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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2019년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극장에서 보고 울었다. 화면 속의 김지영이 내 자신, 내 친구, 내 동생이라 생각되었다. 설마 내 딸이 저럴 수도 있을까? 막연하면서도 답답한 현실에 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다들 말한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냐고. 하지만 저절로 변하는 게 아니라, 시대에 맞선 누군가의 목소리, 외침, 희생으로 느리게 느리게 방향을 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난설헌> 책을 다산북스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표지에 그려진 여인의 눈을 마주본 순간 가슴이 아렸다.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녀의 15세 결혼을 앞둔 시점과 27세 죽음을 맞이하는 13년의 인생이 한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많은 분량을 결혼식 전 함을 받는 과정 등에서 벌어진 상스럽고 불길한 징조들을 풀어내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녀의 끝을 이미 알고 읽기 시작하는 터라 한문장 한문장, 한사건 한사건마다 깊은 한숨과 설움이 새겨진다.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자라나 책을 읽고 시를 짓고 문장을 나누는 소통을 나누었건만...... 시집을 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그리고 있는 앞부분에는 이 결혼에 대한 불길한 징조와 흔들리는 마음, 그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초희, 그미를 안타까워하며 그 시절 여인의 도리를 일깨워주는 어미 김씨가 있었다.
실타래같이 뒤엉킨 고까움도 풀도록 애를 써야 하느니라.
원망부터 하기 시작하면 세상 사는 일이 원망과 탄식으로 가득 찰 뿐인 게야. 시집가는 딸 초희에게 건네는 어머니 김씨의 당부
그렇게 어머니가 귓가에 불어넣어준 당부를 새기며 불안하고도 어려운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 싫어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초희, 난설헌을 향한 시어머니 송씨의 만행을 설명할 말이 그 밖에 없는 듯 하다. 어찌 그리 모질게도 다룰 수 있는 지 같은 여자로서 그 삶의 무게를 알텐데, 보듬아주고 가여워해주고 할만도 한데 그 끝도 없는 시기와 질투로 며느리를 벽으로 둘러싸고 짓누른다. 억장이 무너지고 팔다리가 끊기는 상황들이 계속 되어서 가슴만 메어졌다. 우는 그미를 따라 나도 모르게 눈물 짓고 있다. 먹먹하다.
불과 8세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한시를 지어 그 천재성을 드러냈던 그녀는 세 가지 한이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단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늘이라는 위치를 확보해놓은 지상의 행운아들
<난설헌> 이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선택할 수 없는 여러가지 조건들 성별, 출생, 지위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된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시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초희. 서자라는 이유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손곡 이달, 최순치. 종이라는 이유로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함실댁, 단오 등 신분, 명분에 둘러싸여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었던 가련한 인생들이 가득하다. 능력이 있어도 가문이나 출생의 이유로 뜻을 펼치지 못해서 괴롭고 가문은 좋으나 본인의 능력이 없어 허송세월만 보내니 이또한 괴롭다.
그미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벼슬이 없어도, 먹을 것이 궁해도 마음과 마음이 겹쳐지고
영혼과 영혼이 교감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주는 남자이길 바랐다.
같이 앉아 시를 나누고, 하늘과 별과 세상 끝까지 흘러가는 물에 대해 이야기 나누리라. 그런 남편과 더불어 세상의 끝까지 동행하리라 생각했다. 사람의 냄새가 나는 일을 더불어 나눌 수 있으리라.
사랑하는 아버지, 오빠, 사랑하는 딸 소헌, 아들 제헌까지 떠나보내고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초희를 떠올리면 그 출중한 실력을 떠나서라도 그 고단한 인생에 토닥토닥 안녕을 빌고 싶어진다.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