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사실 그 최선의 노력이 미쳐가는 길이었다. 허상과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확실한 앎을 찾아간 수학자의 비극적 이야기. 나는 허상 속을 산다. 그러나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허상 속을 살고 있기 때문에 미쳤다는 것이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다.
글쓴이는 이나가키 에미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50세 퇴직. 현재 무직. 아프로 헤어. 제목과는 다르게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는 책이다. 아아 돈을 벌러 가고 싶다. 그런 게 아니고 업무 영역 안에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신나게 해버리고 싶다는 느낌. 회사가 주는 당근과 채찍(월급과 인사)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 그러니까 회사로부터 ‘자립’하라는 것이 글쓴이의 메시지다. 예전 직장 동료가 말했다. ‘나는 상사가 조금도 무섭지 않아. 나를 때리진 않잖아. 나는 때리는 것만 무서워.’ 아. 그런 거였군. 어차피 나를 때릴 수는 없어. 의연한 마음을 가지면 자립할 수 있다. 직장 생활 9년차. 이 진리를 깨달았다 까먹었다 한다.
일이란 자고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터키의 역사를 다룬다.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으로 이어지는 유목 민족 제국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터키의 형성 과정을 알 수 있다. 흉노, 돌궐은 중국과 실크로드를 두고 패권을 다투는 거대 제국이었고 셀주크와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하고 함락시킨 강성한 국가였다.학창시절 배운 세계사는 중국과 유럽 중심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 위주로 돌아갔고 흉노나 돌궐은 중국을 약탈하는 오랑캐로 등장했다. 유럽사에서도 비잔틴제국을 위협하는 이슬람 세력으로 셀주크나 오스만이 뜬금없이 등장하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접하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세계’는 ‘미국’과 동의어로 쓰인다. 중앙아시아는 ‘세계’에서 제외됐다. 그들은 테러를 일삼는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자 노력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언론에 등장한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가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한다고 생각해 왔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가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일지도.
“내 친구는 교감 승진 준비 하는데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가 봐. 잘 때 이를 악 다물고 자서 입을 못 벌리게 됐대. 이제 잘 때는 마우스 피스를 낀다더라구.”“예, 저는 5년 전부터 마우스 피스 끼고 잡니다.”나는, 그리고 내 남편은 밤마다 마우스 피스를 낀다. 둘이서 격투를 벌이는 것은 아니다. 마우스 피스는 윗니에 꼭 맞게 성형한 고체 덩어리이다. 물고 자면 잘 때 이를 갈거나 이를 꽉 다물면서 생기는 턱관절 이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남편은 최근 몇 달 전부터 마우스 피스를 끼고 잔다. 어렸을 적부터 이가 참 고른 편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부러워 했을 정도였단다. 이가 삐뚤어지기 시작한 건 군대 시절부터라고. 제대 이후에도 치아가 조금씩 틀어졌고 지금은 보기 싫을 만큼은 아니지만 특별히 치아가 고른 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남편은 이를 가는데 이갈이가 치아가 삐뚤어진 원인인지 결과인지, 무관한지는 모르겠다. 나는 30살을 맞이하는 겨울에 턱관절 이상이 생겼다. 턱에 통증이 생겼고 어중간하게 입을 벌린 채로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미 허리는 25살 때 디스크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때가 교사 임용을 준비하던 첫해였다. 척추부터 몸이 다 틀어져 버려서 결국 턱까지 망가진 걸까. 그때 나는 자다가 깨 보면 어금니를 악 다물고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낸 듯이 악 다물고 있었다. 마우스 피스를 끼면 비위가 상한다. 별 생각 없이 물고 있다가도 혀 끝에 피스 끝이 닿으면 우웩 구역질이 나온다. 구역질이 난다. 끔찍한 턱관절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구역질을 참는다. 이 책은 구역질 나는 현실의 대안으로 공무원을 택한 이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그리고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살길을 찾아 나서기보다 협력과 연대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는 청소 노동자이다. 40대 시절 잠깐 만 원 짜리를 잔돈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와 남편의 죽음 이후 엄마는 평생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로 산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청소를 한다. 같은 구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일을 하도 덤터기 씌워서 다른 용역 업체로 옮기고 청소 구역을 바꿨다. 엄마는 어금니쪽이 많이 상해서 아예 발치를 했다. 부분 틀니를 맞췄지만 불편하다고 잘 안하신다. 남은 치아들이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다.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구취도 심해졌다. 가난과 고생은 치아에서 표시가 나나보다. 지난 주 월요일 엄마를 만났다. 한정식집에 갔고 엄마의 이직을 위해 이것저것 서류를 함께 뗐다. 저녁으로 엄마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오랜만의 호사에 엄마가 감격이라도 하신 걸까. 엄마가 나를 칭찬하셨다. 참 어렵게 자랐는데도 너는 남 탓을 안 했다고. 한 번도 남 탓을 안 했다고. 사실이다. 학비를 못 내 수업 중에 학교 행정실에 불려가는 수모를 중학생 때 겪었어도, 돈이 없어 수학 여행을 못 갔고 대체 수업 중에 학교 폭력을 당했어도,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1년을 휴학했고 사회 생활 시작할 때 학자금 대출 2000만원을 떠 안고 있었어도. 나는 남 탓을 하지 않았다. 내 탓을 한 적도 없다. 그냥 생각하고 느끼는 신체 기능을 마비시키고 살아왔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을 거다. 최근 몇 년 내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는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갖고 싶은 것도 없다. 쓸 데 없는 데에 열 올리는 일도 없다. 나는 그냥 살아 있을 뿐이다. 내 몸이 보내는 감각, 감정의 신호들을 오래오래 무시하며 지내왔다. 내가 끼고 있는 마우스 피스가 그 결과인가. 나는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