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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장편소설/창비/소설Y클럽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_첫 문장
지독하게 아픈 꿈을 꾸고 일어나 눈물 젖은 뺨을 닦으며 꿈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이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럴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이렇게 꿈이었다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꿈이 아니었기에 자기가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했던, 이제 고1인 16살 '나'를 만났다.
속이 뒤집혀 다 토해버렸으면서도 땅콩버터 맛 대보름 빵 맛이 각인되어버린 나.
빵은 지긋지긋하면서도 빵 한입에 우유 한 모금 물고서, 건조하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오늘분의 감정을 꼭꼭 씹어, 마음속 깊숙이 담아 둔 밀폐용기에 가두는 나.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가족(아버지와 배 선생과 무희)에게서 도망쳐야만 했던 나
도망쳐 나온 '나'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열쇠가 나를 울렸다. 엄마가 청량리역에 자신을 버리고 오던 날, 집 주소를 몰라서 돌아가기 어려웠던 '집' 그리고 아버지의 재혼 후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집'이 떠올라 가슴이 시렸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없어지지 않는 곳, 몸이 기억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던 '집'이 없어져 버린 그 아이가 꼭 챙겨야 했던 물건이 '열쇠'였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아직은 도망칠 수 없어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는 십 대 아이에게 아버지, 배 선생이 가하는 방임과 폭력은 떨어져 죽을 지도 모르지만 놓을 수 없던 썩은 동아줄마저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지도 없는 채로 우연히 거기 있었던 것들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그때부터 이유를 만들어간다고 해.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들의 흩어짐이 대원리 또는 숙명을 이뤄." _121쪽
『위저드 베이커리』
애써 부탁하지도 않아도 돌아봐 주고 이해해 주는 마법사와 파랑새를 만나 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함을 기르게 된다. 그 아이를 오해하지 않고 순수하게 인정해 주고 감사하다 말해주고, 충분히 울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마법사의 말처럼 이유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에게 적당한 이유가 되어줄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갓 구운 빵과 같은 온기가 혈관을 타고 번져 나갔다. _115쪽

흔히 결말 하면 열린 결말인지 닫힌 결말인지를 이야기하는 데 이 소설은 결말도 선택하게 한다. '경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면서 결과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쉬움과 후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게 2가지 결말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Y의 경우? N의 경우? YES or NO? 예전에는 배 선생과의 인연조차 없애버린 Y의 경우에 끌렸지만, 개정판으로 다시 만난 지금은 N의 경우에 기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결과를 지켜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때로는 후회와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다시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끔찍할 정도로 비참해 숨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되돌아갈 수 없다.
책에서는 그런 마법이 이루어졌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고통스러워졌다. - 타임 리와인더 - 마법사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책임을 나누어서 진다고, 시간을 마음대로 감아도 좋다고 허락했다지만, '내'가 뒤틀어 놓은 물질계와 비물질계를 다른 힘으로 붙들거나 되돌려야만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런 큰일을 잊어버린다는 것도, 모든 생명이 책임을 나누어서 진다는 것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다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나의 시간을 감았더니 운명의 소용돌이가 아가리를 벌려 내가 아닌 어린 생명을 꿀꺽 삼켜버렸다. 내가 시간을 되감아도 비극은 어디에선가 일어난다. 이미 벌어진 비극 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나의 행위가 부른 결과임을 알지조차 못하는 비극은 얼마나 끔찍한 잔인한 일인가. N의 경우처럼 오늘을 마주하고 선택하고 책임 짓고 매듭지어가는 시간을 가지는 '나'의 결말이 와닿는다. 두렵고 무섭지만 진실의 힘이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나'를 성장시켰다.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 _끝 문장
빵집 마법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다양한 물건들이 팔리고 있다. 정체불명의 빵들을 팔고 있지만 마법사는 확실히 경고하고 있다. 회원가입 안내문과 각 물품의 맨 마지막 줄에 인상적인 경고문을 명시하고 있다.
모든 마법은 자기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분만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는 변화가 어느 쪽이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비물질계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이 사이트를 찾는 이들, 우리 인간들은 이 문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냥 하는 소리로 치부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취해 원하는 욕망이나 결과 외에는 신경 쓸 만큼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선택으로 얼마나 무거운 책임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지 모른 채 마법사의 물품을 산다.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마법사에게 항의하고 전가하려는 이들의 이기적인 행태를 보면서 마법사가 짊어진 숙명의 무게 또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 문을 연 『위저드 베이커리』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법사와 파랑새가 반겨주는 그곳, 살면서 한 번쯤은 방문하고픈 그곳은 감사하게도 여전히 24시간 영업 중일 거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잔인하고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토록 매력적인 『위저드 베이커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마인드 커스터드 푸딩'을 주문하고 싶습니다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 나이기에.

<소설Y 클럽 3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