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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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가제본은 항상 설렘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글만으로 만나 오롯이 마음에 닿는 경험을 기대한다. 『호수의 일』 이 하얀 책은 '그대'라 불리길 원하는 작가님의 손 편지를 먼저 읽었으니 마음까지 한걸음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기 시작한다.

 

호수의 일/이현 지음/창비

 


'정호정'

앞으로 불러도 뒤로 불러도 정호정.

『호수의 일』 주인공으로 대한민국 강북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이다. 집에서의 호정과 집 밖에서의 호정은 사뭇 다르다. 집에서는 사춘기라 그런가 여기는 까칠하고 시니컬한 큰딸이지만 집 밖에서는 쌀쌀맞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격이 좋은 애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린다. 편한 친구이다. 그건 호정이가 좋아하는 자신이고 엄마는 모르고 알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는, 없게 된 자신이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호정의 반에 '강은기'가 전학 온다. 별다른 느낌 없던 그 애가 말을 걸어오고 서로 집이 가까워 자전거로 통학하는 그 애랑 마주치게 되면서 은기에게 관심이 가게 된다. 호정의 친구인 나래와 나래의 남자친구 보람 그리고 은기랑 점심을 같이 먹게 되면서 은기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강은기'

전학생. 낡은 폴더폰을 가지고 다니고 카톡을 안 하고 페이스북도 안 한다. 친구들이 물어보면 하고픈 대답만 하고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싫어하는 애들이 있다. 하지만 은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품은 애들.

어떤 질문은 그것만으로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아는 애들.

서로 품은 것을 알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지만 다른 이들과는 다른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 풋풋한 감정이 호정과 은기를 설레고 하고 지켜보는 나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들이 잡은 손, 따뜻한 온기를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잡은 손을 서로 놓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 소설은 호정이가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받는 형식으로 엮어진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의사는 때로 건성으로 듣는 것도 같고, 쓸데없는 걸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러니까 정시가 맞았다기보다, 수시가 싫었던 거네요?" _313쪽

 

호정이는 중증 우울증으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호정이는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마음속에 숨겨놓은 채 얼어붙은 호수처럼 살아왔다. 그러다 자신처럼 상처 입은 영혼, 다 내놓고 보여주지 못하는 상처를 가진 은기를 만나서 마음을 조금씩 열고 다가가게 되는 데...... 사건은 아무런 예고 없이 닥친다. 그래서 대비할 수 없었다.

 

은기의 상처도, 호정의 상처도 다 어른들이 가한 상처이다. 그것도 가족들이 말이다.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다'라는 흔히 하는 말에 '그게 왜 나야?' 비통한 마음마저 토해내지 못하는 호정을 보면서 미안하고 아프고 서러웠다. 나도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온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른인데 왜 이리 서툰 게 모르는 게 많은 지.

호정이 부모는 빚을 지고 할머니 집에 애를 맡기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호정은 오갈 데 없는 채,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곳에 내내 있어야 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부모와 고모, 삼촌 앞에서 자신의 생채기를 드러내지 못해서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 상처를 살피고 어루만지려 하는 할머니마저 아직은 마주할 수 없는 그 아이의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이다. 할머니도 원망이 가득한 그 시절 그곳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호정은 은기와의 시간이 끝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은기의 아픔을 억지로 헤집어놓은 그곳에 자신이 있었기에.

 

은기의 아픔이 타인에게는 한낱 이야깃거리, 비난거리처럼 그려지기도 했지만 다들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조용했기에 미처 전해지지 못한 마음들에 대한 환기가 고맙다. 사실과 결과뿐만이 아니라 진실을 보고자 하는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마음들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끈다.

 


 

봄이 오면 얼어붙은 호수가 스르르 녹듯이 호정은 은기를 만나 마음이 스르르 녹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온통 흔들렸기에 은기가 아프지 않기를, 슬프지 않기를 바라는 호정은 한 뼘 더 성장했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은기와 보낸 따듯한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단단해진 호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돌아돌아 은기와 호정 앞으로 성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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