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해피 어게인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5
이은용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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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해피 어게인/자음과모음


이 책을 읽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생은 해피 어게인』 이번 생이 '어게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해피'하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성장통을 절절히 끌어안지 않아도 되어서 가볍다. 그 가벼움에 담긴 의미가 온전히 내 몫이 되려면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다정한 청소년 소설집이 고맙고 반갑다. 그래서 중간고사 기간인 딸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앤솔로지 작품집이라 아이 성향에 맞을 단편 둘을 꼭 집어 읽어보라 했다. 지금 당장!!! "시험기간에 책을 읽으라니 말이 돼?" 황당해하는 딸 손에 책을 쥐여줬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웃음꽃이 핀 얼굴에 덩달아 나도 미소가 피었다. 시험 끝나면 다 읽어본다는 딸, 과연 어떤 단편을 가장 맘에 들어 할지 궁금하다. 내가 추천한 단편이면 좋겠지만, 다섯 편 모두 맘에 들어서 어떤 작품을 골라도 수긍이 될 것 같다.

 

작가진을 들여다보면,

+ 재밌게 읽었던 [맹준열 외 8인] 이은용 작가님 : 북극곰의 사생활

+ 최근에 관심 있게 봤던 [3모둠의 용의자들] 하유지 작가님 : 그 여름, 설아와 고양이

+ 표지부터 시선을 잡아끌던 매력적인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설재인 작가님 : 강의 대본

+ 상상력 넘치는 [일주일의 학교], [일곱 모자 이야기] 김혜진 작가님 : 저세상 탐정

+ 처음으로 들은 오디오북 [사쿠라코 이야기] 남세오 작가님 : 파란불이 켜지면

 

기존 작품과 비슷한 색감과 질감인 작품들도 있지만, 기억 속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작품으로 놀라기도 했다. 앤솔로지 작품집 자체도 하나의 주제에서 뻗아나가는 다양한 가지들을 만나는 재미가 가득한데 아는 작가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하는 즐거움까지 더해지니 해피 어게인이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한 번뿐이라는 게 아닐까. 다시 '나'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지금을 이 순간을 집중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환생, 초기화, 분기점 등의 말들로 한 번의 인생이 아니라 'n차 인생'을 다루고 있다. 자신 마음대로 초기화시킬 수도 있고, 몇 겹일지 모르는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번 살아도 신처럼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수없이 반복된 n차 인생이라 해도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삶일 수는 없다.





0의 제왕으로 인생 초기화가 가능하지만 새로운 존재로 업그레이드되는 게 아닌 채여름. 가망 없는 지구를 위해 초기화, 좋아하는 고양이가 죽어서 초기화, 시험을 망쳐서 초기화. 이렇게 반복되는 인생이니 심드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여름이에게 설아가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겠어. 너랑 나랑 겨자랑 다 같이." 이 소박하고 다정한 소원이 여름이를 변하게 했다. 무의미한 n차 인생보다 소중한 게 무엇인지 이제서야 안 여름이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곁을 내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따스하다. 그 온기가 힘이 되어 미소 짓게 한다. 여름과 설아 그리고 고양이 겨자가 새로 써나갈 오늘을 응원한다. 지금 행복하자!

 

돌고래였던 기억을 간직한 북극곰이 소년으로 태어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생명으로 귀히 여긴다. 그 소년을 만나 그를 알아가게 되면서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한 소녀의 고백에 떨렸다. 자신의 전생이 뭐였는지 몰라서, 후생에 뭐가 될지 몰라서 그런다는 그 아이의 말에 먹먹해졌다.

 

작가의 연령대를 의심했던 [강의 대본], 현실에서 접해본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과의 일화를 소재로 통쾌하게 복수해 줘서 시원했다. 좋은 선생님들이 더 많지만, 씁쓸하게도 책 속의 선생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더 치를 떨었고 더 고소했고 더 시원했다.

 

가장 맘에 들었던 단편은 [저세상 탐정]이다. 본디 추리소설 덕후라 이런 포맷을 좋아하고 끌린다. 15세 중학생이 교통사고로 죽어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전생의 죄를 밝히는 거라니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을까. 저세상 재판하면 <신과 함께>가 떠오르는데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르다. 정말 묘하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증거자료로 제시된 전생 영상을 보면서 피고인 스스로가 놓친 증거를 찾아가면서 전생의 '나'를 변호하는 과정이 몰입하게 만든다. 이소 학생과 허 변호사가 인연이 닿은 것 같은 암시가 단편에서 또 다른 작품의 씨를 뿌리는 듯해 역시 작가라고 감탄하면서 읽었다. 진실을 찾아내서 원한을 푸는 게 목적인 저세상 법정에서 냉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 박재표 씨의 사연은 환생도 미루고 이소를 40년 기다렸다는 배경까지 더해져 매우 안타까웠다.

 

오싹한 이야기로 먼저 만난 남세오 작가의 [파란불이 켜지면]은 n차 인생이라고 해서 찬란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희와 수연의 반복되는 삶을 지켜보면서 의문이 뚜렷해졌다. 완벽한 삶이 존재하는가? 타인의 시선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1시간 정도 앞선 미래만 볼 수 있는 다희가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전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미래를 본다는 게 족쇄가 되어버린 다희의 삶은 타인이 보기에 완벽하지만 진정 행복은 수연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인생에 기분 좋은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진다.

 

나중 말고 바로 지금 행복한 오늘을 사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다정하게 속삭여주는 소설집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번 생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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