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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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65만 부 판매, 전 세계 1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네덜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하나 베르부츠의 흥미진진한 소설로 현재 TV 드라마로 각색 중이라는데 어떻게 제작될지 궁금하다. 소셜 미디어의 유해성에 주목해 유해 콘텐츠를 찾고 지우는 사람들을 둘러싼 이야기로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이 될 것 같다.


시작은 성은 모르는 이름이 케일리의 자기 고백적 내레이션을 듣다가 문득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적절한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냥 나는 그랬다. 반인륜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히틀러가 시키니까 한 것뿐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했던 아돌프 아이히만과 닮았다.


케일리의 고백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다 헥사에 흘러들고 그곳에서 눈뜨고는 보기 어려운 콘텐츠들을 하루 종일 눈을 크게 뜨고 검열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 콘텐츠들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결국 뇌 회로가 정지된(케일리의 표현 대로) 채 뭘 하는지도 모른 채 그것들을 놔둘지 삭제할지 가이드를 찾는 동안 유해성이나 죄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시키는 대로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핑계로 들렸다. 시작은 어쨌거나 그랬다.


"사랑은 감정과 행동으로 채우는 포인트 적립 카드가 아니라, 욕망과 두려움의 합산 같은 거라서." 71쪽


그런가, 사랑은? 여하튼 '유해'한 콘텐츠를 종일 들여다 봐야 하는 감수팀 사람들의 고난도 노동 착취 현장의 탐사 같은 분위기에서 갑자기 사랑타령으로 장르가 바뀌어 버려서 은근히 김이 샜다. 좀 더 강렬한 것을 원했던가? 그래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저 케일리를 귀찮게 하는 부류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읽어가는 동안 헥사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가가 조금씩 달라진다. 늘 웃던 사람은 더 이상 웃지 않고, 잠을 자지 못하고 자더라도 악몽에 시달리더나 자주 깬다. 헥사 밖에 있었다면 무시하고 말았을 종교에 심취하기도 하고, 고층에 올라 선 사람만 봐도 놀라고 섹스에 탐닉하게 되는 일상의 경계가 흐리멍덩해져 가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는 찝찝함이 묻어난다.


"시흐리트가 무슨 꿈을 꿨는지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조차도 다시 떠올리기 싫은 것들뿐이었어요. 적어도 헥사의 책상에서 멀리 떨어진 캄캄한 밤에는 더더욱 생각하기 싫었죠."92쪽


그러다 시흐리트가 케일리를 떠났던 날이 하필 내 생일이라서, 그 이유가 홀로코스트라서 더 기분이 묘해졌다. 뭐랄까. 별안간 팽팽하던 줄이 뚝 끊어지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돼버린 것처럼 소설이 끝을 내버렸다.


유해성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케일리의 뇌가 기능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겠거니 하며 얼마간 멍해진 뇌로 추측할 뿐이다. 유해성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게 얼마나 심각한지 고발하는 데 그 상태로 연애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나도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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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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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사람들이�보지�못하는�부분을�나도�보지�못하는�게�다행일지도�모르겠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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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_끄적끄적
LUMELA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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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썼다는 시가 '똥' 이야기라서 작가가 매우 궁금했다. 아니 그의 정신 세계가 어쩌면 남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랄까. 작가 소개를 찾다가 똭! 등장한 그의 사진을 보니 그러겠다 싶었다. 보통 작가 소개에 걸치는 드레스 코드가 남달라서.


뭐 여하튼 궁금증은 확실히 끌었다. 근데 빛과 소금이 될 수는 있을까?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혼자 보며 여러 감정 기복에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눈물 몇 방울 날리며 부끄러워 해도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글들이라서 위안이 된달까.


그러다가 간혹 벽 뒤에 숨었다 깜짝 놀래려 튀어나오는 장난 꾸러기처럼 맞닥뜨리는 글에는 또 가슴이 철렁해지기도 해서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인이 되고픈, 많이 그런 것 같은 그의 바람대로 힐링이 되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시와 에세이와 그림 동화까지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내는 서툴지만 솔직한 그의 이야기에서 잠시 미소는 짓고 말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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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_끄적끄적
LUMELA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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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장르를�넘나들며�펼쳐내는�서툴지만�솔직한�그의�이야기에서�잠시�미소는�짓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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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나가오카 겐메이 시리즈
나가오카 겐메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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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가오카 겐메이는 디자인 활동가,라는 생소한 활동을 활발히 한다. 긴 호흡으로 사랑받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만드는 롱 라이프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등 다 수의 책을 썼고 국내에도 번역됐다. 이 책은 10년간 지속된 저자의 메일 매거진에서 엄선한 107가지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사람과 사람은 '기억한다' '인상에 남아 있다'는 아주 작은 연결로 인생을 엮어간다." 29쪽, 川久保玲さんに会いたくて絵かきになった話


관계를 '잇'는, 연결로의 의미로 보는 그의 시각을 보면서 내게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부족한 이 연결성을 생각해 본다. 혈연이 아니라면 롱 라이프인 친구 정도를 제외하면 어쩌다 맺는 관계가 대부분이고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을 피로하게 느끼는 편이라서 저자의 폭넓고 진심인 관계 맺기가 얼마간 기를 빨고 있다.


그리고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퇴사가 코 앞인 나를 뜨끔하게 하는 문장이 있는데 "사람이 들고 나는 일은 확실히 변화를 불러온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한다. 회사는 어디를 가든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이"다라는 것이다.


나도 잘 안다. 어느 회사든, 어떤 리더든 그 나물에 그 밥이란 거. 보통 리더끼리는 생각들이 고만고만 하니 어딜 가나 복붙일 거라서 자아실현 보장이 아니면 이직은 하나마나라는 걸. 그럼에도 마음 먹은 이유는 어딜 가나 같다면 이왕 하고 싶은 일이 낫지 않겠냐는 '브레이브'한 마음이 작동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76쪽, 早送り人生


요즘 사람들이 숏폼에 길들여져 책을 빨리 읽는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음악이나 영화를 빨리 감기 해서 본다는 건 몰랐다. 분명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닐 텐데.


아무래도 이런 세상에서 나는 세상이 빨라지니 속도를 맞추는 일에 점점 더 부침이 있고 아예 동떨어져 살 수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어 관계를 멀리하려 애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얼마간 느리게 살고 싶다.


'걷다'라는 동사가 주는 이미지는 확실히 동적인데, 이 책은 전혀 그러지 않다. 아주 느리고 조금씩 한 뼘 정도의 보폭으로 생각을 옮기는 수준이랄까. 몸을 움직이며 디자인을 쫓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다.


그렇게 예상과 달라서 ''이게 뭐지?'라며 좀 당황하기도 했지만 읽다 보니 생각을 걷는 거였다. 생각의 골목을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걷는 듯하여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싶었다.


"형식이나 신분, 연령, 첫 대면 등과는 상관 없이 눈앞에 있는 당신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싶다. (…) 이름으로 부르기는 '서로 아이로 돌아가 함께 놀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87쪽, 이름만으로 부르지 못한다


역시 문화의 차이일까. 이름만 부르면 친근한 관계라고 느끼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이름만 부르면 싸가지 없다거나 지구 반대 정도의 거리감을 느낀다. 심지어 반말이나 어느 정도의 욕지거리가 친근함의 척도로 여기는 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한국은 꽤 무례한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볼품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철학이 있으면 그곳에 소속되어 일하는 자신에게도 굳건한 철학이 흐른다. 기업이나 집단에는 역시 '철학'이 중심에, 척추처럼 존재했으면 좋겠다." 310쪽, 哲学.


이 책은 미적 감각으로 도배된 디자인 책과는 영 관계없는 이야기라서 디자인 팁을 얻으려 했다면 아니올시다 일 수 있겠다. 하지만 440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에 담긴 디자이너의 인생 철학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 인생을 디자인하는 책으로는 손색이 없지 않을까. 그의 미학이 아닌 철학 이야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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