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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상한 밴쿠버의 앨리스
장윤정 지음 / 좋은땅 / 2024년 6월
평점 :
서평을 시작 전 독자로서 프롤로그를 쓰는 건 난생처음이지만(저자도 에필로그에 밝혔듯 다른 생각을 환영한다 했으므로), 이 책을 읽으며 온전히 개인으로 집중할 수 없었으며 강제로 부모의 입장이 소환되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불편했음을 밝히며, 이 책을 읽을 그의 부모가 부디 그를 응원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하는 양가감정에 혼란스러웠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나는 90%가량이 부모의 입장으로 이 책을 읽었다.
‘앨리스’라는 이름은 모험이란 단어를 자동 재생 시키는 마법이 있는가? 제목을 보는 순간 얼마간 모험 가득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괘씸하기까지 한 그의 모험을 환영하지 못했다.
저자 장윤정은 서울 태생으로 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밴쿠버의 소문난 애주가라니 그렇다면 캐나다에서 영어를? 어쨌든 그는 96년 생, MZ다. 분명 나와는 다른 세포로 움직이는 인류가 분명하다.
“For life as a stranger.” 첫 장,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위하여'라는 문장은 그의 삶의 모토일까? 궁금증을 일으키는 그의 삶을 대하는 이방인의 자세는 무엇일까 싶어 낯선 저 문장이 갈빗대 사이 어디쯤 박혀 나는 한참 머뭇댔다.
표준의 삶이 답답했다던 그가 계획도 목표도 없이 거꾸로 살아보려 시도한 인생 실험의 날, 6월 6일은 내가 그동안 익숙하게 살았던 삶의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을 개척해야 했던, 그 악몽 같던 날과 같다. 나는 그날 장애인이 되었고, 막 살던 삶에서 없던 계획과 목표를 만들어야만 살아낼 수 있었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이 시작된 건 아닐까. 자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다르지만.
“그래서 얼어있던 마음도 해동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아무도 나를 모른다. 그러므로 무슨 선택이든 순전히 자의로 내린 나만의 선택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에.” 13쪽, You Poor Thing
방에서 뒹구는 그와 비슷한 또래인 딸애가 떠올랐다. 딸애는 어떨까? 지금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선택이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굳이 밝히지 않아도 뻔히 알게 되는 '부모'라는 게 은근 화가 났다.
그 선택을 위해 뒷바라지 하는 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알아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싶을 만큼 숨통을 조이고 있었나 싶어 그의 문장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서운했다.
그리고 줄곧 불쾌한 심정이 되고 있다. ‘안전함’을 주는 가정이 '철창 감옥이 되었다'라는 그의 표현이나 빗장 풀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위험한 음주 가무의 연속이라서. 게다가 납치와 감금 심지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들을 이렇게 억눌린 화초에 대한 반항 정도로 치부하는지 속이 상했다. 그 안전한 가정을 만드느라 헌신하는, 가여운 건 그가 아니라 그의 부모가 아닐까.
줄곧 ‘실험 정신’이라는 말로 포장한 그의 위태롭고 정신 나간 짓들을 보고 있노라니 심장 박동이 거세지고 있다. 이 치기 어린 행동이 어떤 결말로 치닫을 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인 실험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차마 응원하는 마음이 들지 않고 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반드시 내게 보상해 준다는 것,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냥 가면 된다는 것, 그러니 이러나 저러나 내 인생을 사랑할 것." 68쪽, Good Girl Gone Bad
과연 지금은 여전히 저 때의 일들을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믿는지 묻고 싶다. 범생의 삶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고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지 않았을까? 미래에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이 그려지진 않더라도 성공이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저 자신은 원하지 않았다며 남 탓(아마 부모 탓이겠지만)으로 돌리는 이 이야기가 본인은 원하지도 않는 뒷바라지에 영혼을 갈아 넣으며 고생한 부모의 안쓰러움에 집중하게 된다. 이 철없는 아가씨를 앨리스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개뿔, 자아 찾기는 무슨.
물론 자신의 욕망으로 자식을 조종하는 부모가 없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욕망보다는 의무감에 헌신한다. 헌신에 대한 보상? 그 역시 욕망이 철철 넘치는 몇몇 부모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보통의 부모는 자식이 덜 힘들고 많이 행복하길 바란다.
78쪽, 실험 1/3 보고서
그의 이야기는 이해는 되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 아니 그 반댄가? 어쨌든 사랑한다면 스스로 상처 내지 않는 선택이 옳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경험으로 포장하는 모험은 일탈하고픈 핑계로만 들린다.
"뜻이 있다면 항상 길이 있는 법이고, 최악의 시나리오도 알고 보면 그다지 별것도 아니었다. 가끔씩 혹은 꽤나 자주 스스로를 걱정에 가두는 유일한 감옥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 실패나 실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92쪽, 실험 1/2 보고서
위태위태하던 그의 실험이 다시 범생의 모습을 갖추자 오히려 안심이 느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보수적인 부모임을 확인받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그래도 한시름 놓게 된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깨달음인 완전히 내려놓지 않으면 걱정할게 없다는, 그래서 지금은 웬만해선 놀랄 만큼 걱정하지 않는 삶이 됐다는 말이 단단해진 그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어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그리 험한 인생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었나 묻고도 싶지만 어쨌거나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은 분명하다.
118쪽, An End Equals Beginnig
어쨌거나 무모하기만 했던 이 기행이 끝났다는 것이 다행이라 느낄 만큼 그의 일 년에 깊이 빠져든 시간이었다. 안타깝고 측은하면서 불편했던 감정들로 책을 덮을까 갈등도 있었지만 끝을 보니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남긴 '그저 충실하게 삶을 사랑하며 산다'라는 말을 말 그대로 물끄러미 보고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던 자신을 진정 사랑한다면 모험이란 틀에 자신을 몰아 넣질 않길 바란다. 솔직히 그의 1년은 술, 남자, 섹스만 읽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