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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평점 :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다소 과격하고 생경한 느낌의 이 제목은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조선인이 소동을 틈타 우물에 독을 풀었다'와 같은 유언비어를 정말로 믿은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급조하여, 죽창과 곤봉, 단도 등 흉기를 들고, 그전까지 이웃에서 함께 생활하던 재일 조선인을 차례차례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 보금자리가 망가지고 가족들이 죽고 다치는 참사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독같이 퍼진 유언비어에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 없이 가차 없이 이웃이었던 재일 조선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버린 비극을 떠올려보면 그 비참함에 온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 비난, 거짓 뉴스들은 처음에는 '그런가? 에이, 그럴 리가?'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집요하게 접하다 보면 어느새 '그럴 수도 있지. 그럴 거야.'가 되다가 '그랬지. 정말 그랬어.' 확신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깊게 사고하지 않고 자꾸 노출되다 보면 어느새 기억에 남아 사실처럼 느껴지게 되죠. 이렇게 유언비어, 거짓 뉴스 등은 부정적인 영향력을 키우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까지 연출하게 됩니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 소설은 21세기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혐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 절망을 담고 있습니다. 재일 한국인 3세 이용덕 저자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의 실태를 보면서 그 실체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에게 재일 한국인은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모호한 존재입니다. 한국인을 부모로 두어서 한국 문화를 알게 모르게 접했을지 모르지만 삶의 기반은 일본이기에 일본 문화와 사고방식이 익숙한 지라 정체성을 확립하기 힘들었으리라 싶지만, 이 또한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일 한국인들도 한국을 '모국'이라 생각하는 이, 일본을 '모국'이라 생각하는 이가 등장하듯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일 한국인이기에 그들이 처한 현실은 내가 겪는 것 같은 아픔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아니 소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는 혐오, 증오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지금 유난히 혐오 뉴스가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혐오 범죄의 대상은 주로 약자입니다. 노인, 흑인, 아시아인, 여자들이죠. 이 소설에서도 '김마야'라는 재일 한국인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사건들이 전개됩니다. '혐한'을 정치적으로 주도하는 당과 착착 진행되는 불합리한 입법 등 사회, 경제 압박뿐만 아니라 문학, SNS 등 일상에서 가해지는 폭력들은 재일 한국인들을 끝도 없는 벼랑으로 몰아갑니다.
살아남고자 버텨내고자 재일 한국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박이화의 '청년회' 활동은 '귀국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이 또한 주도권을 뺏기고 한국에서의 생활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가시와기 다이치는 '혐한'의 세계를 좋은 세계로 만드는 것, 차별을 멈추는 것을 목적으로 새로운 계획을 짜게 됩니다. 그를 위해 차근차근 사람들을 모집합니다. 폭력으로 대응하던 재일 한국인 윤신, 혐오 범죄의 피해자 '김마야'의 오빠 김태수, 청년회 동료였던 48전 전패의 양선명 그리고 극우보수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슬픈 청년 기지마 나리토시 이렇게 5명, 아니 그의 부인 가시와기 아오이까지 총 6명이 그 혼신의 반격 주인공들입니다. (그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은 책을 통해 접해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다이치와 동료들이 벌이는 그 끔찍한 계획은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을까요? 혐오가 끔찍하다고 이를 끝내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위해 선택한 이들의 계획에 저는 결코 찬성할 수 없지만 그런 극단적인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든 혐오의 세계를 직시해야 할 이유는 명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실행된 이후 사회가 변하는 흐름 역시 희망, 난관론 일색이 아닌 점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고려해야겠습니다.
좋은 세계를 향한 김마야의 의지와 노력은 사후 오빠 김태수에 의해 온라인으로 퍼져나갑니다. 가족인 오빠에게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그녀이지만 자연스럽게 서서히 좋은 세계를 향한 활동을 지속해나갔습니다. 비건을 시작하고 오빠한테 고기 먹지 않은 날을 권하고, 위안부 문제에서 페미니즘으로 의식을 확대하고,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별이 없고 불의가 없는 좋은 세계를 향한 그녀의 결의가 혐오 범죄의 대상에 부합하는 최악의 요소로 치부되는 흐름은 끔찍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습니다.
"한국말을 사용하기에 겁을 주려 했을 뿐이었다."라고 진술한 범인들은 그녀를 그녀의 집에서 잔인하게 겁탈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김마야에 대한 반응들은 2차 가해를 넘어 그녀를 산산조각 내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의 반응은 아닐 테고, 이웃집에 사는 일곱 살 유 군의 편지 에피소드는 깜깜하고 막막한 공간에 살살 불어오는 한줌 생명의 바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교류가 절실합니다.
일본의 혐한을 배경으로 펼쳐진 소설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혐오 뉴스를 쉽게 접하는 요즘, 우리 현대인들 모두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디스토피아 세상이 아닌 상식이 통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누구에게나 보장될 수 있도록 힘쓰는 세계를 그려봅니다.
소설의 마지막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아 시사하는 점이 크고, 혐오가 불러올 수 있는 세계를 피하지 않고 바로 보는 기회를 제공한 이 소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