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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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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에디션은 양장으로 만들어진 하얀색 커버를 보여주는데, 지금의 겨울의 느낌과 너무 잘 어울린다. 자유로운 에세이의 성격과 어울리는 폰트는 글 하나하나를 읽기에 더 없이 좋아보인다. 왜 폰트까지도 유쾌하면서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지 모르겠다.
박완서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쓴 짧은 글일 줄만 알았던 프롤로그 글은 사실 박완서 작가의 딸인 "호원숙" 씨가 쓴 글이었다. 글이 간단하면서도 간결해, 박완서 작가가 쓴 글인 줄 알았다. 모녀가 모두 글을 잘 쓰는 구나. 생각이 든다. 박완서 작가는 2011년 타계했지만, 그의 글은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의 이름도 모르는 이가 없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박완서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바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그녀의 에세이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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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에게 딸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박완서 작가의 딸도 기자로써 글쟁이로서 글 솜씨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같이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다. 그래서 인지 작가 호원숙씨의 최근 작품인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엄마 박완서의 부엌)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 생이며, 그의 딸은 1950년대 생이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공감가는 이야기들로 추억을 머금게 하는데, 특히 이 이야기가 그렇다. 단편의 이야기 중에서 [버스 바닥에 흩어진 동전] 이 그렇다. 비 오는 어느 날, 작가는 버스 안에 있다. 내리는 정거장 이전에 미리 차장 아가씨(과거에는 버스 뒷문 혹은 앞문에서 요금을 대신 받고, 정거장에서 내리는 사람을 확인해주는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에게 당시로는 큰 돈이었던 500원 권의 거스름돈을 바꾸려 했었는데, 너무 곤이 자고 있던 아가씨가 깰까 싶어 내리는 정거장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깬 차장 아가씨에게 500원을 내민다. 차장 아가씨와 작가가 서로의 돈을 주고 받으려 할 때, 그 사이를 뚫고 두어 명의 승객이 버스를 내린다. 그 바람에 동전은 질퍽한 버스 바닥에 떨어지는데, 차장 아가씨는 오히려 호통을 친다. 거스름돈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해 차를 출발시킬 수 없게 한다며 결국 잽싸게 작가를 밀어 던져 버린다. ....
이 이야기는 책 속 <사십 대의 비 오는 날>이라는 부제 속에 있는 짧은 이야기이다. 비 오는 날에 일어난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평범하며 무료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왠걸 너무 리얼하고 재밌다. (물론 겪은 실화다 보니 리얼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야기들은 지금도 어느 버스 안, 혹은 지하철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겪었을 이야기라 더 생생하게 재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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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집 없는 아이]의 이야기에서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줄"이라는 표현들이 있다. 지금은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서지도 않거니와, 공중전화가 많이 사라졌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앞 차례를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손자와의 통화를 기다리게 한다. 손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L백화점에 온 작가는 손자에게 뭘 원하는 지 묻는다. 하지만 손자는 국산보다 일제가 더 튼튼하다는 말로 씁쓸함을 준다. 지금은 국산 제품과 일본 제품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과거에는 일제가 훨씬 좋았다. 소소한 작가의 일상이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도 과거에 생각했던 부분들이 책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는 그리 길지 않은 얘기들을 생생하고, 간결하게 말 할 줄 아는 필력을 지녔다. 비 오는 날의 풍경이 너무 강렬하게 표현되어 실제 냄새까지도 맡아지는 느낌이 드는 건, 한 문장 안에 어떤 단어와 감정들을 써내려 가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 속 어떤 이야기든지 나의 이야기 혹은 나의 어머니, 할머니의 경험처럼 들린다. (박완서 작가가 써내려간 감정들을 나도 간접적으로 느낀 부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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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작가가 소녀 적에 집 앞을 지나 울고 싶을 만큼 센티한 감정을 느꼈을 때를, 그 감정을 표현한 글이다. 센티한 감정.. 나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다. 사람에게서 경험한 그 장소가 감정을 더해 추억이 될 때, 그 장소는 센티한 곳이 된다. 그 장소가 그랬다.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감정이 북 받쳐 오르는,,, 나에겐 버스를 타고 항상 그 장소를 지날 때. 이어폰을 꽂아야 할 정도로 감정이 강해진다. 지나간 시간이 너무 그리워서 지금의 현실이 너무 싫어서, 그저 너무 답답하고 그러다 보면 심장이 그냥 요동치는 것 같다.
박완서 작가에게 잔잔한 서러움의 감정은 여학교 시절을 보냈던 옛 집이었다.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것에서 나에게는 20대가 막 시작된 어느 여름날을 떠올리게 했는데, 책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큰 것 같다. 작가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조용히 흐느끼고 싶은 잔잔한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치올랐다."고 표현했다.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는 어떤 시점이 있다면,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가 정말 공감 갈 것이다. 살아 있다면 90세를 넘겼을 작가와 현재를 사는 내가 글로써 어떤 한 공간에서의 감정을 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에세이의 진정한 힘은 추억으로 무의식적인 감정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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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