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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동남아 -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진들이 가까우면서도 생소한 '동남아시아'에 대해 핵심 주제를 선정하여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책 『키워드 동남아』
키워드 동남아/강희정·김종호 외 지음/한겨레출판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면이 많은 데도 별다른 감흥을 갖지 못했던 동남아시아였다. 하지만 올해 시사프로와 책('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신일용 저/밥북 출판/2022년 1월 21일 발매)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험난한 역사를 알게 되면서 '동남아시아'에 관심이 생겼다. 『키워드 동남아』책은 알듯 모를듯하지만 우리나라와 친숙한 동남아시아를 다각적으로, 심층적으로 조명해 주고자 기획된 책이다. 관광지로서의 동남아만이 아닌, 경제 협력·문화 교류의 영역까지 전문가의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태생적으로 지리에 약한 나는 같은 아시아 대륙에 살고 있지만,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의 구분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세계 지도의 도움을 받았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11개국, 그중 동티모르를 제외한 10개국(미얀마, 라오스, 타이,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즉 아세안(ASEAN)을 결성해 국제 사회에서 그네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리, 경제, 정치, 종교, 언어와 문화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제각각 특징을 지닌 동남아시아이기에 '아세안의 가치와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정치' 보따리를 통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서 흥미 있게 살펴보았다.
정치학, 역사학, 인류학, 미술사를 전공한 동남아 연구자들이 풀어낸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것, 『키워드 동남아』을 통해 각양각색, 만인만색인 다채롭고도 복잡한 '동남아시아'로 깊숙이 들어가 보는, 생생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무심했는지를 직접 경험해 보길 바란다.
▷ 역사 : 지워지지 않는 제국의 유산
지지 않는 태양처럼 찬란하게 유럽을 비추고 있던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대항해 시대'가 동남아에게는 커다란 비극의 시초가 되었다. 제국의 눈에 들어온 동남아는 너무나 매혹적인 땅이었다. 자원의 축복이 도리어 화가 되어 그들의 운명을 뒤흔들었다. 제국의 필요와 시선에 의한 사회, 경제, 정치의 변화는 아직도 동남아 곳곳에 남아 근대화의 시초로 평가되기도 하고, 갈등의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유지한 채 독립국가로 자리 잡은 동남아만의 저력을 인상 깊게 실감했다.
제대로 된 문명이 자리 잡지 않은 미개한 역사로 뭉뚱그려 치부해온 동남아시아의 과거도 재조명되고 있었다. 동남아 문명의 형성과 수준을 연구하는 데 중점이 되는 부분은 지리적 여건으로, 여러 교역의 중개 지역이었기에 상업과 화폐를 주목했다. 많이 발견되는 화폐를 통해 동남아시아 문명이 이룩한 상업적 발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놀랍게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돼지 저금통의 대부분이 자바 섬에서 대량 발견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와 상업적 요소는 서구 문명의 성과라 여겨졌던 지라 동남아에서 발견된 '저금'의 흔적은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부순다. '동남아'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동남아의 현지인들은 어떤 제국도 그들 공동체와 운명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혹한 착취와 방임으로 깨달았다. 싱가포르의 최초 빈민 병원은 중국계 상인에 의해 세워지고 운영되었으며, '바나나 머니'와 군표를 포함한 일본 점령기에 발행된 화폐는 전쟁의 끝과 함께 사라졌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힘으로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자각의 계기가 된 것이다. 이것은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남아시아 특유의 '독립적인 행동 외교'와 '다자외교'의 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 문화 : 섞임과 스밈이 빚은 아름다움
동남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계단식 논과 커피,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 길거리 음식들이다.
세계유산이 된 계단식 논은 그 이국적인 풍경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기에는 장관이지만, 인간의 강고한 의지와 지난한 노동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육두구, 정향, 후추, 팔각 등 다양한 향신료의 땅. 풍성한 자원이 부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유럽의 식민지화를 부추겼다는 점에서 축복이자 저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탐욕이 부른 결과로, 향신료는 여전히 향기롭고 감각적인 맛을 선사할 뿐이다.
문화를 다루는 장은 음식·종교·혼례·의상·음악·영화·인형극 등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각 장마다 제각각 종족과 종교에 따라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한 생활양식과 특징들을 접할 수 있다. 유명한 베트남 커피 이야기와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미얀마에서 버마족 전통의상을 입은 정상 수치에 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현재는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수상 인형극이 전승자가 줄어 명맥을 유지하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전통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전통도 생명처럼 자라고 죽을 수 있으니 부디 귀히 섬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정치 : 약육강식의 세계를 살아가는 기술
작년 2월 미얀마에서 들려온 끔찍한 소식이 있었다. 군부 쿠데타가 다시 일어난 것이다. 6년여의 짧은 민주화 시대에서 다시 군부 독재 시대로 돌아간 미얀마에 아직까지 봄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5·18 민주화 항쟁을 겪은 우리들은 그들의 고통이 남일 같지 않다. 군화발에 짓밟히고 차여도 다시 일어나 거리로 나오는 학생, 청년, 민중의 저항 의지가 부디 꺾이지 않도록 국제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은 '밀크티 동맹'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21세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친일파들이 그대로 사회 지도부로 흡수된 것처럼 타이 군부와 왕실의 제휴와 밀월은 새로운 시대를 반기며 희망에 부푼 국민들을 철저히 배반하는 것이었다. 강대국(미국)의 입김과 권력욕이 부른 결과였다. 그 결과 왕은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국민들은 머리를 바닥으로 수그렸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머리를 들고 "자유, 평등, 우애"를 상징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치고 군주제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왕실모독 죄로 강요된 침묵의 벽에 금이 가고 있다.
아세안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독립적인 행동 외교'와 '다자 외교'를 펼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외교 전략을 분석하고 있다. 미·중·일 강대국과의 외교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견제까지 고려하는 특수한 한반도 정세에서 살펴보자면 동남아의 외교 전략은 다분히 매력적이다.
"태양이 여러 개일 때야말로 작은 행성들은 항해의 자유를 더 확보할 수 있다."
- 싱가포르 외교가 라자라트남 장관
전문가들이 작정하고 풀어낸 『키워드 동남아』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동반자로써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