선적인 빈센트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가 필요하다. 좌판에 담배 파이프와 연초 덩어리가 놓여있던 빈센트의 의자와는 다르게 한껏 멋을 낸 의자로 좌판에 불 켜진 초와 지성을 상징하는 책 두 권 그리고 뒤쪽 벽에 조명이 커져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의자와 배경 모두 호화롭고 장식적이다. 그래서 저자 강필은 <빈센트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한자리에 있어야 진가를 발휘한다고 하였다. 의자 그림을 통해 두 화가의 성격을 분석한 작업이 흥미로웠다.
현대사회에서 대화가로 칭송받는 화가가, 명화로 추앙받는 작품이 그 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하여 불운한 삶을 살거나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괴리감에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 간극은 매번 돌고 돌아 더 커진 충격으로 현실의 나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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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너무나도 유명한 대화가인 그의 자화상을 마주하고 그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경건해졌다. 미켈란젤로는 절대권력자 교황의 주문에 2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벽화를 그렸다. 1541년 완성된 벽화 <최후의 심판>에는 성경 속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 성 바돌로매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으로, 예수 승천 이후 여러 나라를 떠돌며 포교 활동을 하였다. 아르메니아의 아스티아게스 왕자에게 붙들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문을 당한 뒤 참수형 또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그림에서 자신의 살가죽과 칼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살가죽의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최후의 심판>을 그릴 당시 미켈란젤로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일지옥에 빠져 건강을 해치고 정신이 피폐해져가던 그를 떠올려보면 괜스레 가슴이 저릿하면서도 감탄스럽다. 열악하고 내키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감으로 멋진 작품을 완성해 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고용주와 시대의 방해 속에서 마음고생하며 꿋꿋이 그려야 했던 대화가 미켈란젤로의 붓질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그림 속에서 자신을 괴롭힌 이들(고용주)에게 한 복수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틀리다?!!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는 경우도 즐겁지만, 알았던 사실이 재해석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변신하는 경우는 경이롭다.
'얀 반 에이크' <조반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유명한 그림이다. 여러 미술 서적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미술 시간에 배워서 익숙한 그림이다. 조반니 부부의 결혼 서약식을 증명하기 위한 그림으로 촛대, 신발, 개, 침대 조각상의 의미 등을 알아가는 과정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아 나도 아이들도 재밌게 감상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강필 저자는 새로운 해석을 펼치고 있다. 조반니 부부의 결혼식 시기가 1447년으로 그림이 그려진 1434년보다 13년 후라는 것이다. 더욱이 화가 얀 반 에이크는 1441년에 사망하였다. 새로운 증거들의 등장으로 이 그림의 의미는 180° 달라지게 되었다. 의견이 분분한 그림, 이 모든 가설들이 오히려 그림을 신비스럽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그림을 화가 얀의 자화상으로 분류했다. 그림 속 흐릿하게 표현되었지만 거울에 비친 남자들 중 한 명이 화가로, 거울 위쪽 벽에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 1434년"이 쓰여있다. 얀이 활동하던 시기에 화가는 손재주 좋은 기술자 신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숨어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얀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림에다 "ALS ICHKAN"(내가 할 수 있는 한)이라는 문구를 자주 넣었다고 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믿고 스스로의 존재를 그림에 담아냈던 얀 반 에이크의 호기를 오늘날 우리는 제대로 읽어내 그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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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책 표지가 강필 저자가 선택한 그녀의 자화상 <물이 내게 준 것>이었다. 화가가 자신을 반사하는 매개체로 거울을 많이 활용하는데 프리다 칼로는 욕조에 앉아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순간을 택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벌거벗은 몸이 감추는 것 없이 드러나 있는,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통해 몸에 새겨진 여러 기억들, 고통을 담아낸 자화상을 완성하였다.
<물이 내게 준 것>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이해하는 여정이 된다. '프리다'라는 개인적 삶과 사회·역사·문화적 배경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한 장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프리다의 굴곡진 삶은 그녀의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의기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사고와 유산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남편과 여동생의 배신으로 입은 정신적 충격은 그녀를 피폐하고 참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주, 대지, 나, 디에고, 세뇨르 솔로틀이 하는 사랑의 포옹>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프리다는 작은 포옹에서 큰 포옹으로 확장되어가는 통합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게 되었다.
"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그린 그림 <비바 라 비다(인생만세)>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저자 강필은 강조하였다. 일생을 고통과 함께 한 프리다가 남긴 말이니, 믿어보자고.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인생은 한번 살아볼 만하다고 말이다.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과 필적할 만큼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 '케테 콜비츠'의 꼭지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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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일기를 쓰듯 자화상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기록하였다. 8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인생사를 함께 하다 보면 우리네 삶을 마주하게 되고, 묵직한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담담한 그의 눈이 다독이는 듯하다.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케테는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을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시켰다. 선과 표현 요소를 최소화하면서 본질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그의 작품은 자식 잃은 세상 모든 부모를 위로해 주었다.
"죽는다는 건 두렵다. 하지만 죽어 있는 상태, 그래, 좋다.
그건 내가 자주 기대하던 것이다."
케테의 말년을 그린 자화상 <옆모습 자화상>과 <죽음의 부름>에 담긴 죽음에 대한 통찰과 사색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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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세상에 남긴 그림의 의미를 함께 읽으면서 상처는 어루만지고 고통과 슬픔은 나누며 공감하는 치유의 시간을 통해 고단한 삶의 옷깃을 여미며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하였다. 다시금 예술은 삶과 별개가 아니라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는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