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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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_시그리드 누네즈

이제 그녀의 이름이 내 가슴에 새겨졌다.

담담하면서도 가슴을 관통하는 그녀의 문체는 그녀가 말하는 주제의식을 배가시키면서 나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지내요/시그리드 누네즈/정소영 옮김/엘리



어떻게 지내요? 이 한마디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시작된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는 주인공이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친구에게 안락사를 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함께 해주길 부탁하고 그 부탁을 받아들이기까지 '나'가 느끼는 당혹, 혼란, 인정, 공감 등이 주된 이야기이다.


말기 암 환자, 호스트와 고양이 부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든여섯 살의 할머니, 그리고 '나'의 일상 속 여성, 이야기 속 여성 등이 등장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전 애인. 세상은 이미 끝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극단적인 내용으로 강연을 다닌다. 친구를 병문안하기 위해 간 곳에서 그의 강연을 듣고 다시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기울여주고 안부를 묻는 '나'를 중심으로 주변 이야기들이 서로의 교집합을 공유하며 진행되어서 쉽게 읽을 수 없지만, 집중하면서 읽기에 그 이야기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되고 담백한 문체가 시그리드 누네즈 작가의 다정한 염려를 드러내니 절로 공감하게 된다.


나로선 그것이 축복이라고 늘 생각했다. 나이 드는 것이 얼마나 서글프고 고통스러운지 다 아는 젊음은 전혀 젊음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_66쪽




어떤 동네의 어떤 집에 있든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친구에겐 얼마나 중요한지, 그 사실이 거의 견디기 힘든 동통처럼 찾아들었다. _140쪽





2부는

'나'와 친구가 안락사를 위해 다른 공간으로 떠나서 지내는 이야기이다.

그곳에 가서 생활하면서 '나'는 친구와 깊은 교류를 나누게 된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통하는 정신적 교감, 원래 이렇게 같이 살아왔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유일하게 이 비밀을 털어놓은 전 애인은 자신과 살 때도 그랬다고 말한다. '나'는 공감력이 큰 인물인 것 같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_166,7쪽


3부는

다시 친구집으로 와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겪는 그녀의 내면적 고통, 혼란들로 구성된다.

친구의 집단치료에서 접한 안타까운 여성의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이것은 내가 지금껏 들은 가장 슬픈 이야기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 지 모르기에 수치스럽다. 그녀의 고통을 인정하는 게 너무 두려워 부정해버린 그들, 나, 너, 우리로 인해 그녀는 더 아팠을까봐...... 병으로 인한 고통이 아팠을까? 내가 안다는 걸 나를 빼고 다 모르는 것이 더 아팠을까? 모르겠다.


그냥 서로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내가 화해를 했어. _ 244쪽

나는 애를 썼다.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

실패한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_252쪽




어떻게 지내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따뜻한 염려의 마음.

이글 속에 녹아든 인생 곳곳의 고통에 귀기울여주고 안아주고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벅차게 다가온다. 다들 거리를 둬야하는 요즘, 진심어린 안부 한마디 건네는 마음이 절실하다.


공유 정신병. 안락사를 위해 함께 하는 나'와 친구를 보면서 전 애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 또한 손자들에게 용서받을 명분을 위해 '인류는 가망이 없다'는 강연을 계속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한다.

약간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안락사, 존엄사 모두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마지막을 맞이하고자 한다는 목적이기에 나는 기본적으로는 찬성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내 사랑하는 이들이 직면한 현실이 아니기에 이론적으로 내린 결론일 것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쉽지않은 질문에 어떻게 지내요? 실천적인 답변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안락사를 하려는 친구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이니 어둡고 침울할 것 같지만, 그 묵직한 죽음을 앞두고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여정에서도 유머와 웃음, 사랑이 있기에 삶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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