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는데, 막상 '어른'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 모습에서, 다른 다 큰 어른의 모습에서.
어른이니까,
아니면 어쨌든 어른이니까
궁색한 핑계 말고
어른 다운 어른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런 어른>
저절로는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에게 부여되는 자리와 역할이 있다.
아기 - 유치원생 - 초등학생 - 중학생 - 고등학생 - 대학생 or 사회인 그리고 어른
어느 자리든 힘들다 하겠지만, 어른이라는 단계에 이르면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가정, 직장, 사회 전반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하며 현명하고 지혜롭고 배려심 넘치는 자세로 다른 세대들을 받쳐주고 이끌어주리라는 기대를 받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렸을 때 내가 생각했던 '어른'은 이러했다. 하지만 띠로리로~~ 내가 막상 어른이라 불리우는 어른이 되고보니 그건 환상이고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어른으로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어른이 될 준비가 필요했는데 무심했던지 부족했던지 <그런 어른>이 되지 못했다.
이 책의 묘미는 작가님과의 동질감을 느끼는 데 있다.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이가 있구나.'라는 감동?이라든지, '생각을 글로 써서 전달하는 작가도 못하네.'라는 위안?이라든지.
'이제 우리 다같이 노력해보아요.' 이런 동지의식으로 <그런 어른>되기에 동참하려 한다. 작가님 말씀대로 어쨌든 어른이 되었으니, 좀더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어보자!
작가님처럼 먼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는 어른
- 헐렁한 게 아니라 여유로운 어른
- 내 몫을 다하는 어른
작가님이 원하는 <그런 어른>에 공감하고 나는 유연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어른> 김자옥 저/북스고>
숨바꼭질 같은 대화는 서로 지치게 만든다. 지킬 건 지키면서도 충분히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다. 정말 진심이 뭔지 모를 정도로 꽁꽁 숨겨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보여주기 싫다면 인정, 하지만 그렇다면 진심을 몰라준다. 말을 해야 아나?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된다.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으면 진심을 드러내면 된다. 말하지 않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p.21
공감된다. 그리고 너무 자기 입장만 얘기하는 사람도 불편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이제 그만, 반복되는 패턴에 지치게 된다. 너무 많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몫도 남겨뒀으면 한다. 그래야 개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사랑이란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저 보고 싶고 생각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이 뭔지 정도는 알고, 그걸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까지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감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진짜 사랑이다. p.68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사랑받을려고 한다. 그만큼 사랑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도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주자. 어느 순간 보면 다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행동, 습관이 서로를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런 사람이고 편한 것 뿐이리라.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대화로 풀어보자. 우리는 어른이니까. :)
살면서 내가 정한 예상 답안만 줄여나가도 삶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럼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며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p.82
답정녀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뜨끔한 이야기였다. 나는 질문까지 답을 예상하고 물어보는 중증환자이다. "너는 이런 거 안 좋아하지?" 내가 뭔데 남 취향까지 정해주는 거지? 나조차 의아한데 상대방은 얼마나 어이없을 지. 고쳐야 하는 데 생각만 가득하다. 예상 답안을 줄이고 좀더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아이를 낳았다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연히 줘야 하는 사랑인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내가 낳아준 게 아니고 아이가 태어나준 거니까. p.105
'낳음 당했다' 표현에 적잖이 당황했다. 태어났다. 낳아줬다. 세상에 한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표현이지만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태어났다.' 로 정했다.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 곁에 있을 때 맘껏 사랑해줘야 겠다. 사랑한다, 울 튼튼이, 튼실이 .
(p.142)나이를 먹어서 책을 안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확실히 표시가 났다. 생각이 좁고, 고집스럽고, 마음이 너그럽지 못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자.
(p.152)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인정하는 순간 한계를 극복하고 넘기보다는 한계라는 거친 파도를 유연하게 타게 되었다.
(p.159)괜찮은 실패의 맛을 알아가다. 조금씩 실패에 의연해지려고 하지만 아직도 실패가 두렵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낙담만 하고 있지않고 실패의 맛을 꼭꼭 씹어가며 느껴본다는 것이다. 실패의 매운 맛이 성공의 단맛을 부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꽤 괜찮은 실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