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2020년 전 세계 SF 상을 휩쓴 화제의 소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렬한 표지와 수상 경력으로 존재감을 빛나는 소설을 받은 순간,

'와, 예쁘다. 실타래가 엮인 건가? 잉크가 퍼져나가는 모습인가?'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글/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84년생 작가 둘이 초고에서 퇴고까지 6주도 안 되는 시간에 완성된 이 소설은

2020년 SF 관련상들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시간의 실'을 오르내리면서 실 가닥을 타래를 땋고 매듭을 묶는 등으로

수많은 세계의 운명을 놓고 싸우는 시간 전쟁을 벌이고 있는

두 세력의 핵심요원인 레드와 블루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흔히 전개되는 시간과 관계되는 서술 방식(과거-현재-미래 구분이 명확)이 아니라, 시간의 절대적 의미가 무색한 구조입니다.



레드와 블루가 서로에게 쓴 편지글 1


블루의 도발같은 편지를 시작으로

조롱 같이 서로 견제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편지들이 서로 오가는 사이,

친구로, 더 나아가 연인으로 레드와 블루의 관계가 변모하는 과정을

우리는 아름다운 편지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두 작가의 아름다운 단어와 영상이 펼쳐지는 듯한 섬세한 묘사는

레드 요원과 블루 요원이 벌이는 시간 전쟁 속으로

우리를 소환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수많은 아틀란티스들, 수많은 소크라테스들, 수많은 칭기즈칸들이 존재하는

세계관과 우주 내에서 벌어지는 가든과 에이전시의 시간 전쟁은

아주 멀고도 비현실적인 미래의 모습 같지만,

그들의 글에 의해 눈 앞에 실현됩니다.

레드와 블루가 서로에게 쓴 편지글 2



식물처럼 씨앗에서 태어나는 가든 요원들과

인공 자궁에서 만들어지는 피조물인 에이전시 요원들은

싸움의 방식 또한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명령에 충실하고 전쟁에 집중하며

- 전쟁이 끝나면 다시 가든의 품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는 가든의 다른 요원들과는 다르게,

- '우리'는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우리들'로 존재하는

에이전시의 다른 요원들과는 다르게

블루와 레드는 고독을 즐기고 허기를 느끼고

자연 자체가 아닌 자연을 즐기고 돌보는 주체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더 끌리고 서로에게 물들어가고

결국 자신을 서로에게 심습니다.

이 아름다운 연인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레드와 블루가 주고 받은 편지들 속에 숨겨진 수많은 유희와 은유들이

우리에게 문학적인 자극이 되고

생각의 전환이 되기도 합니다.


- 레드의 편지글 중 '먹는 것'에 대한 부분이 좋더군요.

먹는 행위가 끔찍하다고 하면서 자신은 먹는 일이 즐겁다고 합니다.

이런 모순적인 표현들 속에서 레드가 에이전시 동료들에게는 밝히지 못하는

자신의 진실된 모습들을 서서히 드러내게 되는, 마음을 여는 순간이니까요.

"네 편지는 나에게 들어가서 살 곳을 마련해 줬어." _134쪽

- 블루의 편지글 중 '편지'에 대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시간 여행으로서의 편지, 시간을 여행하는 편지를 써. 겉으로는 안 보이는 의미를 담아서." _79쪽

레드와 블루는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편지를 쓰고 주고받게 됩니다.

'과거의 상대'를 회상하며 '현재의 내'가 편지를 쓰지만

그 편지는 미래나 과거의 어느 순간에 상대방에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편지는 다양한 형태로 전달됩니다.

재, 물의 부글거리는 모양, 100년의 시간이 걸렸을 나이테,

용암이 흐르는 모양, 차잎, 기러기 깃털, 수리부엉이, 씨앗,

실잠자리 몸통 무늬, 벌, 먼지구름 등을 이용하여 편지를 전달합니다.

그 기상천외한 편지에 가능 여부를 떠나서 무한한 상상력의 쾌감을 느낍니다.

어느 순간 뫼비우스 띠처럼 관계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된 레드와 블루.

이제 그들은 대상을 바꿔 전쟁을 시작하려 합니다.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가든은 우리를 거느릴 자격이 없어. 그건 에이전시도 마찬가지야."

기계와 기술을 중시하는 에이전시 세력과

자연을 중시하는 가든 세력의 시간 전쟁이 주 무대이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레드와 블루의 순수하고도 고귀한 사랑이 주 이야기가 되는 책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한번만 읽어서는 안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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