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엘리트 사회 구성원이었던 저자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속도에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세상의 욕구와 욕망에 타협하지 않은 거라 생각이 드네요. 글 곳곳에서 저자의 욕망이, 굳은 심지가 드러나니까요.
아무리 사회가 칭송하는 가치라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는다. (p.86)
나만의 월든을 찾아 떠난 저자는 소로의 [월든]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가르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챕터를 읽어보면 소로는 연장자들로부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듣거나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
여기서 염려에 두어야 할 것은 연장자와 젊은이를 가르는 나이의 기준이 없다로, 우리 누구나 늙은이이기도 하고 젊은이이기도 합니다. 소로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얻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잃는 것이라 합니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의 선택을 쌓는 것이고, 오로지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기에 버려진 무한히 많은 가능성이 생기게 되므로 잃는 것이라 합니다.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으니, 우리는 젊음에서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젊음 자체가 가진 무수한 가능성 앞에 나 자신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뜻이다. (p.107)
정규 수입원이 없는 가족은 금, 토 일주일에 2번 빵을 판매합니다. 발효빵과 스콘이 될 때도 있고, 바나나 빵일 때도 있는 달달한 빵. 이렇게 2가지 빵만을 판매합니다. 발효빵을 팔고 싶은데 구매자들은 스콘을 사고 싶어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만들고 팔고 싶은 발효빵을 굽습니다. 돈 쓰는 사람의 마음에 맞출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집하는 대가로 돈을 적게 벌거나, 돈을 쓰는 사람에게 맞춰 많이 벌고자 하거나,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결정하는 순간 이미 능동의 세계로 넘어간다. (p.127)
<참을 수 있는 가난> 챕터 속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를 차용하여 가난이 참을 수 있는, 삶에 필요한 '고통'이라는 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가난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느끼는 돈에 대한 상대적 빈곤, 박탈감을 깨닫고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기준이 다르기에 세상은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주체적이고 독립된 개개인이 모여 연결되는 흥미로운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