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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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작가를 처음 만났다.

첫 조우가 너무 강렬하여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귀신은 무서워하면서도 기이하고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는 찾아다니며 읽는 나로서는 제대로 PICK!

무서운 이야기가 좋은 게 아니라 그 안에 녹아있는 외로움, 그리움, 한, 사랑, 인간의 절절한 감정과 서사가 찌릿하게 전해오는 순간들이 좋아서 괴담집을 읽는다.

이런 나에게 소설 [트 ]는 '조예은'이라는 이름 석 자를 제대로 각인시켜주었다.



트로피컬 나이트/조예은 지음/한겨레출판




감각적인 소설집 표지 디자인도 소설 호감도를 상승시킨다. 오독오독 소리가 들리는 듯한 상큼한 석류의 붉은 속살과 흐릿하고 흘러내리는 그 그림자는 대비되어 기이하다. 끊어진 선들이 현재의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는 기계손은 차갑게 느껴지면서도 숨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렇게 시선을 강탈하는 표지 너머로 '조예은 월드'가 펼쳐진다.

 

 

[트 ] 소설집으로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이야기마다 다른 색과 맛을 선사하고 있어 독자에게 읽는 재미와 상상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야기 기저에 깔린 정서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그렇기에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갈망과 사랑'이다.

 

"열대야에 꾸는 모든 꿈이 당신의 편이기를"라는 작가의 메시지처럼 소설집 이야기들은 꿈같이 모호하기도, 아찔하기도, 끔찍하기도, 쓰라리기도, 간절하기도, 그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단단한 믿음 같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그리고 있고, 잊어버리면 허무할 소중한 무언가를 되뇌고 있다. 진짜로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포기하지 말자고.





단편으로 머물러 있기에는 아쉬운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다행히 <작가의 말>을 통해 엿본 작가의 마음 또한 그러한가 보다. 이 이야기들이 씨앗이 되어 뿌리내린 후 더 넓고 커다란 이야기들로 자라날 훗날을 기다려야겠다. <자크와 콩나무>의 요술 콩처럼 하룻밤 사이에 하늘까지 뻗어나가길 바라는, '조예은' 매직에 흠뻑 취한 독자의 투정도 양념처럼 곁들이면 더 빨리 오려나? 헛생각도 들었다.

 

 

8편 모두 매혹적이었지만, 특히 와닿는 이야기는 <고기와 석류><릴리의 손><가장 작은 신><푸른 머리칼의 살인마>이다. 작가의 넘치는 상상력이 재기 넘치는 문장력으로 발현되어 가슴을 쿵쿵 치는 듯했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소망이 전해져 그들의 안녕을 기도하게 되었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 뒤에 그들이 보여주는 단단한 사랑과 믿음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홀로 쓸쓸히 죽기 싫어 생고기를 먹는 괴물을 옆에 두는 옥주, 그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헤어진 연인을 만나러 갈 날을 기다리는 연주,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으나, 자신을 등쳐 먹은 친구 미주를 위해 스스로 바깥세상으로 나온 수안, 시작과 끝이 모호한 시간의 굴레 속에서 목적조차 잊어버린 채 행위만 반복하던 블루를 찾아온 썸머.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벌 같은 지독한 고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잘 사는 삶일 것이다. 곁에서 온기를 나누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기이하지만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미주에게 수안이 수십, 수백 중의 1이라면 수안에게 미주는 그 자체로 꽉 찬 1 이었다."

- <가장 작은 신> 中 179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잘 지낼 거야."

-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 中 p.238

 

 

[트 ] 소설을 읽으면서 몽환적인 꿈을 꾸는 듯했다. 온몸이 부유하는 듯 흔들려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지표면 위에 있는 두 발이 더 안정적이다. 발아래에 땅이 예전보다 다져져 단단해진 느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마음이 스며들어 나를 꼿꼿이 일으켜 세워주는 것 같다. 꿈처럼 잡을 수 없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좋은, 따뜻한 기운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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