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 윗사람을 도와 어떤 일을 꾀하고 꾸미는 데에 참여함. 또는 그런 사람, 주모자의 측근에서 활동하는, 지모가 뛰어난 사람]
[비선: 몰래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음. 또는 그런 관계,권력을 가진 자의 배후에서 은밀히 실제 권한을 행사하는 자를 이르는 말]
고려,조선시대를 망론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측근들은 있어왔다. 올바르게 왕을 보필하여 사심없이 국정을 이끈 책략가도 있지만, 스스로 국정을 농단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탐욕스러운 모략가도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을 움직여 역사를 바꾼 참모와 비선의 실체, 고려시대 13인과 조선시대 18인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고려시대 신라 출신의 왕자였던 궁예는 관심법으로 많은 이들을 죽였다. 그의 두 아들(청광보살, 신광보살이라 신격화한 두 아들)도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등 광포함을 일삼았다. 어느날, 궁예는 왕건이 반역을 모의한다고 생각해 그를 따로 부른다. 이에 왕건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항변한다. 곁에서 보고 있던 장주 최응이 일부러 붓을 떨어 뜨리고 뜰에 내려와서 붓을 줍는 척하며 왕건에게 귓속말을 하는데, 궁예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것이였다. 최응의 말에. 왕건은 반역을 꾀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답한다. 이에 궁예는 오히려 왕건의 태도가 정직하다며 금은장식을 하사한다.
궁예의 관심법에서 왕건은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도움을 주었던 참모 최응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최응은 대부분의 시간을 궁예와 함께 있었던 궁예의 사람이었으나,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이는 그에게 더이상의 충성은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 그렇게 왕건의 목숨을 구한 최응은 궁예가 쫓겨나 사살당한 이후 왕건의 신임을 얻어 20살이라는 나이에 높은 관직의 실무 책임자로 오르게 된다.
궁예를 따르던 충성스런 신하인 임춘길, 이흔암은 궁예가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공주성을 버리고 철원으로 올라온다. 이들은 모두 복지겸에게 발각되어 저자거리에서 목이 내 걸리는 운명에 처하지만, 궁예의 사람으로써 한때는 온화한 정치를 펼쳤던 궁예의 몇 안되는 측근으로 역사에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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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위한 역사를 공부하거나, 인문학의 열풍으로 한국사를 가까이 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한국사는 역사 속의 승자들을 기록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중요 인물들을 배제한 참모들이나 책략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왕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왕을 움직여 역사를 바꾼 참모들의 이야기는 시대상을 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서에서 빼놓지 않고 읽어봐야 한다.
이 책은 중요 인물 들을 넘어 조연을 마다 하지 않았던 참모, 그들의 이야기라 더 매력적이다.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왕의 자리에 오른 그들의 옆자리에서 보좌한 이야기들, 왕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발휘한 참모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불과 4년 전 비선 실세로 나라가 온통 떠들석 했을 때, 미래역사에 왕의 측근, 진정한 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이야기일 수 있다. 인물은 바뀌지만, 역사의 흐름은 돌고 도는 것이니 말이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있다. 이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