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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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가 매끄럽고 둥글게 커팅 된 작은 사이즈의 책.

하지만 강렬한 표지가 그 안에 담긴 글의 무게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는 듯,

당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당당한 그녀의 눈빛과 자세에 압도된다.

 

 

기울어진 미술관/이유리 지음/한겨레출판



저자 이유리는 '미술' 카테고리 안에서 안전하게 꽈리를 튼 '권력'을 세상의 시선이 닿는 밖으로 과감히 끄집어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꺼려지는 이 행위의 정당성은 이 글을 읽고 반응하는 우리 독자가 부여할 것이다.

 

'그림'이 제작된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자명한 진실에서 출발하는 저자의 비판이 껄끄러운 이유가 단순히 현대적 사고관으로 이해되지 않은 과거의 시대적 한계와 무지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결정과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배우기 위함이다. <기울어진 미술관> 또한 이 책을 통해 순수한 예술로서 미술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녹아든 시대의 공기를 살펴보고 현실에 투과해 보는 자세를 기르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예술의 참모습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기를, 곁에서 지지해 주는 벗이 되어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올랭피아의 하녀> 장 미셸 바스키아, 1982년

 

바스키아는 '미술관에는 흑인이 없다'라며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기울어진 미술관>은 권력의 입맛에 맞게 그려진 그림들을 비판하고 있다. 권력자의 의도대로 그려진 그림들은 우리가 잘 아는 명화들이며, 널리 알려지고 추앙받는 대 화가가 그린 작품들이다. 주문 제작하는 시대에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예술가들은 놀라운 솜씨로 고객의 의도를 잘 담아내었다. 그리고 화가 또한 그 시대의 일부이기에 사상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회색과 검정의 조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1871년

 


여성, 흑인, 질병, 성소수자, 모성, 페미니즘, 어린이, 노화, 인디언, 동물 등 수많은 대상과 관념들이 권력의 과녁이 되어 기울어지고 비딱하고 뒤틀려진 결과물로 생산되었다. 그렇게 수 세기에 걸쳐 소비되어 이어져온 미술사 속에서도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을 벗어나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 싸워 마침내 해방에 이르는 존재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자 이유리는 그들의 험난하고 고단한 투쟁기를 주제별로 엮어 잘 풀어놓았다.

 

권력에 예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지킨 조선 시대 화가 최북의 일화를 들려주며, 이 책과 자신의 소명을 밝히고 있다.

 

"그림은 내 뜻에 맞으면 그만입니다. 세상에는 그림을 아는 자가 드뭅니다.

100세대 뒤의 사람이 이 그림을 보면 그 사람됨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저는 뒷날 저를 알아주는 지음을 기다리렵니다."

 

 

권력자가 자신에게 그리기 싫은 그림을 요구하자 스스로 눈을 찌르며 저항했다는 화가 최북이 남긴 말이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온몸을 달구는 듯 강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말을 따라 읊조려보면 그림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이가 덤덤하게 말하는 듯하여 더 가슴 아리다.

 


<기울어진 미술관>을 읽으면서 관성에 젖은 나의 사고를 직시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표면적이고 보여주는 주제에 심취하거나 그들의 명성과 자본으로 환원된 그들의 가치에 놀라서, 숨겨진 의도와 아픔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1도 하지 못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불편한 진실이 주제였던 <불편한 시선(이윤희 저, 아날로그 출판, 2022.07.10)>을 먼저 읽은 후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권력의 영향력은 깊고 넓고 어둡고 끈적거려 파장이 컸다. 그렇기에 그에 저항하여 더디게 내딛는 발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샤를마뉴의 대관식> 세부 라파엘로 산치오, 1516~1517년

 

 


<기울어진 미술관> 속 권력으로 뒤틀린 미술사가 고전, 중세, 근대를 지나 현대로 가까워질수록 더 피부에 와닿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잘 전달된다.

 

한국의 메디치가, 삼성가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묻혀버린 기업의 예술 후원에 관한 실상도 생각거리가 가득하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과 LA 카운티 뮤지엄이 <사이의 공간: 한국미술의 근대> 전시를 개최하는데 방탄소년단 RM이 오디오 작품 해설 참여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시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21점이 포함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 근대미술사에 대한 관심과 반향이 커질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건만 마음 한편이 불편하여 마음껏 기뻐할 수 없어 답답한, 묘한 기분이다.

 

저자는 네덜란드 공화국 튤립 값 거품에서 NFT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투기의 '광기'를 바턴 터치한다. 이런 광기를 뒤로한 채 튤립 자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소중히 여길 우리와 그 가치를 위해 농사짓는 농부를 기억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가치로 순수하게 감상하고자 한다.

 

캔버스를 감상하면서 표면적인 이미지와 색채에 한정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심어준, 의미 있는 책이다. 끌려다니지 말고 깨어있는 자가 되고 싶어졌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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