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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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_ 헤르만 헤세 저

 

헤르만 헤세의 책을 받은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용을 떠나(책은 물론 내용이 가장 중요하죠. ^^)

책 표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찾아온 선물 같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는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를 엮은 책입니다.

나무를 통해 인생을 얘기하는

헤르만 헤세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나무들의 다양한 변화와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헤세의 감정, 생각, 고찰, 인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헤세는 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살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해 우리보다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나무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나무를 부러워하거나 갈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기를 갈망한다

하였습니다. 그것이 고향이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무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자세를 찾은 자,

바로 헤르만 헤세입니다.

 

 

헤세는 우세한 나무 종류가 없는

도시나 풍경은 완전한 이미지가 되지 못하고,

낯설고 무심하게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본질적인 것이 나무였던 셈이죠.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많은 추억이 있어도 낯설다 하니,

헤세가 나무를 통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형화된 조형물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배제하고라도,

너무나 많은 시간을

건물 안에서 보내고 있었네요.

 

 

그리고 책 속에 나온 나무들을

대부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자생하는

나무 종들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무에 대한 얕은 지식 때문이겠죠.

 

 

하지만, 식물이 좋아져서

요즘 원예에 취미를 들이고 있으니

조금은 달라질 거라 믿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화분 속 식물들의 변화에

행복해지는 순간순간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결혼하고 처음 신혼집에 방문하신

시부모님께서 선물로 사주신 화분을 시작으로,

집 안에 화분이 없었던 적은 없지만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제각기 다른 생육 환경에 무지해서

몇몇 식물들과는 작별을 해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과습을 싫어하는 아이,

습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

햇빛과 바람을 받아야 하는 아이,

햇빛을 피해야 하는 아이......

그 다양성을 이제서야 받아들이고

귀 기울이는 저랍니다.

 

헤르만 헤세가 나무가 전하는

작고 소박한 기쁨과 위로에

마음을 달래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자연 속 풍경을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안에 숨어 있는

삶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 삶의 목소리를 순순히 따르면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싶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는

대작가 헤르만 헤세의 통찰이

꽃피우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를 표현하는 필력, 문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입니다.

쉽게 읽을 수는 없지만,

천천히 읽으면 마음으로 와닿는

숨결 같은 바람입니다.

마음에 와닿은 글들을 추천합니다.

 

<동작과 정지의 일치>

자연의 흐름은 우리가 느끼기도 전에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꽁꽁 얼었던 눈이 어느 순간 녹아,

살얼음이 낀 개천에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연둣빛 싹이 돋아난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분명 자연은 그 안에서 천천히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무심한 우리는 스쳐 지나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은혜롭게도 변신의 순간을

목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 또한 변신을 목격하고

서술한 내용이 있습니다.

 

겨우내 그 강한 바람에도

마른 나뭇잎 한 장 떨어뜨리지 않고

서 있던 너도 밤나무가

숨결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한줄기 바람에

수많은 잎들을 떨어뜨립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헤세는

자신과 연관 지어 사유하게 되고,

그 일이 존재의 비밀이며,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운이며,

의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보리수꽃>

<온통 꽃이 피어>

                           p.82 삽화   &   p. 55 시


<시든 잎>

                     p.140 삽화   &   p.144 시



어느 날, 정원에 심은 자신의 복숭아나무 중

가장 큰 나무를 높새바람으로 잃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알던 친구가 속하던 곳이

빈자리가 되어 작은 세계에

하나의 균열이 생겼고

그 균열을 통해

공허, 어둠, 죽음,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나무들도 믿을 수 없다니,

나무들도 사라질 수 있고 죽어버릴 수 있다니!

새로 나무를 심으려고 구멍을 파고

햇빛과 바람을 쐬어주고 퇴비를 주고 기다렸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 온화한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나무를 심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새롭게 순환을 시작하는 것에,

생명의 바퀴를 새로 굴려 욕심 많은 죽음에게

바칠 새로운 먹이를 키워내는 일에

저항하게 됩니다.

 

'이 자리는 그냥 비워둬야겠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는

두고두고 읽으면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제 길을 가게 하는 것.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꼿꼿이 서서

자신의 힘과 청춘을 기뻐하기도 하고,

구부러졌다가도 도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존재.

안갯속에서는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볼 수 없어

모두 혼자인 나무. 사람.

쪼개져서 부러졌어도

여러 해 동안 매달려

한 여름만 더, 한 겨울만 더

버티는 삶.

 

 

주위에 있는 나무가 새롭게 다가오는

책 읽기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나무를,

주위를 살펴볼 시간이네요.

물론 나무를 살펴본다고

갑자기 마음이 닿고

진리가 깨우쳐지는 건 아니겠지만,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좀 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좀 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창비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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