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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어느 검사의 이야기입니다.
거악 척결과 사회 정의 구현에 몸 바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검사가 된 인물이 아닌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된 인물이 전해주는 검찰 생존기입니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정명원 저/한겨레출판사
필명을 '이끼'라고 정하고
스스로를 외곽주의자라 칭하고
소심한 자유주의자로 살아가는 정명원 검사님의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흡입력 강한 문체와 다소 생소한 소재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검사에 대한 편견이 집단을 단순화시켜서 적용되었고 (언론에서 접하는 일부 사건들 속의 검사) 엄숙하고 권위적이며 폐쇄적인 검찰 조직 안에서도 다채로운 면면들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남들은 검찰청에서의 중심은 공안부, 특수부이라고 하는데 형사부, 공판부에서 행복한 검사를 꿈꾸며,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진심인 편인 국민 참여 재판 검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나'라도 그런대로 괜찮을까요?"라고 대한민국에 물어보는 대한민국 법률 노동자, 왠지 믿음이 가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중심은 서울이라고 하는데 대구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게 좋은 외곽주의자입니다. "왜 서울로 옮기지 않냐?"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자들에게 서울이 아니더라도 똑같은 크기의 삶과 만족이 있는 대구에서 살고 싶다는 취향의 영역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네요. 그 취향, 완전히 존중합니다.
흔치않은 직업인 검사도 여자, 그중에서도 젊은 경우에는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놀랐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냐!"
이 문장을 책 속에서 왜 선명한 욕이 되는지 분석하는 부분은 같은 여성으로서 절실히 공감합니다. 성별을 떠나 똑같은 직업군의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우받는 것이 당연한데 젊음과 여성성이 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프네요.
사회는 여성인 나에게 젊어 보일 것을 강요하고, 나의 직업은 나의 젊음을 불편해한다.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여성에게 골고루 가해지는 그 모욕에 대해 고민하고 여성 검사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가려는 선배 검사인 저자에게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 욕을 들은 그 후배는 자신을 '딥 블루 레이디'라 불러달라며 유쾌하게 웃었다는 일화에 그녀들의 종횡무진 유쾌한 앞날을 그려봅니다.
본인이 원해서 국민 참여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피고인,
책 제목이 된 초임검사 시절 반복 민원 사건들을 맡아 이야기를 한없이 들었던, 친애하는 민원인 고 여사와 정 영감님,
소년 전담 검사 시절에 만난,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천진하고도 진지한 적극성을 띤 소년의 얼굴.
저자가 겪고 생각하고 풀어낸 그 이야기들은 한없이 진지하지도, 한없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우려를 짚어줘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검사라는 직업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의 자세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낭만이라도 있어야, 한 사람의 생에서 범죄만을 추출하여 계량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도 좀 사람처럼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낭만이 밥 먹여주지 않지만, 낭만이 숨은 쉬게 해주니까.
인간이면서 어쩌다 검사가 된 저자는 검사 7년 차, 1차 변이를 마친 후 하나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지위를 나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에 써야겠다.'
소심한 자유주의자로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2가지 정합니다.
1.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다.
2. (웃긴다고 해서 그때마다 웃을 수는 없지만) 웃기지 않은 말에는 웃지 않는다.
검사도 직장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기억에 남네요. 과연 저자는 자유로운 직장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과 하면 끝장나는 일 가운데 존재하는 영역 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저자는 이제 16년 차, 2차 변이가 거의 완성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완성된 이후 기꺼이 멋진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존재이길 바라는 직장인의 자세가 부럽네요.
보통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둘 다 완벽하게 수행할 능력자는 드뭅니다.
큰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큰마음을 먹고 휴가를 내 행사에 같이 가게 됩니다. 그때 아이의 말에 울컥하게 되죠.
"이제 내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나도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저자는 보육자인 동시에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또 하나의 인생으로 롤 모델이 되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어른이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대하고 꾸려나가는지, 사회와 어떻게 반응하고 소통하는지, 인생에서 닥치는 문제들을 어떤 원칙을 가지고 풀어나가는지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배우고 익히게 되니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진 어른으로 멋진 생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엄마는 언제나… 정의의 편이지!"
중학생 딸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친구와 나누고 싶지 않니?" 라고 물어보는 엄마.
"내 친구들은 이게 아름다운지 몰라.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 라고 대답하는 딸.
그러자, 엄마는 "그런 친구들이랑은 놀지 마." 단호한 눈빛으로 말합니다.
저자는 이런 엄마에게 삶의 태도를 배우고 익혀
"인생의 많은 문제들로부터 담대하면서도 그 안에 숨은 작은 기쁨들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
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합니다.
진정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검사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세상으로부터 늘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자.
내일이면 당도할 새로운 기록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기록을 넘기는, 그 무게를 오롯이 견뎌야 할 자신만의 캐비닛을 가진 자.
그러면서도 기운 없고 쉽게 지치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 한 끼, 가득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작은 '위로받는 사람들의 국숫집' 주인이 되고 싶은 오래된 꿈이 있는 검사 인간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저는 검사님의 국수 솜씨도 믿고 법률 서비스도 믿습니다. 그러니 그 꿈을 꼭 이루세요.
<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