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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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 개를 끌어안고 잤다고 합니다. 조금 추운 날에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의 밤'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추운 밤에 대한 기록입니다. 날씨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날카롭고 매서운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엾은 영혼들이 겪는, 벗어날 길 없는 추운 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개 다섯 마리의 밤/채영신 저/은행나무


박혜정, 박세민 모자

이들은 편모 가정이고 세민이는 알비노 환자입니다. 혜정은 세민이를 데리고 이민을 가고 싶으나 세민은 완강히 거부합니다. 세민은 자신의 상황에서 물러섬 없이 고개를 들고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감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를 향한 아이들의 폭언과 협박, 위협은 순수한 어린이 세계를 벗어나 일그러지고 비열한 어른들의 세계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방패막이 없는 세민이로서는 술과 자해 그리고 똑같이 그릇된 방식의 대응으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네요.


"엄마도 알지?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곳, 거기가 지옥이란 거.

……

어둡고 칙칙한 구석에 박혀 화사하고 명랑한 세상을 넋 놓고 바라보며 살도록,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거였다. 그런데 이제 눈까지 멀게 되는 거였다.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 지옥이라면, 지옥을 바라보고 있는 곳은, 그 지옥마저 부러워서 침을 삼키며 바라봐야 하는 곳은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64쪽 열두 살 세민이의 고통)


요한, 에스더, 대모, 대부

종교인인 이들은 지금 세상은 멸망을 앞두고 있고,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성별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대모, 대부라 불리는 이 부부는 과거 끔찍한 일을 겪고 종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강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비극으로 치닫는 결과를 맺게 됩니다.

이 소설은 '권사범 살인사건 현장검증'으로 시작합니다. 세민은 뉴스에서 이 소식을 보고 자신은 권사범이 왜 아이들을 죽였는지 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인 혜정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세민이가 입에 올리는 것조차 몸서리치게 싫습니다. 그녀는 세민이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녀를, 세민이를 자신들의 편에 두고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넘어선 혐오와 비난, 증오의 대상으로 그들을 끝도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아가면서 자신의 비열한 행동을 정당하다!!! 부르짖습니다.


약한 자가 악한 자가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던 저자의 의도처럼 너무나도 평범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네 엄마인 안빈엄마가 혜정세민 모자를 잔인하게 찢어놓는 그 끔찍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지옥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아픈 언니를 위한 존재로 살아온 혜정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연 존재가 안빈엄마였기에 혜정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을 겁니다. 저로서는 상상조차 감내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기에 딸깍 스위치를 꺼버리는 혜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민이가 더 아픈 존재입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세민이에게 전염시키지 않고 싶었을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세민이는 너무나 영특했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라도 제대로 위로받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무리한 상상을 해봅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은 이백 년을 살지만 나비의 평균 수명은 고작 한 달이다. 그렇지만 평생을 산다는 점에 있어선 다르지 않다. 태어나서 숨이 다할 때까지 똑같이 생로병사를 겪어내는 것이다.

……

그렇다면 나의 하루는 보통 아이들의 사흘과 같은 거겠지." (62쪽 수명에 대한 세민의 생각)


권사범 살인 현장검증에서 따온 호박 한 덩이.

버려진 땅에서 버려진 물과 버려진 햇볕이 버려진 시간을 다독이며 키워낸 호박 한 덩이.

혜정이 그 호박에 손이 닿던 순간의, 눈물이 솟을 것처럼 가슴 뭉클했던 감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 달라졌을까요?


너무나 큰 생채기.

그 상처를 내고 나면 멈출 수 없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선을 넘은 거겠죠. 고통을 주는 이, 고통받는 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 무심한 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구원받지 못하고 끝납니다. 고통을 주는 이, 고통받는 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 무심한 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구원받지 못하고 끝납니다.

고통을 주는 이는 그 행동이 독이 되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에게 비웃음과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가정이 파괴되고 자신마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됩니다.

고통받는 이는 악한 자가 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는 한없이 흔들리며 의지할 데 없는 도망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무심한 이는 우리의 모습일 테지요.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만 그를 끊어내지 못하는 방관자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동조자의 모습으로 고통의 늪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이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라 여기는 세상이 아닌, 그 아픔을 품어줄 수 있는 치유의 세상은 아니더라도 아픈 이의 소리에 귀기울여 줄 수 있는 세상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구분하지 않고 제각기 다른 삶을 인정하며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개 다섯 마리의 밤> 그 혹한의 추위에 살아남으려면 우리 다 같이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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