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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평점 :
노 본스 NO BONES/애나 번스 장편소설/창비
도서와 서평단 미션 종이와 함께 담당 편집자의 편지가 도착했다.
서평단 자격으로 미리 받아본 도서는 정식으로 출간될 책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가제본이며, 전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저자의 편지를 받아본 적은 있지만, 담당 편집자의 편지는 처음이다. 그만큼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서도 우려되는 점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은 배경지식이 소설에 대한 이해 정도에 크게 작용한다. 애나 번스의 장편소설은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루고 있기에 이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뒷받침되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노 본스>를 읽으려는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손수 남긴 편집자의 바람처럼 가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the Troubles*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약 30년간 계속된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둘러싼 혼란기를 일컫는다. 지리상으로는 아일랜드섬이나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에서 친아일랜드계인 카톨릭교도 세력과 친영국계인 개신교도 세력이 충돌한 비극적인 현대사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북부의 구역인 '아도인'이라는 작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마다 중심인물이나 시점이 달라지며, 7살 아이 어말리아를 시작으로 '평범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7살 아이들이 모여 한가로이 노는 평범한 일상에 '트러블' 소식은 아이들 말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꾸며낸 이야기처럼 현실성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처럼 '트러블'은 정말 일어났고 일상은 파괴되었다.
『노 본스 NO BONES』는 분쟁으로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아도인'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과 이웃, 친구, 학교, 마을. 적이 아닌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 더 이해할 수 없고 잔인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폭력에 잠식당하는 아도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외면과 무관심 그리고 냉대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그 자리에 폭력과 광기가 자리 잡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영국과 아일랜드, 가톨릭교와 개신교. 편가르기로 팽팽하게 분열되고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아무런 고민 없이 망설임 없이 일어나는 혼란과 파괴의 일상을 마주하였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톤 가족의 아들, 제임스 톤이 영국군으로 북아일랜드에 배치되어서 선물을 사들고 군인 친구들과 어머니 친척인 러빗 가족을 방문하여 안부를 묻고 친해지는 초반의 훈훈한 이야기가 『노 본스 NO BONES』 소설 속 유일한 다정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제임스 톤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죽음은 더 비극적이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한 순수한 개인의 호의가 시대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짓밟히는 현장을 목도하는 것은 커다란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어머니의 잉글랜드식 벨파스트 말투가 점점 벨파스트식 잉글랜드 말투로 바뀌고 있었다.
분쟁과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인간들을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전쟁이 벌어지면 각종 범죄와 비극이 발생한다. '나라의 독립'이라는 명목으로 각자 옳다고 믿는 가치와 명예를 위해 시작된 일이겠지만, 정의롭고 공평하며 정당한 목적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들이 무분별하고 폭력적으로 진행된다. 폭력뿐만 아니라 온갖 범죄들이 자행된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진실은 약자가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 노인, 성소수자, 장애인, 환자 등 사회적 약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무겁게 고통받게 된다. 『노 본스 NO BONES』 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죽음, 폭행, 협박, 상실 또한 어밀리아를 비롯해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해졌다.
보편적 상식에서는 사회의 보호막인 가정, 학교가 소설 속에서는 폭력이 만연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더 충격적이다. 제임스, 믹, 어밀리아, 메리, 빈센트.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신체적 상처를 입고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 폭력과 광기는 '트러블' 이전부터 있었지만, '트러블'로 인해 더 잔인해지고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건은 러빗네에서 벌어진 '트러블'이었다.
오빠 믹과 새언니 미나는 집에서 변태적인 성행위를 벌이고, 이를 가족과 이웃들은 외면하고 무시한다. 그런 공간에 어밀리아가 들어오고, 믹과 미나는 자기들의 논리로는 장난스러운 행동일 뿐인 극악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거기에 리지와 친구들이 가세하니 이 아수라장이 실재할 수 있는가? 부정하고픈 욕구만 강해졌다. 너무 행복하거나 너무 고통스러운 극한의 상황을 접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눈 뜨면 사라지는 허구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된다. 활자로 접하는 것만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숨 막히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아일랜드'를 각인시킨 작품이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EIDF2018 출품작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A Mother Brings Her Son to Be Shot>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터뷰를 통해 가족의 사연을 하나씩 밝히는 가족 드라마 형식이지만 훨씬 더 큰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오도넬 가족이 살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수 십 년에 걸친 분쟁과, 이후 평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갈등 중에 있는 현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국 관할이지만 경찰이나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일랜드공화국군 IRA의 통제를 받는 마을 '데리'에서 사는 필립 오도넬은 '처벌 사격'이라는 벌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회에 피해를 주는 자에게 벌을 주겠다는 IRA의 행위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폭력이다. 어머니 마젤라는 아들 필립을 그들에게 내어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아들을 IRA에게 데리고 간다. 아들은 다리에 총을 맞고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영화는 오도넬 가족의 처벌을 보여주고 있지만 끝나지 않은 역사적 비극의 연장선을 담고 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아일랜드'가 묵직한 바윗 덩이가 되어 마음 한켠에 박혔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시대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은 서글픈 현실이 되어 굴레처럼 옭아맨다.
『노 본스 NO BONES』를 읽으니 이 영화가 자연스레 소환되었다. 영상으로 접한 처참한 현실이 더 잔혹한 활자가 되어 나를 강타했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장난처럼 시작한 자경단 활동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갑자기 얻은 권력을 남용하는 십 대, 그들을 처벌한다며 무릎에 총을 쏘는 IRA,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학생들에게 온갖 폭력을 가하는 선생님, 호기심으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철부지 십 대 등등. 일상을 폭력과 혐오와 외면으로 채우는 이들이 토해내는 숨에 호흡이 힘들어진다.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선택 아닌 선택으로 정신병에 걸리고 집착을 드러낸다. 안타까운 마음은 그들을 어루만져 주고 보살펴주고 싶지만 이런 참상에서 그려본 그들의 결말은 밝을 수가 없다. 암울한 현실이 계속되고 휘둘리면서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어말리아와 빈센트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들의 앞날에 실낱같은 빛줄기가 깃들길 소망한다.
네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고.
네가 접하든 아니든, 좋아하든 아니든 삶은 계속되고,
사실 등 돌리고 떠나는 건 너 자신일 때가 많잖아.
『노 본스 NO BONES』 절반을 읽었다. 과연 남은 절반은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혐오와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피폐해져 가는 '평범한' 이웃들에게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과 연민을 담아 변화의 불씨를 기대해 본다. 작가 애나 번스가 작품 속 문체는 냉정하지만, 연민과 유머를 잃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달라질 내일을! 어밀리아가 애타게 부르던 외침에 대답하는 목소리를, 손 내밀어줄 누군가를! 우리를 그려본다.
<창비출판사에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