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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평점 :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채사장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왠지 나는 그가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능청스러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의 방송은 재미있었다. 설명을 잘했고, 주제를 꿰뚫는 통찰력도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가 책을 쓰고 잘 팔리는 게 싫었다. TV에 나오는 학원 강사들이 지식인인 척하면서 명성을 얻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자기 연구 결과도 아니면서 잘난 척에 내용도 부실하다고 생각했다. 채사장의 책 ‘지대넓얕‘과 ‘시민의 교양‘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저명한 저술의 요약본이고, 상품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은 재미있었지만 감동적이지 않았다.
‘열한 계단‘은 계단을 오르는 이야기이고, 집을 떠나는 이야기이고, 질문하고 답변하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계속 질문한다. 나는 누구이고 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적과 흑의 영웅이었다가, 종교인이었다가, 이상적 인간을 꿈꾸지만 좌절한 이였다가, 죽음을 직면한 사람이었다가,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존재가 된다. 세상은 ‘나‘를 핍박하는 냉혹한 현실이었다가, 나를 구원하는 신이었다가, 이상을 꺾었다가,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세상은 ‘나‘가 된다. ‘나‘는 세상이 된다. 나는 내 내부에 갇혀있다.
어려서부터 갑갑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나‘가 없다면 세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에게 내가 알게 된 것을 말했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리학 책을 보며 생각했다. 가시광선 이외의 전자기파를 감지하는 존재는 나와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겠구나. 객관적 실체는 없구나. 나는 내 안에 갇혔구나.
나는 나를 깨고 나갈 수 없다. 한 걸음 깨고 나갔다고 믿으면 그 순간 그곳 역시 내가 된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어디까지를 이해하는지 그 경계가 보이지 않는 까닭에 우리는 자신의 제한된 이해만으로 만족스럽게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불행한 일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너무 갑갑하다.
채사장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나를 돌아보았다. 채사장의 마음에 닿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