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 채널을 운영 중인 전승환 작가가 두 번째 인문 에세이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을 출간하였다. 사실 SNS 사용을 잘 하지 않는 이라(블로그만 어떻게 끄적끄적 하는 깜냥) 이번에 알게 된 채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도중에 고향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카톡" 청량한 음성 뒤 뜨는 화면은 전승환 작가의 채널 『책 읽어주는 남자』 링크를 공유한 것이었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놀라웠다. 근 1년 만에 연락이 온 건데 어떻게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저자 채널을 보낸 것인지 신통방통했다. 친구도 자초지종을 듣고는 덩달아 놀랐다. 이렇게 옅어졌던 인연이 다시 도드라지고 추억이 몽글몽글 살아난다. 삶은 이렇게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사는 게 재밌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전승환/다산초당
'관계'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우리'라는 세계에 대한 문장들과 의미를 성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학, 철학, 심리학 그리고 예술작품을 소개해 주고 있다.
- 내 마음의 빛을 찾아주는 인생의 문장들 - 부제에 걸맞게 책 한 권에 담긴 많은 문장과 예술 작품들이 마치 안개 자욱한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다 발견한 한줄기 빛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한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꼭지별로 섬세하게 선정된 문장들을 읽다 보면 책 전체가 궁금해져서 작가와 책 이름을 따로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차례를 살펴보니 별도로 '인생의 문장들'의 출처 페이지가 있어서 고마웠다.
코로나19 창궐 후 독서량 중 에세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오락, 흥미 위주의 독서를 즐겨 했는데 요즘에는 인문, 여행, 철학 등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를 읽게 된다.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우울증 이름이 나올 만큼 암울하고도 끝이 없는 터널 속에 갇힌 나날들을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살펴주는 심리학, 인문 에세이로 다독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 책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원해지기 쉬운 '관계'에 대한 책이니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나'로 시작해서 '너'에게 다가가 '우리'가 되어 함께 성장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진실된 '관계'를 말하고 있는 이 책은 마치 전승환 작가가 조곤조곤(그의 음성을 한 번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읽어주는 것처럼 따스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무리해서 이끌려고 하지 않고,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나'를 사랑하면서 옆에 있는 '너'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배려의 손길을 적절한 문장과 예술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23쪽)
'이름'하면 떠오르는 김춘수 시인의 「꽃」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_ 박주영 부장판사의 「판결문」 (자살방조미수 사건의 판결문 중 마지막 문장)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59쪽)
현재의 인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자신 안에 새로운 인격을 기르면 됩니다. 인격은 새로 자랍니다. _ 다사카 히로시의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
! 후회해 본 적 있나요?(77쪽)
이루지 못하리 마을에 살고 있는 '하려고 했었는데', '하지 않았음' 쌍둥이와 그들을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할 수 있었는데'가 꿈속에 찾아온 이야기 _ 정채봉 작가의 「이 순간」 동화책
! 내 이름을 주고 싶은 사람(108쪽)
부부 김환기 화가와 김향안 수필가&미술평론가
더 좋은 반쪽을 만나야겠다는 바람은 더 좋은 반쪽이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희망하게 되었어요. 나의 성장을 이끌고 그의 성장이 또 나를 성장하게 하면서 서로에게 점점 더 잘 맞는 반쪽이 되어가는 일 _ 정현주 작가의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에세이
! 사랑을 하니 우주가 생겼다(119쪽)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의 성이 생긴다는 것을. _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스위트 히어애프터」 소설
! 한 사람의 의미(134쪽)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법(263쪽)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_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
! 익어가고 있습니다(271쪽)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꽃이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_ 박우현 시인의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시
전승환 작가가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제한 문장들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리 내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
「한 사람의 의미」 꼭지에서 소개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가 크게 다가왔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그렇게 크게 느껴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파도가 되어 나에게 몰아치는 듯한 감격과 감사 그리고 부담을 느꼈다. 그렇게 부딪쳐오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진실되어야 한다는 부담은 그 사람과 나의 관계 속 사랑과 행복과 당위로 지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20대를 꽉 채웠던 요시모토 바나나♥ 「사랑을 하니 우주가 생겼다」 꼭지에서 소개된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스위트 히어애프터」 소설 중 문구가 부담을 바람으로 날려버린다.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의 성이 생긴다.' 시나브로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믿음과 의지가 큰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소소한 행위로 가능하다는 그녀의 글은 해볼 만하다는 다짐을 선물하고 있다.
당신의 눈물을 닦았던 두 손으로 다른 사람을 안아줄 수 있었으면 한다. _ 김윤나 작가의 「당신을 믿어요」(4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기억하는 것들이다. _ 장 르누아르 영화감독
"외로워도 괜찮다. 우리에겐 이렇게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해줄 존재가 되어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현대 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 작품의 사탕 더미에서 사탕 하나를 빼서 그와 그녀의 사랑을 음미하고 있다. 내가 빼간 사탕만큼 다시 채워지는 그들의 사랑은 영원불멸하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고 위로를 주고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삶,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책,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을 다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이 겨울에 온기가 되어줄 책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