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방 책 먹는 고래 25
최미혜 지음, 어수현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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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 그 붉은빛을 뿜어낸 태양을 쏘고 싶었다.

붉은 방/최미혜 글/어수현 그림/고래책빵

 


언니는 하늘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탕! 탕! 탕!"

언니의 칼칼한 목소리에 태양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나라 빼앗긴 설움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낙인처럼 그분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나라는 해방되고 세계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로 일어섰지만, 그분들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지독하고도 끔찍한 대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는 일부 의식 있는 사람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할 듯싶다. 과거로 묻어두기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에,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비극이기에 현재의 우리가 그분들의 고통, 아픔에 응답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기는커녕 국제적인 영향력을 과시하여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저 오만한 일본의 행태와 그에 동조하여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논문을 버젓이 세상에 내놓은 미국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이것이 우리가 과거로 묻어둬서는 안되는 자명한 이유이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혜주는 갑자기 왕할머니와 살게 되어 못마땅하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왕할머니는 재작년 겨울부터 단기기억장애로 이상해지셨다. 왕할머니의 병세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상황의 변화로 혜주 아빠는 왕할머니를 집에 모시고자 한다.

혜주는 소녀 시절 왕할머니 사진을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어여쁜 소녀로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이 좋아서이다. 그런데 나와 살게 된 왕할머니는 심술궂은 백발마녀이다.

혜주는 왕할머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고역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왕할머니는 본인을 언니라고 부르라고 한다. 자신을 증손녀 혜주가 아니라 여동생 영자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는 살 수 없게 된 혜주는 전쟁을 선포했다.

 


 

왕할머니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동자 불상 덕분이다.

동자 불상은 점집 하던 분이 사정이 있어 잠깐 두고 간 건데 왕할머니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존재이다.

 

귀가 있으면서 넌 들으려고도 안 하지?

동자의 눈빛이 나를 쏘아보았다.


위안부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표현

 

혜주는 이렇게 왕할머니의 과거를 알게 된다.

왕할머니 박명자, 왕할머니 친구 아녜스 김순녀, 오봉팔 할아버지는 한마을에 살던 친구이다.

명자 왕할머니와 봉팔 할아버지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으나, 일제 강점기 시대에 강제징용으로 위안부로 탄광 노동자로 끌려가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 또 아녜스 김순녀 할머니는 그 당시 왕할머니의 인생을 꼬이게 해서 왕할머니를 매일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순녀 할머니도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혜주가 활동하고 있는 연극반 동아리 소쩍새 친구들과 옥탑방 완희 오빠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자 완희 오빠는 특별한 제안 하나를 한다. 왕할머니와 아녜스, 오봉팔 할아버지의 아픔을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자고 한다. 별똥별로 비유한 표현이 마음을 울린다. 과거의 아픔이 우리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을 담아 보내는 게 별똥별이라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왕할머니 일행이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니 이제 현재를 사는 너희가 응답할 차례다.

이제 혜주, 주은, 재혁은 적극적으로 왕할머니, 아녜스, 파리 오빠(봉팔 할아버지 애칭)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오래된 일기장에서 사슴 눈빛의 소녀가 튀어나왔다.

그 영롱한 눈빛이 겁에 질려 먹빛으로 변하고 차츰 빛을 잃어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다시 읽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도 10대 시절이 있었다는걸.

할머니에게도 우리처럼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빛바랜 일기와 사진은 그걸 말해주었다. (p.81)

 


열여섯 살 찔레꽃 대본 & 연극


희나리 삼총사와 함께 한 연극 『열여설 살 찔레꽃』은 관객과 배우의 구분이 없이, 과거와 현재의 구분 없이 그분들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제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희나리 삼총사의 과거가 현재의 우리에게 닿아 우물 속에 갇힌 숨겨야 하는 비밀이 아니라, 함께 치유해가야 할 고통이 되었다.

 

지긋지긋한 시절이 끔찍해서 태양을 피해 눈을 꼭 감았건만 태양빛이 꿈속까지 따라와 뇌를 갉아먹었다는 왕할머니. 이제는 태양을 노려볼 수 있어.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아녜스와 파리 오빠, 혜주, 주은, 재혁, 완희 오빠와 나누면서 드디어 태양을 쏘았다. "탕! 탕! 탕!"

"어디에 있는 네가 무얼 하든 난 네 편이다." 이렇게 형성된 유대감, 연대감은 붉은 방에 갇힌 왕할머니를 구해냈다.

 

위안부에 대한 아픔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아픔을 현세대와 연대하여 치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최미혜 작가님의 <붉은 방>

왕할머니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고자 했던 혜주가 중학생이 되면 오봉팔 할아버지가 속한 장애인 협회에 찾아가 외롭고 힘든 분들을 만난다는 계획을 얘기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관심과 활동으로 시대의 아픔이 잊히지 않고 치유되기를 희망한다.

 

최미혜 작가님이 저자 글에서 밝힌 현재에도 존재하는 붉은 방, 그 아픔에도 응답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붉은 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그리고 따뜻한 연대를 말하고 있는 동화책 <붉은 방>을 많은 이들이 읽고 동참하길 바란다.

 

>> 책에서 만난 어여쁜 순우리말 <<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동화책에서는 연극을 함께 하는 극단 이름)

* 희나리 : 덜 마른 장작

(동화책에서는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불속에 던지면 희나리가 소리를 내며 천지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처럼 왕할머니네들이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의미로 희나리 삼총사로 부른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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