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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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넘기며 '탁' 소리와 함께 책을 내려놓았다. 로버트 판타노를 떨쳐내고 싶은데 들러붙어 마음이 먹먹하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로버트 판타노 지음/노지양 옮김/자음과모음


죽음을 선고받은 작가의 마지막 에세이를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고 초반에는 염세적인 문체에 담담히 읽어갔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들어설 때쯤 무너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면서도 무너진 그를, 자아와 분리된 그를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끝까지 삶과 죽음에 대해, 자신에 대해 통찰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그에게 부러움 마저 느낀다. 비관적이고 이성적인 글 너머 삶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가득하다.


212쪽


한 사람의 죽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그가 서술하는 문장과 문장 사이 뿌리내린 이미지들이 반증과 역설이 넘쳐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피어나 나를 흔들어놓았다. 그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자아, 삶, 죽음에 대한 해답은 찾아 헤맬 때는 결코 찾을 수 없고 해답 찾기를 멈추었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죽음을 선고받고 오히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일종의 평화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

평생 동안 누가 언제 어떻게 날 때릴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한 방 먹은 것이다.(15쪽)

아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인다. 인생이 짧게 끝났는지 아닌지는 수명이 아닌 길고 풍요로운 삶이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고난과 환멸로 가득한 100년과 환희와 영광으로 채워진 15년으로 비교해 15년을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기대보다 짧은 삶이나 기대보다 길지만 고통스럽고 처참한 삶은 똑같이 슬프다.



죽음을 앞두고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연장하려는 그를 보면서 삶에 대한 의미와 자세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연장하려는 삶의 시간을 고독에, 자신에게 집중한다. 본시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이가 아니었고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보여주는 가족, 친척, 지인들의 일련의 말과 행동들이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자기 자신만의 시간으로 침착하여 삶을 죽음을 우주를 사색하기를 원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런 고통의 시간 끝에 순전히 그의 의지로 완성되어 우리를 찾아왔다. 천천히 한자 한자 읽다 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순수한 삶을 느끼게 된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아닌 자신에게 정직한 삶,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 그래서 자기답게 사는 삶을 갈구하고 있다.

참 어렵다. 하루에도 수십 번 넘는 선택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진실되게 살아갈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 삶을 생각하는 이와 무시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이의 하루는 무척 다를 것이다.

청초하면서도 삶의 온기가 머무르는 표지처럼 그의 에세이는 삶을 감싸는 온기가 있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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