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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평점 :
우리는 벌써 2년째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건강에 대한 의식과 관심이
어느 때보다 강한 지금,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의
<치료받을 권리>는
저자의 병상일기를 바탕으로
작금의 상황뿐만 아니라
미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점,
미국 정치의 무능과 독선,
미국 사회시스템의 부조리로 무대를 확장시켜
강하게 비판하고 분노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전반적인 구조적 문제점을 직시하고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논하고 있어
그 사유와 성찰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저자는 2019년 12월부터 2020년 3월에 걸쳐
다섯 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12월 3일 복부 통증으로 찾은 독일 병원에서
맹장염이라는 상태를 간과했고,
맹장이 터져 결국 12월 15일 미국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간 병변을 발견했음에도
치료도 하지 않고 재검사도 하지 않았고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항생제도 제대로 처방받지 못하고
2차 감염에 대한 주의도 듣지 못한 채
생활하다 손발이 욱신거리고 마비 증세가 와서
12월 23일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날 퇴원을 하게 됩니다.
12월 29일 응급실에서 방치되다가
결국 패혈증 상태까지 가서
간 수술을 받았습니다.
정말 한편의 코미디 같은 일인데,
현실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네요.
저자가 그 상황에서도 사유하고 성찰하며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다니,
천상 학자인 듯합니다.
우선 지구 최강국 '아메리칸드림'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차 충격이 가시고,
미국의 상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수긍이 갑니다.
대학생 시절 보험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언급하셨던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 큐> 영화가 있습니다.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팬데믹 상황이고, 아이들이 성장하여
'같이 봐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지난달에 온 가족이 다시 보았습니다.
2002년도 작품인데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평범한 가정의 몰락과 처절한 가장의 분투로 그려낸 수작입니다.
더욱이 그 가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해 주는 시민들의 힘으로
아들이 수술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은 민영의료 시스템입니다.
당연히 이윤을 목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제도가 없어서
민간보험으로 개인이 스스로
건강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 안에서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이들, 준비된 이들만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려면 어느 누구나
나이, 인종, 지위, 국적 그 온갖 구분을 지우고
적정한 의료를 공평히 똑같이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소외층이 의료 분야에서도
당연하게 외면당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이 계속되면서
소외층 만이 아니라,
장인이 의사이며,
친구도 의사이고(하물며 동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역사학자인 엘리트층인
저자 또한 어이없는 의료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옴짝달싹 못 한 채 분노에 찬 나를 느꼈다. (p.13)
내 분노는 어떤 것에도 향해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없는 세계에 분노했다.(p.14)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세대가 느낀 간절한 권리는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책에서 좋은 예로 소개된 우리나라는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체적으로 잘 대응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파른 확진자 상승세로
오늘 4단계 거리 두기가 시행되었습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확진자 수가 안정화되면서
경제 보완책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더 안타까울 뿐입니다.
2020년 초, 전 세계를 경악게 한
코로나19 등장한 때로
회귀한 것 같은 무력감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일어나야 하기에
<치료받을 권리>의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귀 기울여야 할,
몇 가지 교훈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1. 의료보장은 인권이다.
- 의료보장을 정치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진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 의료 보장이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특별한 혜택이 되면, 혜택받는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혜택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개인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모두 함께 집단적 고통을 만들어내게 된다. (p.53)
- 모든 인간은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선의로 가는 노력이다. (p.57)
- 마약성 약물 남용으로 인한 의료시스템이 위기에 처해 있다.(p.75)
토마스 제퍼슨은 건강이 도덕성 다음으로, 좋은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미국 건국시조들이 중히 여겼던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개인이 혜택을 얻는, 연대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2. 소생은 아이들과 더불어 시작된다.
- 오스트리아에서 첫아이를 출산한 경험과 미국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미국의 상업적 민영의료 시스템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 오스트리아에서는 목적이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복지에 있고, 미국에서는 이윤에 있었다.
- 육아에 대한 정책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다른 미국인에 비해 육아휴직 등 나은 상황이었기에 인식하지 못했던 미국의 육아휴직 표준은 처참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상대적인 만족감 때문에, 전체적인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진창이며 개선의 여지가 많은지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p.95)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 부모 혹은 한 가족이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는 크다. 공공병원에서 공립 유치원, 실질적 육아휴직, 유급 병가, 공공 돌봄 서비스 등 사람들을 한데 뭉치게 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게 해줄 연대의 인프라이다.
3.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질병에 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면 억압을 불러오게 된다. 정치가들에게 당신의 몸을 감시하고, 집단 사망에 이르게 하는 감정들로 당신을 조종해달라고 요청하는 꼴이다. (p.125)
- 진실은 노력으로 얻어진다.
-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주의는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고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진실을 감추는 힘썼다.
- 사실을 만들어내는 방식인 의료 검사와 보도는 트럼프 정부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건강이 앎에 달려 있기에 진실의 죽음은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한다. 진실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죽음 또한 초래한다. (p.149)
4. 의사들이 권한을 가져야 한다.
- 상업적 민영의료 시스템 내에서 의사는 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 근본적인 셈법이 돈벌이인 시스템(p.168)
- 코로나 팬데믹에서 민낯이 드러났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자유는 포박당했다.
- 의사들은 가능한 한 많은 환자를 진찰하라는 압박 속에서, 스스로를 기계의 부품이라고 느낀다.(p.177)
의사들은 과학뿐만 아니라 치료에 내재된 인본주의 또한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마땅히 누려야 할 권한을 의사들에게 부여한다면 우리 모두는 더 건강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p.183)
전 세계에 걸쳐 의료보장이 인권으로 확립되는 데 기여한
미국에서 의료보장이 인권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시장경제 관점으로 보더라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저자는 꼬집습니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이 존중될 때 더 잘 작동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자유라면,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시장의 독단에 희생시킬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자유를 위해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p.192)
진실이 잔혹하더라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진실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를 위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기 위해
분노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는 하루입니다.
<엘리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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