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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평점 :
'고요한 희망'
'성장'이라는 단어가 고난과 고통 그리고 상처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자극이 있어야지만 가능해서일 것이다. 아픔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우리를 그리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나라면 주저앉을 것만 같은데 다시 고개를 들고 내일을 준비하는 당당함과 꿋꿋함이 부러우면서도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들이 바로 '나'라고 다독여주는 듯하다. 우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생물이다. 계속 배우고 생각하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종말주의자 고희망/김지숙 지음/자음과모음
종말주의자를 내세운 성장소설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번 소설에서 십 대 주인공이 '종말'을 염원하는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감히 소설 마지막은 '행복과 희망'을 그리고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이 소설은 어떻게 기억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종말'을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류의 멸종'이 더 맞는 표현 같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없는 희망은 인간이 지구에서 말끔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희망은 왜 이리도 차가워졌을까? 타인에게 벽을 치고, 주어진 일을 하는 느낌으로, 생을 견뎌내는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희망에게도 집중하는 일이 있다. 바로 소설 쓰기이다. 인류가 멸종하고 다른 생명체들이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설정이다. 첫 번째는 공벌레, 두 번째는 고사리가 주인이었다.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한 결말이지만 가능하다고 받아들이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이름 주인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부모나 집안 어른에 의해 지어지는 이름.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고희망', '고요한' 역시 자신들의 이름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로의 이름에 대해서 나누는 이야기는 다르다. 삼촌인 고요한은 희망이 자신의 희망이라며,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모의 희망이었던 희망, 삼촌의 희망인 희망, 누군가의 희망이 자기 자신을 위한 희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종말을 바라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희망은 우연히 삼촌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갈등의 시작으로 희망이 가족을 감싸고 있던 본질적인 문제 또한 터지게 되었다. '희망'이 종말주의자가 된 이유는 '상실'이다. '동생의 죽음'과 '부모의 관심'. 희망이에게는 동생이 죽는 순간 가족이 없어져 버린 것과 같았다. 그 지독한 상실감에 전염돼 희망이도 주위에 관심을 잃어갔던 게 아닐까. 아직 어린 십 대, 반짝거려야 할 나이에 일찍 많은 것을 겪은 소녀의 건조한 마음이 안타까웠다.
"왜 마녀의 숲에 가려고 했어? 나 때문에 그랬어?"
'상실'을 겪은 이들은 그 사실을 묻어두려고 한다. 이 소설의 부모님처럼 말이다. 하지만 희망이는 소망이를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없지만 곁에 존재했던 내 동생 소망이를.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어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고 싶었다. 과거를 짊어지고 무겁게 한 발을 내딛는 오늘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는 오늘을 만들어가고픈 용감하고 정의로운 한 소녀의 이야기가 바로 『종말주의자 고희망』이다.
희망이는 지수와 도하 그리고 삼촌에게 마음을 열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얻게 되면서 진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종말과 죽음을 바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지만 결국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언젠가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삶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많이 사랑한 이가 바로 '고희망'이지 아닐까.
"그래도 희망아, 믿는 마음하고 믿지 않는 마음이 같이 있을 때는 믿는 마음을 선택해야 한다."
"믿음도 자기가 선택하는 거야.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행복은 믿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거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믿는 마음도 용기가 필요한 힘든 일이다.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있다.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소울메이트와 가족들과 함께 바라보는 세상은 무지갯빛으로 찬란했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