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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영화를 좋아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서도 독립영화를 줄기차게 보러 다녔다. 십 대 시절 가수에 열광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영화배우에 심취해 이민을 꿈꾸기도 하고,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까르르 웃으면서 누가 먼저 그 꿈을 이루나 내기하던 상큼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나도 결혼을 하고는 영화관과 차츰 멀어졌고, 아이들이 영화를 볼 때쯤 애니메이션 영화만 섭렵하고 다녔다. 다시금 육아에서 조금씩 벗어나 영화관을 찾고 여유를 찾아가던 때, 코로나19가 터졌다. 영화, 한편 보는 게 이리도 어렵다니......
영화관을 찾기는 힘들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OTT, VOD, IPTV 등 굳이 영화관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쉽게 영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극장에서 보는 영화 맛이 최고지만 말이다.
신기하게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오히려 영화를 선택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풍요 속의 빈곤, 넘치다 보니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프로그램은 물론 영화음악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해 주는 프로그램, 독특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을 찾아서 보게 되었다. 이런 나를 남편은 신기해한다. "그렇게 다 알고 영화를 보면 재미있냐?"라고 묻는다. 성향의 차이이겠지만, 나는 배경지식이 있는 영화 보는 것을 선호한다. 감독, 배우, 줄거리, 에피소드 등을 알고 보면 좀 더 풍성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재밌게 본 영화는 그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이나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본다. 그래서 주성철 기자의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책은 나에게 교과서이다.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주성철/씨네21북스/한겨레
영화평론가와 관객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영화의 최종 스태프다.
이 책은 영화평론가 주성철이 큐레이터가 되어 영화를 주제로 네 개의 특별 전시회로 구성하였다.
관객과 게임을 멈추지 않는 천재들_제1전시실 <감독관>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함_제2전시실 <배우관>
장르 이단아들의 무한한 가능성_제3전시실 <장르관>
장편이 상상할 수 없는 자유_제4전시실 <단편관>
자, 특별한 전시회에 초대되었으니 제대로 즐기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다.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이 가는 공간에서는 한동안 머물러 시선을 맞추고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된다. 과연 어떤 이야기와 사람을 만날지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제1전시실 <감독관>에 들어서니 조금은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천재들을 만난다고 하니 그런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펴보니 10명의 감독 중 모르는 감독은 1명, '요르고스 란티모스'였다.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선정되어서 너무 기뻤다 아는 감독의 이야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그분들의 서사에서 곁가지를 힘차게 뻗어나가게 하였다. 그들은 모르고 나만 알고 있지만 좀 더 친숙해진 것 같아 좋았다.
<아무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유독 '가족'에 천착한다. 우리가 아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족이 아니라 다양한 결을 지닌 가족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재창조한다. 이번에 개봉한 <브로커> 또한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영화 이야기와 분복 영화사 설립 배경 그리고 <주전장> 상영 관련 에피소드는 '역시 고레에다 감독!', 그를 추앙하게 만들었다.
나홍진 감독은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 영역 안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큰 관심이 생겼다. <곡성> <황해> <추격자> 내가 잘 보지 못하는 장르여서 한편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주성철 영화평론가가 보여주는 뒷모습이 너무 흥미로웠다. 죽기 살기로 영화에 매진하는 나홍진 감독의 모습에 잘 보지 못하지만, 그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만든 작품들을 봐야만 할 것 같았다. 보고 싶어졌다.
제2전시실 <배우관>의 첫 번째 배우는 '윤여정'이었다. 배우로서도 멋지지만 어른으로서도 훌륭하신 분이라 차분히 읽어나갔다.
주성철 영화평론가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불균질한 비범함'이라 표현했다. 고개가 끄떡여 졌다.
분명 그만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분명 주변과 어긋날 것 같은데 불편하지 않다. 주어지는 캐릭터마다 새로운 옷을 입듯 그만의 감성으로 표현해 내는 천상 배우이다. <미나리>를 보면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면서 받았던 감격을 이 전시실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찰리 채플린, 내가 기억하는 찰리 채플린은 정장을 갖춰 입고 콧수염을 달고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던타임즈> 속 모습이 각인되었다. 이 책에서는 영화 <위대한 독재자> 중심으로 찰리 채플린을 소개하고 있다. 유태인인 찰리 채플린이 히틀러를 연기했다는 점과 히틀러 또한 몰래 보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제3전시실 <장르관>에서는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4대 천황이라 부르며 각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모여서 보고는 했던 즐거운 시절이 떠올랐다. 홍콩 누아르, 지금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사나이들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낭만과 의리 속에 특유의 미장센을 통해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한 집에 모여 감상했던 그 영화 <영웅본색>을 심층 분석한 글을 읽으니 묘했다. 주성철 영화평론가가 말하는 반복법을 얼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미 몇 번을 본 영화라도 시선의 차이가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그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대조와 반복법을 생각하고 감상하는 <영웅본색>은 어떻게 다가올지 설렌다. 알고 보면 더 재밌다는 사실을 재발견하지 않을까.
제4전시실 <단편관>은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단편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두 감독이 이렇게나 많은 단편들을 찍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박찬욱 감독의 '일장춘몽'만 알고 있었기에 신세계였다. 생각해 보면 작가들도 단편으로 낸 이야기들을 나중에 장편으로 완성하기도 하고, 장편으로 나왔던 이야기들도 등장인물에 대한 외전으로 단편을 내기도 한다. 감독 또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편들이 장편들과 교묘하게 얽히고설킨 설정과 감정선들을 읽다 보니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감독들의 단편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졌다. 주성철 영화평론가가 묘사한 맛을 눈으로 읽었으니, 다음은 직접 맛볼 순이다.
아는 영화 이야기는 알아서 반갑고, 모르는 이야기는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읽으면서 '내가 영화를 이렇게 좋아했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고는 벅차올랐다. 왁자지껄 시끌벅적하게 살지 않는 내가 형형색색의 세상을 만나는 길은 독서와 영화이다. 특별한 영화 전시회를 열어준 주성철 영화평론가 덕분에 영화 레시피가 풍성해졌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손짓에 과감하게 실행해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가 전하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이유는 영화를 애정 하는 이의 진심이 담겨있어서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