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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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나 작가의 소설집 『깊은숨』 

총 7편의 단편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여 하나의 태피스트리가 짜였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감정 - 상황 - 목소리가 한 몸에서 잉태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깊은숨/김혜나 소설집/한겨레출판




자신이라는 본연의 존재

그 존재를 인정하고 깨닫고 닿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 하나의 소설에서 다음 소설로 바통을 넘기듯 숨을 넘겨주었다. 그 숨 쉬는 존재가 분명히 옆에 있다는 자각은 소설 바깥 현실에서도 극명하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표현들이 생경하면서도 적절하게 들어맞아 활자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부다 왕궁과 다뉴브강 그리고 파타야 도시에 관한 묘사를 읽으면서 왕궁을 거닐고 다뉴브강에서 일몰을 즐기고 파타야 아파트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상상을 했다. '골목길'을 '잘 바른 생선 가시 사이'라고 쓴 대목처럼 유머러스한 표현도 마음에 들었다.

 

 



김혜나 작가의 책을 온전히 다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세상이 멈추면 나는 요가를 한다(은행나무, 2021)》 앤솔러지에서 「가만히 바라보면」을 읽었다. 요가에 관한 여러 작가의 글들 중 인상 깊게 읽어서 '김혜나' 작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단편 한편으로 만났을 때는 '아~ 감각적이다.' 뇌리에 꽂히는 작가였다.

 

이번에 온전히 그의 작품으로 꽉 찬 소설집으로 만나니 쉽지 않았다. 친절하지 않은 흐름 속에서 등장인물의 표현되지 않거나 소화되지 않은 감정선을 좇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등장인물조차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 감정을 알지 못하거나(오지 않은 미래, 레드벨벳, 코너스툴) 자신의 감정, 생각 또한 날것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하였다.(레드벨벗, 코너스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소설이라고 긍정적이고 극적인 변화를 결과로 제시하지 않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부정하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젠더에 예속되는 인간관계의 한계에 관한 질문으로 사고의 경계를 무너트려주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점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사유의 흔적이 담긴 소설집이다.





우리를 정의하는 여러 정체성(가족, 직업, 문화적, 철학적, 생물학적 정체성 등) 중 하나라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상이라 여기는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부정되고 왜곡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다른 정체성들이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고 빛나더라도 사회의 기준으로 정상 범주에 벗어난 하나의 정체성이 커밍아웃되면 유일한 정체성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코너스툴」의 이오진 작가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기를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요가와 이국 그리고 소설가

김혜나 작가 본인의 경험이 녹아든 소설이기에 낯선 풍경과 감정, 배경의 조우가 거부감 없이 나에게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지금 이 소설이 아니라면 전해주지 못할 감정과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이 여성들이라 더 파고들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보이는 면이 아니라 이면에 감춰진 빛을 끌어내어 비추는 거울 속 자신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이들이라 더 눈길이 갔다.

 

"요가는 타인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야.

지금 너보다 나은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 되려고 하는 거야.

그게 바로 네가 말하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가만히 바라보면_ p.82

 

"모든 것에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하나임을

한 입 한 입씩 씹어 삼키기로 했다."               비터스윗_ p.221

 

진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깊은숨』 을 만났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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