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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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9만 5천 명입니다."

"가출이나 일시적인 잠적을 뺀, 순순하게 실종된 사람이 9만 5천 명이죠.

쉽게 말해, 하루에 260명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우연히 접한 신문기사가 모티브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 <화성의 시간>

- 「사망보험금 타려 아내 5년간 감금」 서울신문, 2012.7.2

 

유영민 작가가 풀어내는 서사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한해 실종 인구가 10만 명 가까이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루에 260명이라니,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한 줄기 답이 될 수 있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 작 <Study Head of a Young Woman> 속 여인의 시선 처리가 마음을 흔드는 <화성의 시간>

 

화성의 시간/유영민/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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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어느 날,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는 여자가 집 근처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 이후 실종이 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여자의 오빠 문창수가 민간조사원 김성환에게 6년 전 사라진 여동생을 찾아달라는 조사를 부탁합니다. 실종된 지 5년이 지나 실종선고 심판을 요청한 상태로 선고가 내려지면 실종자는 법적 사망으로 간주되며 모든 과정에 1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문창수는 실종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여동생 문미옥을 찾고자 합니다. 선고가 내려지면 매부인 오두진이 보험금으로 30억 원을 타게 되기 때문이죠.

 

성환은 6년 전 사라진 여자, 문미옥을 찾기 시작합니다. 사실 성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민간조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경찰이었던 그는 많지 않은 손에 쥔 정보로 문미옥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성환은 조사를 진행하면서 문미옥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게 됩니다.

한결같이 그녀를 밝고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 결혼했는데 다른 직원들은 아무런 낌새도 챌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서 만난 할머니께서는 부부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고 얘기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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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초반에 오두진에게 가졌던 의심이 옅어지고 다른 가설이 등장합니다.

- 보험금 사기극 -

딱 6년의 시간을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 화성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미옥.

가해자-피해자가 아닌 공모를 한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벼랑 끝까지 몰린 미옥의 사정이 충분히 공감되는 상황이라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 이야기인 듯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결핍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공허와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두진, 문미옥, 김성환, 아내, 노숙자 야구모자

 

그 결핍을 어떤 방식으로 채울지는 각자 다 다들 것입니다. 하지만 결핍이 너무나 크면 결국에는 잡아먹혀 공허한 껍데기만 남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두진처럼 말이죠.

오두진이 만드는 디오라마가, 문미옥의 생일 별자리 수호성인 화성이 그 공허와 결핍을 공간화해서 보여줍니다.

 

하지만 오두진과 다르게 문미옥은 희망을 꿈꿉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면서 영혼과 기회라는 희망의 빛을 키웁니다. 이는 현재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서이지 않을까 싶네요.

오두진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결핍으로 공허의 방으로 가득 찬 어른으로 자랐고,

문미옥은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소중한 아이까지 낳게 되어 진정한 가정을 이루었기에 돈이 결과인 공모 관계였지만 목적이 달랐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파멸을 부르듯 오두진은 끝을 보려 하지만, 그에게도 빛이 있었네요. 살갑지는 않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곁을 두고 있는 존재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성훈과 아내도, 노숙인 야구모자도 실체가 없는 삶, 허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모성 자체인 문미옥을 만나면서 그들은 변하게 됩니다. 그동안 그들을 짓눌렀던 분노, 슬픔 그리고 죄책감과 공허를 조금씩 내보내고 바깥세상으로 꿋꿋이 나갈 채비를 합니다.

삶의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아름다움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지은 윤슬이라는 이름의 딸과 미옥이가 살아갈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내일을 그려봅니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을 맘껏 누리길.

 

공생하지 못하고 결핍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소설 속에서 허무하고 가슴 아픈 사건사고들로 접하니 더 슬프고 죄책감이 듭니다. 그리고 내 위치,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옆에 있는 아이가 사람이 결핍되지 않도록 밝은 미소와 따뜻한 온기를 전해줘야겠습니다.

 

그리고 미옥이 말한 것처럼 상처 줬던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마음과 슬픔의 마음과 그리고...... 용서의 마음이 깃든 자비를 말이죠.

살면서 거치는 모든 인연이 부처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고, 사실상 나쁜 인연이란 없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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