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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
정유리 지음 / 부키 / 2022년 7월
평점 :
부끄럽다.
이런 날것의 고백을 들으니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인생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섭식장애'에 대해 무지했다. 그리고 자신이든 타인이든 대상에 상관없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몸, 신체에 대한 평가, 잣대는 은근히 냉혹하다. 사회적 분위기, 연예인에 대한 동경, 프리사이즈의 기성복 등 다양한 이유로 매 순간 몸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하다. 이런 복합적인 배경이 날카롭게 관통하는 제목의 책,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정유리 에세이/부키
책을 받고는 감각적인 표지에 적잖이 놀랐다. 갖가지 음식과 화려한 조명 아래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빨간 책 표지는 생동감 넘치고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다. '날것'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처럼 이 책은 적나라하게 '섭식장애'를 다뤄 그들만의 세계를 수면 위로 떠올렸다. 그 안에 담긴 수치심, 자괴감, 실망감, 슬픔, 외로움 온갖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늪처럼 저자를 끌어당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들의 사랑과 관심에 두 발로 꼿꼿이 서 버티려고 하는 저자의 의지가 강하게 전해져 나를 울렸다.
'거식증'에 대해 심각한 질병이라는 인지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바로 수년간 거식증을 앓아온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일이다.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더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다.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불어나는 살,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다이어트 등 일상에서 접하는 몸에 대한 스트레스, 집착은 더 커진 것 같다. 서구화된 체형과 발달된 미디어 기술은 오히려 우리 현대인(특히 여성)에게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신체를 요구하는 듯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나 다이어트해야 돼. 너무 뚱뚱해"를 달고 사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은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 책을 보면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깊이에 안타깝고 화가 났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나는, 폭식을 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하는 나는, 돌아서면 배고픈 나는 식욕을 느끼면서도 절제하고 보상행동을 하는 섭식장애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비난받거나 수치스러울 필요는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 이 책이 나에게 전해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도 나쁜 의도로 타인의 몸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살이 쪘다, 너무 말랐다, 내 뱃살 좀 가져가라 등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상투적인 표현도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나를 조금씩 변하게 할 것이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힘을 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 또한 인식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괜찮아?'라는 그 한 마디를 한 번이라도 더 듣기 위해 살이 썩는 고통을 감내하거나, 더 오래 심하게 아프길 바라는 이가 있다. 어린 시절의 학대로 무력감에 잠식당해 거식 행위에 집착하게 된 이가 있다. 엄마의 어린 딸로 보살핌 받고 싶으면서도 엄마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양가적인 마음 사이에서 거식증에 걸린 이가 있다. 그들은 그저 그런 병에 걸렸을 뿐이다.
"그건 그저 병일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으니까."
_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단순히 결과론적으로 섭식에 대한 부분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섭식장애를 겪게 된 원인과 배경을 다뤄줘서 그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개인이 타인과 사회에 의해 붕괴되고 상처 입고 고통받아 종국에는 자신 스스로를 통제하는 상황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에게 향해진 비난과 분노의 화살이 잘못되었고,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잘 먹는 것은 결코 하찮은 기술이 아니다 - 미셀 드 몽테뉴
13년째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앓아온 저자가 섭식장애에 대해서 오해 없이 알리고자 쓴 이 글은 처음에는 큰 충격을 줬다. 그러고는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러고는 먹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저자는 섭식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중요한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1. 동기 2. 무조건 먹기 3. 주위 사람들의 격려이다. '혼자이고 싶지 않다'에서 발전된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확실한 동기와 목표를 다지며 토하더라도 먹으니 체중이 늘어났다고 한다. 불어난 살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이겨냈다고 한다. 넘어져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는 지인들의 따뜻하고 다정한 말과 함께 스스로를 믿고 동기와 목표를 지팡이 삼아 다시 일어선 저자의 고백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이유로 섭식장애까지 다다른 이들에게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돌볼 때 변화를 넘어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을 건네는 저자의 진정성과 용기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다정한 온기를 담고 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견딜 수 있는, 이길 수 있는 힘을 보태고 싶어 마음을 담아 응원을 전해본다.
"먹어도 돼. 먹어야 해."
"너는 잠시 아픈 것뿐이야. 그게 네 잘못은 아니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