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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병원 밖의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양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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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의료시스템, 왕진!
그래서 왕진 의사 양창모 선생님의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소중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지 1년 5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우리는 일상을 포기하면서 조심조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의료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고, 의료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고찰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난 컨트롤타워(중대본)가 제대로 작동하여 의료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코로나19 비상사태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힘쓰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중보건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의료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제도 보완 및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공공의료는 전염병뿐만 아니라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네 삶 속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다.'라는 기본적인 명제는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병원의 부족, 의사의 부족, 의사 분포의 불균형 등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진정한 의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의료생협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동네의원으로서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기도 했던 양창모 의사 선생님. 그는 10년 가까이 다니던 병원을 사직하고 수자원공사에서 진행하는 왕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리고 진료실 밖의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수많은 '없어서' 때문에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환자의 질병만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 질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생활습관, 환경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 환자가 이웃이 되는 순간이다. 환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삶의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단순히 질병을 가진 '환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던져버린 환자와 의사와의 만남과 접촉, 이해 등 과정의 부재가 현재 한국 의료의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시발점일 것이다.
수자원공사에서 왕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수몰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다소 의아하다. 보건소나 공공의료기관이 주도해서 진행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곳에서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이 책임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양창모 의사선생님. 기다리는 동안 진행되는 고통의 시간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기꺼이 왕진 의사가 되어 오늘도 집 밖으로 나오시기 힘드신 환자분들을 방문하는 것이다.
사랑, 휴머니즘, 정 등이 당연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한다. 이미 우리는 물질적 풍요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편리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빠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당연하던 가치들이 훼손되고 폄하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 당시에는 '함께 가난했던 시대'이었다. 지금은 '나만 불행한 시대'로 넘어왔단다. 일부는 동의한다. 뉴스에서 '나는 하층민이다.'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응답자 중 45%가 넘었다는 소식을 접한 기억이 있다. 이렇듯 나만 불행하고 가난하다고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니 서로 나누고 소통하고 이웃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다. 이웃, 마을, 공동체. 소속감을 느끼는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점들이 가슴 아프다.
예전과는 다르게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가난도 고착화되었다. 계급 간 이동이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게 온 불행이 바뀔 수 있으며 거기에 갇히지 않는 삶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 개인의 불행은 영구적으로 고착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가난했을 때 가능했던 '우리'가 나만 불행한 지금 '우리'가 불가능하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고 하는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저자는 현 의료시스템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비판하면서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의료정책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3분 의료시스템, 의사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하지 마비인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라도 그를 만나러 가야 하는 의료시스템. 이 시스템으로 병원에 닿지 못하는 그 수많은 고통, 아픔을 치료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저자는 두 가지를 제인하고 있다.
1. 의사들의 왕진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 왕진 수가를 현실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왕진의 주체가 민간 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방문진료를 전담할 센터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2. 노인들이 정치세력화되어야 한다.
- 노인들의 일상적인 요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어르신 정당이 절실하다.
현재 쟁점화되고 있는 정책인 '지역의사제' 또한 '공공의사제'로 그 이름을 변경하고 공공의료 시스템 정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지역에 머물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공공의료에 머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간병하지 않을 자유를 주지 못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사회다.
우리에겐 가족을 간병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 권리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내가 그를 간병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그를 간병해줘야 한다.
만약 내가 간병을 선택한다면
사회가 치러야 할 공동체의 비용을 아무런 조건이나 장벽 없이 나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할 수 있다.
간병받는 사람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인이나 가족의 '간병하지 않을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간병을 거부할 자유는 간병할 자유, 간병받을 자유와 같은 말이다.
우리를 마중하는 세계 - 간병을 거부할 자유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 편견을 희석할 수 있었다. 흔히 돈을 밝히는 사람, 밥그릇 싸움을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몰아붙이는 비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입장 또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 해결을 위해서는 의사만을 몰아붙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의사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반가웠다. 2020년 의사 파업의 일환으로 의사고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정부가 재응시를 허락한 것 때문에 논란이 많다. 의대생들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의료가 공공재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와 대형병원들이 보는 혜택은 모두 그 공공성이라는 책임 위에 허락된 것으로 권리를 행사하면서 책임에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모든 병원과 의사들은 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료 시스템 구축이 이 순간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운'이 좋으면 '노인'이 된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질병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의 문제, '부모님'의 문제, '우리 가족'의 문제 즉 '우리'의 문제가 된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코끼리 '사회'를 우리의 관심과 노력, 요구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복되는 약을 여러 병원에서 처방받거나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 약을 처방받은 후 그로 인한 부작용을 또 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얼마나 끔찍한 현실인가. 처방전을 잘 챙겨 처방받기 전 의사한테 확인하고 질문하는 등 나 스스로도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의사들 또한 시간이 없다고만 하지 말고 최소한 처방하기 전 진료 데이터 확인으로 병용 금지 약물, 동일 기능 약물 처방을 막을 수 있도록 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료의 길, 그 씨앗이 땅 아래에 있더라도 싹을 틔우고 자라나듯 희망이 이 세상에서 움틀 것을 믿는다.
아픔을 치료하고 그 고통을 나누는 일이 의료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어르신 한 분을 건강하게 지키는 데도 온 마을은 필요하다. 새기면서 살아가야 겠다. 감사합니다. ♥
<한겨레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저자: 양창모
강원도의 왕진 의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웃의 평범함 일상을 지키며 가까이 오래 있고 싶어서 가정의학과를 전공했다.
국가보다 한 사람의 이웃이 훨씬 중요하다 믿고
시민이 병원의 주인인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 지역에서 이런저런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다.
등 떠밀려 앞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으나 모임에선 주로 맨 뒷자리에 앉는다
춘천에서 10년간 일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시골 어르신들 댁을 찾아가는 '호호방문진료센터'를 시작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가다 보니
한국에서 남의 집 문턱을 가장 많이 넘는 의사 중 하나가 되었다.
동네에서 욕먹지 않는 의사로 살아가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