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라진 뒤에/조수경/한겨레출판사
아동학대
입 밖으로 내뱉기조차 힘든 단어.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허물어졌는지 모른다. 수없이 허물어져도 또다시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져서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중간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글을 읽을 때 흐름이나 감정을 이어가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끊어읽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멈추지 않으면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다. 휘몰아치는 분노와 죄책감과 미안함에 숨을 고르고 다시 읽기 시작하면 또다시 이기적이고 파렴치하고 비겁한 어른들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소리조차 지르지 않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체념의 모습이 더 애달프다. 그 어린 생명이 참혹한 현실을 겪으면서 살아있지 않는 눈빛을 보이기까지 버려야 했던 희망과 사랑과 기대가 바닥에 넘쳐흐르는 데 어느 누구 하나 잡아주지 못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을 계기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2016년 3월 8일, 7살 아들을 학대하다가 길에 버린 부모가 경찰에 잡힌 사건이었으나 조사 중 계모의 진술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3살 위 누나와 함께 다녔던 센터에서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였으나, 경찰은 부모의 말만 듣고 아이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사회가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도 미온적인 태도로 대응하여 막을 수 있었던 큰 비극을 끝내 막지 못했다.
2020년 한해 아동학대 건수가 3만 905건이었다. 신고 건수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아동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를 받았을 것이다. 특히 2020년,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침체로 가정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가정 내 돌봄이 많아져서 그 피해 정도가 더 심각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공분을 산 2020년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정인이 사건'.
이 사건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도 아동학대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재판 결과 또한 국민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기준 형량에 따랐다는 형식적인 법원의 답변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걸 자명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1부'는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2부'는 학대당하는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이야기
'3부'는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죽고 묻혀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조차 없이 '남자', '아이'로 불러지는 존재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두 존재의 차이가 알려준다. '도우너'♡ '도우너'가 없었다면 '아이'도 '남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남자'가 '선생'에게 했던 것처럼 무조건 복종하며 일을 배워왔을 게다. 그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선택지 없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도우너'를 지키기 위해 '아이'는 선택지에 없는 선택을 했다. '도우너'를 구했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과연 바깥세상은 '아이'와 '도우너'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한정된 이들만 경험했던 '아이'에게 바깥세상은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몰라 언제든 쫓아올 수 있다고 불안에 떨지만, '도우너'를 위해 용기를 내본다. 그리고 '지하실의 개들'과 뒷마당의 개들처럼 학대를 당한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쓰레기봉투를 뒤지던 개는 잇몸 사이로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지만, '아이'는 개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다.
아이는 도우너와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지하실의 개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사라진다. 아빠와 아빠 여자친구에 의해 다용도실에 갇혀지내는 6살 유나, 거리에서 만난 9살 요미, 자신을 방치하고 놀러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16개월 아이.
같은 동네에서 아이들이 연달아 사라지지만, 어른들은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면서도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다. 유나 옆집 301호 김 모 씨, 유나 언니 한나 어린이집 정 선생,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 유 팀장, 유튜버 K, 목격자 최 모 씨, 미혼모 강 모 씨...... 학대인가 싶었지만 남의 집 일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고 불편한 관계가 되기 싫어서 애써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한나가 이상한 말을 했을 때, 한나가 어린이집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을 때 관심을 가졌다면 달라졌을 텐데 한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종알거리던 '사랑해'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귀요미'라는 의미로 '요미'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아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 때문에 할 수 없게 된 일, 포기해야 하는 즐거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이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아이를 언제 봤는지조차 몰랐다.
목격자 남편이 했던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힌다. 이렇게 무심한 어른이, 방관자인 어른이 많아서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건 아닌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는 간접적인 가해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오 군'과 임산부 '신 모 씨'가 '오영준'과 '신수연'으로 온전하게 불리는 순간은 그들이 사라진 아이를 찾으려는 관심을 보이고 노력하면서이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신수연의 말처럼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요미가 외투를 벗어 도우너에게 입혀주고 양말을 벗어 도우너의 작은 발에 신겨주고, 도우너가 외투를 벗어 아기 몸을 덮어주고 양말을 벗어 아기의 발에 끼워주려고 하듯이 우리 어른들도 그 어리고 작고 소중하고 귀한 생명들을 돌봐주고 지켜주면 된다. 손잡아 주고 어루만져 주고 한 번 더 웃어주면 된다. 그리고 관심 있게 둘러봐야 한다.
남의 집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우리 어른이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서로의 온기로 옥상에서 버텼듯이 우리 사회도 온기를 나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아이들만이라도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서는 힘들고 버거운 일,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작은 존재가 더 작은 존재를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동시에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어른들을 쏘아봤다. (240쪽)
"죽은 아이들이 한 일이야. 아이 하나가 죽어야 그나마, 아주 조금씩 세상이 변해가는 거예요."
"아이들만이라도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면 얼마나 좋아. 모든 아이들을 끌어안고 가는 게 결국 내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한데. 더불어 사는 게 우리 의무인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140쪽)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나는 기다리고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247쪽)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