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스노볼 1~2 (양장) - 전2권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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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박소영/창비출판사/소설Y클럽/대본집03

 

 

이번 대본집은 2권으로 웅장한 서사가 펼쳐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평균기온이 영하 40°C인 지구에서 유일하게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 스노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오늘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최저기온이 영하 5°C라는 소식에 아이들 발열 내복과 핫팩 그리고 목도리까지 챙기는 등 아이들 등굣길에 부산을 떨었던 나의 모습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날씨이다.

 

선택받은 자만이 따뜻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 스노볼!

평범한 열여섯 살 전초밤은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던 그 세계에 원했던 디렉터가 아닌 스노볼 최상위 액터! 고해리로 들어가게 된다. 전초밤이 아닌 고해리 대역으로 들어가는 세계이므로,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가족들에게조차 거짓 정보를 전한 채 시작한다. 그날 만났던 조미류와 쿠퍼 라팔리의 운명이 스노볼 세계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나도, 전초밤도 결코 몰랐다. 과연 알았다면 전초밤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소설 중간에도 이런 장면이 나왔지만 스노볼에 대한 환상, 갈망이 불안, 질문...... 모든 것을 희석시키고 의미를 잃게 만들었기에 전초밤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천혜의 지열이 솟아나는 기적의 땅, 스노볼!

스노볼은 이백 년 전에 갑작스레 시작된 혹한기에 세워졌다.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정부가 무너지고 결국은 국가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시기에 '이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자가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에 거울 돔을 세워 외부인으로부터 지역 주민을 지켜내었다. 스노볼 시스템은 전쟁 문명 이후 폭력을 지양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세상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이본은 지열이 존재하는 지역을 찾아 유리 돔을 세워 스노볼을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본 미디어 그룹을 창립하여 액터 오디션을 개최했고,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하였다.

스노볼은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일상을 찍고, 그 찍은 영상을 디렉터가 편집하여 드라마로 방영한다. 재건 가문인 이본 미디어 그룹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액터와 디렉터를 보조하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전력을 생산하거나 사생활을 공유하라는 시민의 기본적 의무가 일절 주어지지 않는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드라마를 시청하기 위해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한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이 스노볼에 입성하기 위해 액터 오디션을 보거나 필름 스쿨에 지원하여 디렉터를 꿈꾼다. 전초밤 역시 디렉터를 꿈꾸는 평범한 열여섯 살 소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스노볼 디렉터 차설이 전초밤을 찾아와 스노볼 최상위 액터 고해리 대역을 제안한다. 고해리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면서.

 

전초밤은 신입 액터를 위해 이본이 주최한 파티에서 고해리 대역을 대외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날 의도치 않게 이본이 숨기고 있는 커다란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의미는 알지 못한 채로. 그리고 고해리 역할에 익숙해질수록 바깥세상에서는 동경 그 자체였던 그녀의 삶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설 디렉터는 고해리를 이본 미디어 그룹의 이본회와 결혼시켜 무한 권력 이본 그룹 또한 자신의 디렉팅 안에 끌어들이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밟고 있었다. 첫 만남부터 초밤을 테스트하고 조종했던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초밤을 철저히 이용하고 버렸다. 이 원대한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벌인 추악하고 끔찍한 기획이 스노볼 1의 큰 줄기이다.

스노볼 2에서는 전초밤이 발견했던 이본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축복의 땅으로 알려진 스노볼, 공정함을 강조하는 이본 그룹!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진실이 없었다. 추악한 인간의 욕심으로 가득 찬 유리 돔 스노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소녀들이 뭉쳤다.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평온, 행복을 위해 그리고 진실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너 자신을 속여. _ 이본회

 

「스노볼」이 담고 있는 세계는 경이롭다. 「트루먼쇼」, 「설국열차」, 「가타카」, 「아일랜드」등 개봉 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들이 생각났다. 삶을 관찰한다, 인간을 분류하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낸다, 보험으로 복제인간을 만든다 등 흥미롭고 반향이 큰 설정들을 통해 「스노볼」은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트루먼쇼처럼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삶을 평범한 일상으로 볼 수 있을까? 더욱이 트루먼은 본인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행동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카메라 앞에 선 스노볼 액터는 자신의 의지대로 순수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스노볼을 지탱하는 건 공정한 시스템입니다.

표면적인 공정함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재난 온도계가 아닌가 싶다. 액터가 의무를 내팽개치고 제멋대로 굴 때마다 재난 온도계의 온도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쌓여서 100점이 되면 거대 불꽃이 재난 온도계를 통째로 불태워 버리고 재난 추첨이 시작된다. 재밌는 것은 스노볼은 선택된 자들만의 왕국이지만, 스노볼이 겪는 재난은 평등하게 바깥세상 사람들까지 다 제안할 수 있다. 엽서까지 제작해서 제공하는 공정함을 보여주고, 채택된 재난 엽서의 작성자에게 선물이 제공된다. 재난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이에게는 재미이자 오락이다. 자신에게는 순수한 바람이나 참신한 아이디어일 뿐이지만 누군가는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재난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다. 이토록 교묘한 방법으로 이본은 인간의 목숨과 인생을 가지고 논다.

 

신처럼 군림했던 이본 그룹,

그 신을 굴복시키고 싶었던 차설,

그 신을 없애고 또 다른 신이 되고 싶었던 신이채.

모두 자신의 목표, 욕망 실현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원대한 꿈 그래서 누구나 그 뜻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자신의 길에 방해되는 이를 가차 없이 제거하는 괴물로 변해버렸다. 목표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상실한 그들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였다. 이렇게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100여 년의 시간을 이본 미디어 그룹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던 스노볼 세계. 밝혀지면 안 되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설사 핏줄이더라도 과감하게 처리하는 냉정함이 있기에 그들이 그 긴 시간 동안 스노볼을 지배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모든 이들이 다 순순히 침묵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추방당하고 각종 약물로 사람들의 의심과 고통을 잠재우고, 최면으로는 거짓 공포를 자극해도,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찾아, 이본의 마수가 미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그들의 반항을 멈추지 않는다. 이본이 짜놓은 연극 판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는 자각과 인식, 다짐은 스노볼에 작은 균열을 가져오고 있었다.

'전초밤'의 용기가 그 균열에 힘을 가해 이본 미디어 그룹의 거짓된 실체를 낱낱이 밝혀낸다. 스노볼 1에서도 스노볼 2에서도 카메라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퍼포먼스는 통쾌하다. 이본이 디렉팅 하던 그 공간을 도리어 그들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 점이 의미 깊다.

 


 

이본이 자신들의 특권을 위해 방송의 노예, 약물의 노예, 최면의 노예로 만들었던 사람들을 깨우는 일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구원자를 자처했던 이본 미디어 그룹의 '이본영' 회장은 그녀가 오락거리로 만들고 비웃었던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책 내용 중 - 

 


영웅은 타인을 위해 세상을 구하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거야.

나를 향한 금기와 한계를 깨기 위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어 가는 것. 그게 세상을 바꾸는 일의 본질이야. (차설)

 

당신은 대체 뭘 위해서 세상을 바꾸려는 건데? (전초밤)

 

너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내가 짜놓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고도, 너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이본영)

 

내일이 오면 이본은 네게 두 가지를 포기시킬 거고, 모레가 오면 세 가지를 포기시킬 거야. 그렇게 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 테고, 결국 네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것마저 모조리 빼앗기겠지. (차설)


 

스노볼에서 지낸 '초여름 밤의 온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자신'으로 행복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오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소설Y 클럽 2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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