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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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지 않은 투박한 터치로 그려진 소녀는 눈이 부신 듯 손으로 그늘을 만든다. 하지만 햇볕에서 벗어나지 않고 따사로운 햇볕에 몸을 맡기는 듯하다. 소녀 뒤 꽃과 나무, 덤불 같은 식물들은 그녀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상큼한 표지의 는 우리를 햇볕으로 이끈다.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밝은 곳으로 나가보자고!




『페퍼민트』 백온유/창비





유원」으로 만난 백온유 작가.

참 맑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이번 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 희망 선의를 향한 믿음을 전하고 있다. 흔들리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단단함이 천천히 스며든다. 평범한 내일을 꿈꿀 수조차 없는 오늘도 내려놓지 않는 시안 대신 그 고통을, 슬픔을 짊어지고 싶어졌다. 그 아이가 놓지 못하는 손을 누군가가 대신 잡아준다면 그 아이는 그늘에서 햇볕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노력과 정성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우리처럼, 소설에서 프록시모 바이러스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안이네 가족들이 나온다. 상냥하고 온화한 엄마는 식물인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시안이네 가족을 무너뜨렸다.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잊을 수 없는 시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너무나 평범한 대화여서 더 가슴이 아픈 기억, 19살 시안이는 그 슬픔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코로나19로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기에 시안네 가족의 오늘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모르는 이의 낯선 오늘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두려움이 우리를 스치고 있다.






소설 초반에 나온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설 후반에 꿈으로 다시 등장한다. 시안과 해원은 비눗방울을 터트리며 같이 놀았다. 뛰어가다 시안이 돌부리에 넘어졌다. 초반은 엄마가 약을 발라주는 기억이었는데, 후반에는 해원이 자기 때문에 넘어졌다며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미안해."

"뭐가"

"그래도 미안해. 너 다 나을 때까지 내가 너 도와줄게."

"어떻게?"

"음, 학교 갈 때 가방 내가 들어 줄게. 계단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 내가 부축해 줄게."

 

 

시안이는 해원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심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 같다. 끝이 없는 지금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해원에게 잔인한 부탁을 하게 한다. 양가감정, 모순된다고 하지만 시안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공감해 주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아 간절해지는 행복이 시안에게는 죽음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바라는 마음속 싹이 점점 자라날수록 독을 뿜어내었다.





책 속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된다고 나온다. 또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된다고 나온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시안이는 조금 일찍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하라고 엄마를 간병해 주시는 최선희 선생님이 말했다. 담담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이고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데……그래서 더 슬픈 것 같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온전히 책임져야 하고 돌봐야 하는 시간들은 왜 있는 것일까?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껏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지만 그 시간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 가운데 홀로 다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육아에 대한 정보와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고, 육아 관련 정책과 사회 시스템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간병은 아직도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백온유 작가는 에서 그 두렵고 불편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시안이처럼 불안하고 껄끄러워서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게 아닌가. 사랑하는 이와 별개로 평범한 일상을 누려도 되는 것인가. 시안이 마음속 번뇌와 갈등이 정확히 내 마음 같아서 선의를 굳건히 믿는 최선희 선생님의 말씀을 되뇌어보았다, 몇 번이나. 그리고 고독사에 대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해원이 말처럼 혼자 죽는 거, 그건 징그럽거나 비위 상하거나 무서운 게 아니라 슬픈 거다. 지독히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간병과 고독사, 모두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다. 사회 공동체 안에서 고민해야 하고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시안이처럼 서로의 슬픔을 조금씩 나누면 조금은 더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넌 가고 싶은 대학 있어?"

" 먹었어?"

해원이는 시안이에게 궁금한 게 있다. 시안이는 그런 해원이의 관심이 좋다. 자신이 꿈꾸지 못하는 내일을 대신 물어봐 주는 친구여서 안녕을 고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흔한 핑계, 흔한 변명이라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중한 해원이를 지켜주기 위해 관계를 끝내는 시안을 보니, 그 말의 의미가 와닿았다. "잘 지내."

 

 시안과 해원이는 헤어져 각자의 내일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나갈 것이다. 자신들의 속도대로, 자신들의 마음대로. 다시는 만날 수 없더라도 밝은 곳에 서 있을 서로를 살아가는 내내 떠올릴 것이다. 그 다정한 연대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백온유 작가의 글은 악인이 등장해서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이 커지는 것도 아닌데 현실이 무겁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의 규칙과 통념은 십 대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래서 어른에게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 없어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십 대가 나온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십 대 청소년들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십 대들은 절망하다가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본다. 따뜻하고 밝은 햇볕을 쫴 축축하고 눅눅해진 몸을 보송하게 만든다. 그러고는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 강인한 생명력과 회복력에 빠져 백온유 작가의 글을 기다리게 된다.

내밀한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어서 그들의 감정 위를 걷다 어느새 젖어들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끝까지 한걸음 한걸음 내딛게 된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좌절하지 않았기에 나 또한 고개를 들게 된다. 시선 끝에 닿는 건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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