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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3 ㅣ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6월
평점 :
- 청나라 사절단의 사행길에 만난 기이하고도 뭉클한 열하기담
지난겨울, 선노미는 조선 땅 너머 청나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연암 박지원과 머나먼 길을 떠난 그가 돌아와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그날을 애타게 기다렸다. 이제 그가 들려주는 기이하고도 뭉클한 이야기들을 들을 시간이다.
선노미는 건륭제 70세 생일 축하 사절단으로 청나라로 떠나는 연암 박지원의 시종으로 사행길을 따라나선다. 생애 처음으로 삼개 나루터를 떠나 머나먼 청나라까지 가게 된 선노미는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삼개주막 기담회에서 들은 진귀한 기담들이 전해준 교훈과 감동을 떠올리니 기대감이 솟구친다. 더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들은 기이하고도 괴상한 이야기보따리! 열하기담, 지금부터 시작이다.
삼개주막 기담회3/오윤희 기담소설/고즈넉이엔티
이번에도 6편의 기담이 우리를 찾아왔다.
▶ 압록강 뱃사공
▶ 돌아온 탕아
▶ 마마신이 찾은 마을
▶ 붉은 비단의 저주
▶ 화피
▶ 낙원
<압록강 뱃사공>
청나라를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압록강! 그곳에서 만난 뱃사공 주매가 첫 번째 화자이다.
강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두 세계를 이어주는 안내인이지만,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라 느끼는 뱃사공 주매는 자신이 겪은 믿기 힘든 기이한 사연을 털어놓는다. 선노미처럼 태어나 자란 작은 마을에서 뻔히 그려지는 자신의 미래가 갑갑해 벗어나고 싶었던 주매는 압록강을 찾았다. 강 건너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는 그를 설레게 했고, 팍팍하고 단순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었다. 자주 찾아 얼굴이 익은 나루터 뱃사공의 제안에 사공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무렵 배를 탄 젊은 남녀 한 쌍이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죽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구천을 떠도는 영혼, 귀신과 그를 안내하는 저승사자였다. 강을 건네주는 일을 하는 사공과 넋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저승사자, 어찌 보면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귀신도 예전엔 사람이었어요. 우리도 죽으면 귀신이 될지 모르고요."
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낀 넋들이 가야 할 곳으로 안내해주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잊지 못하는 뱃사공 주매의 가슴 시린 뒷이야기가 그가 짊어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 예전과 다시 만나길 바라며 노를 젓어 사라지는 주매의 뒷모습에 찌릿해진다. 모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이루기 전이기에 꿈꿀 수 있다. 다 알고 나서도 이루고 나서도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 뱃사공 주매의 가슴속 깊은 이야기가 마냥 슬프기만 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돌아온 탕아>
구련성에 도착해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던 중, 근처에서 천막을 치고 머무르던 의주 만상 구복이 괴상하고도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이라 조선과 청나라를 오가며 장사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 직접 겪은 귀신 이야기이다.
"동생은 정말 성가셔."
한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라 한들 다 제각기 다른 사람이기에 외모, 성향, 성품이 다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교한다. 그리고 입에 담는다.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는 일임을 알지도 모른 채. 그 상처가 곪아 누군가가 망가지면 결국에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치고자 노력해야 했으나 못했던 이의 책임인지, 계속 비교하여 상처를 낸 이의 책임인지. 하지만 책임을 떠나 가족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형제자매가 많든 적든 서로에게 큰 힘을 주는 존재가 큰 상처가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마마신이 찾은 마을>
폐쇄적인 마을에서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일부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집단주의에 빠진 원로들이 벌이는 잔인한 행태가 그려진다. 역병을 피해 오지로 피신 왔던 이들이 정착해 만든 마을이기에 더 철저히 지켜왔던 규칙일지도 모르지만 위험한 발상이다. 원로들에게만 전해져 오던 극악무도한 규칙은 바깥 세상서 죄를 짓고 도망친 목수 용주에 의해 깨지게 된다. 모난 돌이었던 용주는 인간 된 도리를 아는 이였건만 잘못된 선택을 한 춘삼에 의해 가여운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용주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돌아온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들 하지."
"무서운 건 사람이죠.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저는 실제로 봤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들은 연암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괴짜 선비였기에 더 와닿는 이야기였으리라.
신분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했던 조선 시절, 신분에 맞지 않은 재주는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는 화가 될 수 있다. 연암과 벗 경준의 이야기는 조선 시대 신분제가 가져온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태어나 보니 서얼이요, 태어나 보니 종이라는 데 얼마나 답답하고 분통할 일인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일이다.
<붉은 비단의 저주>
청나라에 갔으니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 이야기가 빠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리도 가슴 저미는 이야기로 마음을 헤집어놓았다. 타국에서도 백성들을 위하는 길을 찾는 강인한 여성인 민회빈 강 씨를 만나 존경스럽고 좋으면서도 허망하게 져버린 가엾은 운명의 결말을 알기에 더 애달팠다. 꼬이고 꼬인 이야기라 찬찬히 풀어나가면서 읽어야 한다. 타국에서조차 백성들의 안위를 챙겼던 의로운 여인이었던 세자빈 강 씨를 허망하게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바로 유언비어와 풍문이었다. 근거 없는 소문은 가벼운 사람의 입을 타고, 바람을 타고 어느 곳이든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덩치를 키워나갔다.
"인간이란 세 치 혀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사는지……"
<화피>
드디어 청나라 서생이 직접 들려주는 청나라 표 기담이다.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꿔 끼워 사람을 현혹한다는 요괴, 화피를 만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손자가 들려준다. 화가였던 할아버지 안핑은 어느 날, 밤이 꽤 깊어갈 무렵 화실을 찾아온 젊은 여자의 청으로 그녀의 집에 따라가게 된다. 화폭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여자의 미모에 홀려 불안과 의심을 애써 누르고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얼굴을 그려줄 이가 필요해서 화가인 안핑을 유혹해서 집으로 끌어들였으니, 안핑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눈에 보이는 걸 믿지 마시오."
안핑과 같이 붙잡혀 온 아이로, 무거운 봇짐을 짊어진 노파로, 발목을 삔 젊은 여자로, 길가에 쓰러진 노인으로 변신하여 안핑을 현혹하더니 안핑이 넘어오지 않자 안핑의 어머니로 변신하였다. 이토록 지독하게 사람을 속여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요괴 화피를 보고 있자니, 인간이 얼마나 눈에 보이는 걸 쉽게 믿는지 새삼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걸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맘 편한 대로 믿고 싶은 나약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교묘히 파고드는 게 화피였다.
<낙원>
이번 이야기에서는 청자의 입장이었던 연암 박지원과 선노미가 기이하고도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청나라 황제가 있는 열하에 가기 위해 무리한 일정을 감행하던 중 박지원과 선노미는 급류에 빠져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다행히 구조되어 눈먼 자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낙원'이라 칭하는 이곳은 인간이 탐욕으로 타인에게 어떻게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약에 취해 점점 변해가는 연암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선노미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차라리 청나라에 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선노미는 연암과 같이 들른 천주당에서 서양 선교사를 만나 고해성사를 하게 된다. 선교사 마티유는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며 선노미를 위로하지만, 그의 귀에는 닿으나 마음에는 닿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선노미는 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와 함께 청나라에 가보지 않겠느냐?
그곳에서 더 많은 기담을 듣고 기록하거라."
연암 박지원 하면 절로 떠오르는 '열하일기'를 잘 활용하여 청나라 기담을 꾸린
<삼개주막 기담회3>
청나라 성경에 도착하여 숙연한 기색을 내비친 연암과 번잡하고 화려한 광경에 넋이 나가 들뜬 사절단 관리들이 대비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의 힘없는 백성들은 갖은 치욕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왕자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선인들도 노예로 함께 끌려왔던 것이다. 나라가 약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염려하는 연암의 자세가 응당 지배계층에게 요구되는 당연한 책임이지만 권리와 권세에는 익숙하나 책임과 의무는 외면하는 위정자들이 많기에 한숨과 함께 짧은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국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시대를 앞서 살아간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열하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소설 곳곳에 잘 녹아있어서 찾으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삼개주막 기담회3>는 탄탄한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인물이 등장해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조와 화평옹주 그리고 정사 박명원의 가슴 아린 사연이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더 넓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듣고 기록한 <삼개주막 기담회3> 열하기담은 더 믿기 어렵고 놀랍고 기이하고 뭉클하고 애틋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화자가 연암과 선노미에게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뒷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기담 자체가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서평을 쓰면서 한편 한편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니 팔에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쉽게 생각하고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얼마나 편하게 행동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선노미의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지……
곱디고운 외모 뒤에 감춰진 선량하고 정의롭고 다부진 성품을 지닌 선노미가 디시 우리 곁으로, 삼개주막으로, 연암 박지원 곁으로 돌아올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삼개주막 기담회> 시리즈로 채워본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 괴짜 선비와 선노미의 활약이 우리를 다독여줄 것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