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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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표지 그림에 한참 머문다. 프레데리크 그로, 프랑스 파리 12대학 정치철학 교수이자 철학자 그리고 미셀 푸코 연구자. 푸코가 그토록 사유했던 광기와 성(性)이 표지에 겹쳐진다. 그래서 흥미롭다.


"수치심은 우리 시대의 주된 정서고, 새로운 투쟁의 기표다. 이제 사람들은 불의에, 전횡에, 불평등에 고함치지 않는다. 다만 수치심에 울부짖는다." 11쪽, 서문


문득 어떻게 정의되는 감정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수치 羞恥 [명사]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표준국어대사전


저자가 피력한 루소가 느꼈다던 숨이 막히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그런 수치를 느낀 적이 아니 알아챈 적이 있던가, 생각한다. 그가 죄책감과는 다르다고 극구 부인한 데에 왠지 감사함을 느낀다.


그는 더 이상 수치심이 개인의 부정적 감정이 아닌 사회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낼 혁명적 감각들이라 주장하면서 수치심의 역사를 관통해 현대에 작동하는 궤적을 마치 탐사 보도처럼 세밀하고 시사성 높은 논의를 하게 한다.


집안 혹은 가문으로 불리는 집단적 수치심은 불명예를 동반하고 이를 통해 많은 부분을 잃는다. 즉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가문이 구설수에 오르는 순간 그들의 평판은 바닥을 칠 것이고 여기에 동반되는 수치심은 말 그대로 정상적인 가문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


이 설명은 종갓집으로 대변되는 양반가의 봉건주의 관습이 여전히 연결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집안 망신을 시킨다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담은 설명은 눈에 쏙들어 온다.


읽으면서 더 침묵하게 된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무심코 내뱉은 말 중에 어느 지점은 누군가에게 모욕적이거나 멸시처럼 느껴졌을지 모르고 그로 인해 그 누군가는 수치심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걸 확인하니 확 수치스럽다.


예를 들면 복지관을 찾은 누군가의 남루한 옷차림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서 퀴퀴한 냄새 나지 않아?"라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본인에게서 나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분명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은 용변을 가리지 못한 누군가가 지나친 직후였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수치심은 결코 순수하게 받아 들여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54쪽, 사회적 멸시


이어 가난을 '가벼워지고, 무중력을 더 얻는 것'이라는 디오게네스의 말은 부자들의 탐욕스러운 소유욕에 대한 한탄이고 혐오다. 그러면서 "스스로 가난을 가치 지향적으로 여기는데 누가 수치스러워 하겠냐"라는 디오게네스의 자신감은 몇 세기 지나면서 가난은 수치심을 동반한다.


"모욕적인 수직 체계에서 닥치는 대로 부당한 이유만 찾는다." 63쪽, 사회적 멸시


타인의 멸시가 자기 멸시로 바뀌는 데에 대한 이야기에 수치심을 생각한다. 애써 준비한 일이 시작하기도 전에 뒤틀렸다. 담당인 나와는 상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처리해 버렸다. 모욕감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관리자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수긍해야 하는 처지임을 자각하는 수밖에. 자로 잰듯한 수직 체계에서 난 숨길 야심도 없다.


111쪽, 사회적 사실: 근친상간, 강간(외상성 수치심)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할 법한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대한 억압적 폭력에 대한 설명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는 힘들면서도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주위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 힘의 논리의 배경에는 남성우월주의적 장치를 통한 사회적 합의나, 어쩌면 수치심에 휩쓸린 가족의 침묵 속에서 확대되는 만행이 근친상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공자가 신중함이라는 용어로 말한 것은 플라톤에게서 두려움이라는 말로 다시 연주된다. 화법은 두 가지이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여전히 수치심이다." 158쪽, 아이도스


줄곧 서양의 철학적 관점을 주로 다루다 보니 동양의 윤리적 관습에서 빚어지는 수치심과는 결이 다를 수 있을 수 있는 부분을 공자의 사상을 끌어와 자신의 견해를 보완한다.


이 책은 수치심이 개인이 느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사회정치적 판단이 함축된 감정임을 강조한다. 여기에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신학, 그리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면서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이 당해야 했던 부당함을 치밀하고 신랄하게 파고 든다. 어렵지만 많은 수치심을 깨닫게 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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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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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많은 수치심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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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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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청난 두께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표지에 반했다. 그리고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라는 소개에 한 번 더 반했다. 반백년을 넘는 세월 동안 인간과 자연의 유대를, 다른 존재를 착취하는 데 몰두하는 자본주의를 경고하는 그의 메시지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서문에서 저자가 펼쳐놓는 북극과 그 척박한 땅에 존재하는 것들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차디찬 땅의 것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온통 따뜻함 그 이외의 감각은 느낄 수 없다.


반면, 이 척박한 땅에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을 동시에 지켜보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석유 좀 뽑아내겠다고 알래스카의 얼음 밑을 관통하는 거대한 관을 박자고 일대를 초토화 시키는 일은 누구를 위함인가.


47쪽, 들어가며


이 신비한 땅을 향한 우리의 상상력을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흥미롭고 기대된다. 6월 21일의 낮과 밤은 12월 21일의 낮과 밤이 극지방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툰드라의 복잡한 생태계는 어떻게 멸종과 생존을 이뤄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신이 나서 침까지 튀며 떠드는 아이처럼 쉴 새 없이 이어간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 이를테면 태양에너지를 활용할 짧은 기간 혹은 시간 내에 환경 적응을 마쳐야 멸종을 당하지 않는 생태계에 대한 설명은 놀라워서 지식이 한 뼘 정도는 높아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할 말을 잃는다. 동물들이 본능으로 움직인다고 무심코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동기와 창의성이 있는지 의심스러워한다. 200만 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은 동물인 사향소의 진화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재치 있게 반응했든 둔하게 반응했든 간에 그 유장한 세월 동안 상당한 수가 계속해서 올바른 선택을 해왔다는 점이다." 118쪽, 사향소


126쪽, 사향소


이런 모든 이야기는 분명 쉽게 체험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더 빠져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환경이나 오지 탐험을 상상하는 탐험가 기질이 탑재된 독자라면 저자의 이야기에서 극지방의 오로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상력이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사라진 나는 논문을 읽는 느낌이 좀 많았다. 알잖은가. 논문은 쉽게 눈이 건조해지고 피로해져서 끝을 보기 쉽지 않았음을.


신비로운 큰 곰의 땅 아르크티코스를 넘어 툰드라의 검거나 황갈색인 사향소의 빙하기조차 뚫고 살아낸 평온하지만 강인한 생존력에 경탄했지만 결국 나의 여정은 여기서 멈췄다. 그럼에도 이 9개의 이야기는 충분히 신비하고 경외롭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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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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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9개의 이야기는 충분히 신비하고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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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톤즈 학교 -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우는 네 개의 메시지
구수환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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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를 읽다가 전혀 구수하지 않은 구수환 PD의 이력이 놀랐다.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행보는 故 이태석 신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그는 남은 생을 한 사제가 전한 네 개의 메시지, '참을 수 없는 이타심' '죽음을 잊은 용기' '헌신적인 실천' '섬기는 마음'을 세상에 알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한다.


故 이태석 신부를 잘 모른다. 개봉했던 <울지마 톤즈>도 TV 방영한 다큐멘터리도 보지 못했다. 그냥 아프리카 어디에서 봉사하다가 죽었다더라 정도로만 흘려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이 쓰였다.

내용은 어려운 가르침도 없고 이해 못 할 난해한 철학도 없다. 그런데도 눈앞이 자꾸 흐려지는 통에 책 한 장 넘기는 게 쉽지 않더니 결국 터져버렸다. <묵상> 때문에. 그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53쪽


난데없이 목이 부러져 보통의 삶을 살 수 없게 되고 십수 년을 재활에 전념했다. 그 덕에 어설프게나마 직립보행이 가능해지자 경계인이 됐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시선에 예리한 날을 세워야 살 수 있었다.


그때 가끔 다니던 성당 청년부 행사에서 우연히 귀에 꽂힌 노래가 묵상이다. 갓등 중창단의 <내 발을 씻기신 예수> 앨범 중 한 곡이었다. 견디기 힘들 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그때의 나 역시 매일 눈물로 그분께 질문했었다. 다만 세계 평화가 아니라 왜 하필 나냐고 원망을 쏟아 냈었다. 펄펄 날던 스무 살 내 날개를 왜 꺾어야만 했냐고. 내게 세계 평화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 노래로 얼마간 시원하게 울 수 있었다.


"쫄리 신부님은 우리의 예수님이었습니다." 116쪽, 자신의 삶을 바쳐


내전으로 서로 죽이겠다고 총부리를 겨누던 이들이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사제 앞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순한 양이 돼서 웃고 떠들었다는 이야기가 신화처럼 들린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현신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종교적 신념을 떠나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대우하는 것, 삶이 결핍으로 뒤덮여 있더라도 그저 불쌍함만으로 동정하지 않는,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대하는 사제는 톤즈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기를 위하면 즐거운 것이고, 모두를 위하면 기쁜 것이다. 자기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즐거움을 주고,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은 기쁨을 준다. 즐거움이 오래가면 없던 병이 생기지만, 기쁨이 오래가면 있던 병도 사라진다." 96쪽


도통 사는 게 즐거울 것이 없다고,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시간이 머리에서 쿵 소리가 나고 난데없이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복지 현장, 그것도 장판이라는 장애인복지를 십 년을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남을 위해 한 일이 뭐라도 있던가. 기쁨은 고사하고 웃음기 띤 진심이 있었나. 어지러워 눈물 났다.


103쪽, 일그러진 발을 만지는 신부


한센인을 생각하는 이 신부의 마음을 통해 대한민국 복지 현실을 꼬집는 저자의 일침이 그래서 더 마음 쓰였다. 나는 누구고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것인지.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가 죽어도 절대 울지 않는 톤즈 사람들에게 피부색도 다른 한 사제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더듬어 가는 내용은 옆에서 생생하게 직관하는 것 같았다. 마치 톤즈의 통곡이 들리는 듯했다.


227쪽,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어지는 '이태석 리더십' 내용 중 경청과 관련해 정치인들 낯짝 두꺼운 이야기에 공감이 훅 밀려들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정치인들이  복지관을 습격하듯 예고 없이 방문하는데 수행원 둘셋은 기본으로 딸려 온다.


그저 표심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들은 이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쳐 악수 한 번에 명함 한 장 돌리고 잽싸게 빠져나가는 일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모른다. 선거철만 되면 매번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이런 작태는 리더십이라곤 개미 오줌만큼도 없다. 이들에게 이태석 리더십을 배우라 명령하고 싶다.


이 책은 한 종교인에 얽힌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많이 아쉬운 책이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존중하고 대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리더십에 관한 책이자 인생 지침서다. 개인주의로 포장된 이기주의가 판치는 현실에서 오만가지 깨달음을 준다. 강력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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