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큐레이터』 박물관으로 출근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정명희 님께서 큐레이터의 세계를 담은 책을 출간하셨다.
한번쯤, 큐레이터/정명희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
아이들의 연령에 맞게 어린이박물관, 중앙박물관을 찾아서 학기 중, 방학 중 열심히 다녔던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분의 책이라 더 반가웠다. 그리고 전시회와 연계된 교육을 진행하셨던 분들이 학예사 - 큐레이터여서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학예사 - 큐레이터 직업은 명확한 개념 없이 막연하고 두리뭉실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미술관, 화랑을 통해 익숙해진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박물관 안에서는 어떤 자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오늘의 한정판'을 마주할 때면 우리의 심장은 조금 더 빨리 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비슷한 느낌은 전시를 준비할 때 내가 기대하는 따뜻한 광경이다. 느낌의 세계를 공유할 때면 어떤 대화도 필요하지 않다.
이런 느낌의 세계를 공유하기 위해 미래의 누군가가 유물 앞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이가 큐레이터인 것이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실로 다양했다. 유물을 소장품으로 만드는 전 과정을 담당할 뿐 아니라 소장품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업무, 소장품의 가치와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조사 연구를 한다. 관람객의 박물관에서의 경험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한 각종 교육과 강연 행사의 기획과 진행, 때로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이 없는 보고서와 자료를 만드는 '행정의 세계'도 큐레이터의 업무이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표면적으로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큐레이터의 업무일 뿐이며, 저자가 소개하는 일화들을 통해 알게 된 큐레이터의 일상은 다채롭고 수고스럽고 경이로웠다.
우리에게는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만 크게 다가오는 데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41만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대부분이 수장고에 있다고 한다. 저자의 중박(국립중앙박물관) 첫 발령 부서가 유물관리부여서 수장고에서 소장품 등록 일을 하였다고 한다. 수장고에 들어갈 때의 옷차림, 손톱에 대한 내용은 유물에 의한 유물을 위한 유물의 큐레이터임을 알 수 있었다. 유물에 닿지 않도록 만졌을 때 긁지 않도록 조심하고 주의하는 모습에서 전문성이, 진정성이 새삼 느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의 위치인 용산으로 이사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데 박물관을 새로 짓는 일부터 유물들을 포장하여 이사하는 일까지 큐레이터들이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 진심이 글을 통해 읽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과묵한 과거의 유물이 담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 암호를 풀듯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방문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큐레이터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의 관점이나 의도에 갇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와준 고마움을 담아 유물의 의미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88쪽) 전시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유물을 선정하고 소장품 뿐만이 아니라 각지, 각국에 있는 유물들을 대여하기 위한 수고를 통해 '안 보면 손해'인 전시회를 디자이너, 보존과학자 등 다양한 이들과 함께 여는 것이다.
<아주 사적인 중박 사용 설명서>과 <박물관 정원 예찬>은 국립중앙박물관 방문 계획을 짜게 만들었다. 높이에 압도당했던 경천사지 십층석탑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서유기의 완전한 도상이 새겨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층별로 저자가 애정 하는 장소들, 층마다 있는 카페 정보 등 날마다 박물관으로 출근하는 이가 소개하는 알찬 정보는 마음을 뛰게 하였다.
지도에 그려진 위풍당당한 중박과 주변 정원, 건물들이 새롭고 낯설게 다가와서 '왜 이제껏 찬찬히 둘러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를 부르고, '얼른 둘러보고 싶다. 직접 걷고 싶다.'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기억에 남는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비하인드가 인상적이다.
유물을 대여하기 위해 찾았던 사찰에서 도둑과 다를 바 없다는 말까지 들었던 회상은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체념의 상태에 이른 저자, 그런데 '체념'이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이라는 뜻 외에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는 뜻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도리'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 외에 '어떤 일을 해 나갈 방도'라는 뜻도 있었다. 이렇게 체념을 한 저자에게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도둑이라 칭했던 스님께서 유물 대여를 승낙하셨던 것이다. 이는 저자가 위의 경험을 한 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바른길과 방법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오래된 물건에서 풍기는 시간의 향기를 느끼며,
잘 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이들을 좋아하는 저자가 오늘도 큐레이터로서 매 순간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음이, 유물로 남은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미래의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이어주는 길이라는 걸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저자와 큐레이터로서의 저자의 양립이 힘겨워 보여 힘차게 일상을 이어가는 정명희 큐레이터님께 더 고맙다.
관람객 개인의 일상과 큐레이터의 경험이 만나고 서로를 좀 더 알게 될 때 박물관은 진정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는 게 아닐까.(147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편하게 박물관을 찾는 내일을 그려본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된 박물관의 큐레이터 세상으로 좀 더 흥미롭고 즐거운 박물관 나들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예사 -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간접 체험과 조언이 가득한 책이니 읽어보길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