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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자의 질문 -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치다 마사토시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평점 :
강제징용자의 질문/우치다 마사토시 지음/한승동 옮김/한겨레출판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광복일이자 일본의 패전일입니다.
그로부터 76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일의 역사인식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평행선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줄여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일 양국에게 남은 과제,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으로 얼룩진 과거청산 문제를
당사자인 강제징용자분들이 생존해 계실 때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2019년 일본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행하고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나라 또한 일본에 결코 우호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일본 변호사가 한국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날카롭게 제시한 <강제징용자의 질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일본인인 우치다 마사토시가 일본 정부가 소송 기각 근거로 주장하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친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변호인으로서 '중국인 강제 동원 피해와 배상 문제'를 처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조약의 오류를 찾고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는 책 소개에 강제징용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얕고 감정적인 반응이 우선이던 저는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품고 우치다 변호사가 들려주는 강제징용 문제에 귀 기울였습니다.
우선 한국과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한 인식이 달랐습니다. 한국이 요구하는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를 일본은 식민 지배는 '합법'이라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인식 공유가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의 개입으로 맺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청구권 협정은 그 한계가 명확하고 여러 상황들이 변하여 수정·보완이 요구되는 조약입니다.
저자인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중국인 강제 동원 피해와 배상 문제'를 처리한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 줍니다. 중국인 강제 동원 피해 역시 1972년 일중 공동성명으로 국가의 외교보호권은 포기되었으나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원칙 아래 당사자들 간의 화해를 재판부에서 권고하였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권고와 부언을 통해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나오카 화해(가시마 건설), 니시마쓰 건설 화해, 미쓰비시 머티리얼 화해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이 결과에 주목해서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이룰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할 듯합니다. 일본 정부가 독일처럼 과거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 등 전범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와 배상을 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교육을 실시하는, 확실한 해법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 강제징용의 경우 불법적인 노예노동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인 강제징용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만, 기간과 수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인 강제 연행·강제노동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약 1년간 발생한 피해자 수가 약 4만 명입니다. 한국인의 경우는 기간도 길고 피해자 수도 20여만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한일기본조약과 일중 공동성명 또한 일본의 역사인식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까지는 더 많은 산들을 넘어야 할 것 같네요.
전후보상 청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3가지 원칙이 필수적입니다.
① 가해 사실 및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② 사죄의 증거로 경제적인 수당을 준다.
③ 추도 사업을 하고, 동시에 미래의 교훈을 위해 역사교육을 실시한다.
중국인 강제징용 소송 관련하여
하나오카 화해(가시마 건설) - 히로시마 야스노 화해(니시마쓰 건설) - 미쓰바시 머티리얼 화해로 이어지는 흐름을 살펴보다보면 위 3가지 기본원칙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판소가 노력해서 이뤄낸 하나오카 화해,
최고재판소 판결의 부언에 기초하여 피해자와 가해자 양 당사자들이 자발적인 교섭을 통해
화해의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가해자인 니시마쓰 건설이 신청인이 돼 재판소로 가져간 야스노 화해,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인 교섭을 통해 화해의 내용을 정리하고,
회사 책임자가 베이징으로 가서 직접 수난자들에게 사죄하여 성사한 미쓰바시 머티리얼 화해. 』
점진적인 변화로 가해자 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달라져 서로 양보해서 싸움을 그만하는 1차원적인 화해에서 상호 의사가 누그러지며 격의 없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화해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오다테 시 주최로 매년 시행되는 추도식, 그리고 그 추도식에 참석한 중국에서 온 생존자·유족 또 퇴임한 재판관, 직접 찾아뵙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회사관계자. 이렇게 이어지는 교류로 하나둘 신뢰가 쌓여 양국 관계의 개선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아쉬운 점은 이런 화해의 장에 강제 연행·강제노동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개인의 청구로 보지 않고, 일본에 대한 도발로, 조약을 어기는 행위로 간주하여 기업의 자발적인 행동을 가로막고 사태를 더욱 곤란한 상태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이 정치적인 이유로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고 권력의 기반으로 사용하는 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강한 의지로 식민지배·강제징용 등 과거청산 및 경제 회복에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자 우치다 변호사가 제시한 당사자들 간 개인적인 교섭을 통한 화해와 독일형 기금(기억·책임·미래) 창설로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기금 마련 형식의 제안을 일본 정부에 한차례 했다가 거부당했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납득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조약·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가? 강제징용 관련 소송들이 패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책에서는 1) 법률의 벽 2) 조약의 벽으로 설명하고 있네요.
전쟁 전 일본의 헌법에는 국가배상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조항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더라도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무답책'으로 국가 및 공공단체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있는 것으로 몹시 난폭한 생각입니다. 국가무답책 때문에 국가가 일으키는 가장 큰 불법행위인 전쟁과 관련된 불법행위의 배상을 국가에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또 민법에는 '시효', '제척기간'이 있는데 기간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역사 문제 해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전쟁범죄의 시효가 전면 폐지돼 전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치 전쟁범죄 추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 자세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조약의 벽은 한일 청구권 협정처럼 정한 것 이외의 배상청구권은 협정에 근거하여 포기되었으므로 해결이 끝났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서술된 것처럼 조약과 법률이 어떠하든, 피해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것에 대한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피해자에 대한 뭔가의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이웃나라 일본에 우익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으로 전후 배상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일본 우익 못지않은 태도를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씁쓸해집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피해자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지금, 일본과의 진실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사적 책임, 도의적 책임, 법적 책임 구분 짓지 말고, 잘못을 바로 잡는 데 필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어느 위안부 할머니 말씀처럼 기회가 있는 지금, 일본이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실현가능한 해결책으로 출발하여 한일 모두 과거를 청산하고 서로에게 미래의 협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건강한 교류를 이웃나라가 되는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강제징용자의 질문 -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답이 보입니다.
⊙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되, 가해국가 국민이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여 역사에 유린당해온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과제를 환기시키는 책, 잘 읽었습니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