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
이자혜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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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표지의 책,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표지부터 시선을 집중시킨다.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이자혜 만화/중앙북스



순수한 눈망울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한 청년과 그 기도에 답하여 다채로운 음식을 주시는 다정한 손이 그려져 있는 표지를 벗기면, 헉;;;

표지 속 밝고 뽀얀 한밀알 ->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은 궁색한 한밀알

포동포동한 고양이 -> 돈이 없어 굶주린 영혼

다채로운 음식 -> 컵라면과 삼각김밥

극명한 대비가  와닿는다. 역시 만화가라 표현력이 남다르구나 싶었다.






이제 직장인이 된 사회 초년생인 한밀알. 그녀는 대학 때문에 혼자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돈이 없어서 친구도 남자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직장인이 될 때까지 지탱해 준 건 덕질이었다. 그녀는 애니메이션 <도봉 히스테리아>에 입덕하여 다른 팬들의 연성을 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커플을 응원한다. 면접 대기 시에도 연성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면접을 봤으니 덕질의 정도는 상상불가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렇게 덕질과 취업 준비만이 전부였던 그녀가 직장인이 되면서 다른 청년처럼 일반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남을 가져보기도 하고, 재테크로 남들이 다 하는 주식에 투자해 보기도 한다. 비슷한 연령대인데 결혼한 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고, 전문가 포스를 뽐내는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멋진 어른이 된 자기를 상상한다.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한밀알이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되면서 타인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직장 동료들 그리고 같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SNS 지인 '미지근'(전작 미지의 세계 등장인물) 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청일점인 조이삭 팀장은 한밀알 사원을 티 나지 않게 배려해 주고 챙겨준다. 은근한 연애 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

음식과 잘 어우러진 주변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직장 생활, 취미 생활, 연애 생활 등이 그려지는 데 밀알의 덕질이 압권이다. 애니메이션 연성에 폭 빠져 상상의 나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낄낄거리는 그녀, 미지근와 만나서 덕토크에 진심인 그녀, 그 순간 그녀의 표정들이 살아있다. 마이너 감성이 진하게 전해져온다.

 

밀알의 열두 끼. 맛있는 음식을 매개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그려진다.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는데 다 처음 접하는 음식인 밀알의 생생한 후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고 솟구치는 식욕은 덤이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식욕 돋우는 음식 그림은 영롱한 자태로 우리를 유혹한다. 맛있는 음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치유와 행복의 힘은 거부할 수 없다.

'식구',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뜻하는 이 단어에 담긴 의미를 되돌아본다. 우리네 삶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그만큼 중요하다. 매번 도시락을 싸오는 밀알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태국 음식을 사주는 상사, 색다른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덕질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온라인 지인, 집에서 연말 파티를 열어 회사 사람들을 초대하는 팀장, 모두 밀알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을 통해 하나하나 배우가며 밀알은 성장하고 있다.




20대 평범한 청년이 경험하고 고민할 만한 현실적인 부분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한다. 하지만 중요하고 무겁게 다뤄지지 않아서 식도락 만화라는 큰 틀을 깨지 않는다. 밀알의 양식을 주는 손길은 미식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들을 통해 삶의 다채로운 맛을 느끼고, 관계를 확장해가면서 인생의 선배들이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조언을 참고하여 천천히 자신이 생각하는, 되고자 하는 어른상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만 사주면 좋다고 어디든 따라가는 철부지 그녀여서 염려스럽고 걱정이 되지만, 조 팀장 말처럼 "아무튼… 밀알 씨, 화이팅이다."




다음 책이 나온다면 식당 점원으로 자주 등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좋겠다. 의미심장한 표정과 눈빛에 무언가 터질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서운하기까지 했다.

 

음식에 홀리고 다양한 캐릭터들에 끌리고 그중 특히 귀엽고 순수해서 무장해제시키는 밀알에 빠져든다. 너무 평범하고 단순한 청년, 한밀알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상상하며 기다려봐야겠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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