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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시바와 판다의 사랑 이야기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귀여운 표지와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만화 에세이로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나, 꾸밈없는 사람이오. 대놓고 홍보하는 제목처럼 책 곳곳에서 저자의 털털함과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햄햄 지음/씨네21북스
1라운드 - 어느 서늘한 연애담
2라운드 - 기묘한 동거 시절
3라운드 -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동거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서 공감을 자아낸다. 이제 결혼 2년 차인 신혼이지만 긴 시간 연애와 동거로 더 이상 볶을 깨가 없어서 잔잔한 시작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
다. 결혼 16년 차에 접어든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달달한 그들이기에 보는 내내 향긋하고 달콤한 내음에 행복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공감 가는 에피소드
자립적인 두 남녀가 연애 시작부터 결혼까지 일상을 필터링하지 않고 보여주는 형식이라 MZ 세대의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가 운명처럼 극적이지 않아서 더 공감이 갔다. 한번 눈이 닿은 곳은 자연스레 시선이 가게 된다. 시바도 같은 회사에서 판다의 등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모든 시야에 꽉 차 버렸다.
서늘한 연애담 에피소드 중 반지하 판다의 첫 자취방 이야기들이 많다. 안타까운 청년들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시간 속에서 솟아나 뻗어나가는 사랑의 줄기가 그들을 더 강하게 묶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지하 방에 핀 곰팡이를 신사임당의 초충도 속 포도송이처럼 멋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바의 독특함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녀를 한결같이 잔잔하게 바라봐 주고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판다의 듬직함이 멋지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로.
연애와는 또 다른, 현실적인 면을 알게 하고 서로에 대해 더 깊숙이 들어가는 문을 여는 동거 생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맞다'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까지 한 시바와 판다 커플.
중증 개털 알레르기 보유자면서도 반려견 '하루'와 죽고 못 사는 관계인 판다처럼 이미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가 된 시바와 판다 그리고 하루의 일상이 사랑스러운 그림체와 색감으로 포근하게 그려져서 실제 투닥투닥거리는 싸움 장면이 그려져도, 시바의 불타오르는 분노가 느껴져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 너 좋다는 여자가 생긴다면 -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빠질 수 있구나.
판다가 인기 많을까 봐 살 빼고 머리숱 많아지는 게 싫다는 말에 한바탕 웃고,
한날한시에 같이 죽게 해달라는 소원에 눈이 번쩍 뜨이고,
바람피우는 꿈에 화가 나서 자고 있는 판다의 뺨을 찰싹 때리고 배신감에 우는 시바의 모습에
저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천천히 우리들의 속도대로, 그렇게 가자.
단지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 쫌 들어주면서 살지 뭐. 들어주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해 주면 좋겠지만, 나 또한 그렇게 해줄 수 없음을 알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지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계속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남편의 지난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여자, 남자, 연인의 관계가 아닌 엄마, 아빠, 주부, 가장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옅어지고 사라져가던 사랑의 기억들이 퐁! 퐁! 퐁! 튀어나왔다. 괜스레 소파에서 누워자고 있는 남편에게 담요를 덮어주게 된다. 그리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을 건넨다. 혼자 헤매지 않고 두 손 꼭 잡고 앞으로 걸어가는 시바와 판다의 내일을 응원해 본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연말연시에 따뜻한 집안에서 꼬물꼬물 거리면서 보면 좋을 책 ♡
바라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던 시간을 불러와 웃고 울고 살아가는 내음 가득한 우리의 이야기와 시바&판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요.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