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말을 듣는 눈 - 법의학,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죽음의 시간 드레의 창
나주영 지음 / 드레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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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대 법의학 교수이자 법의학 연구소 소장인 저자가 산자의 시선으로 죽은 자를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법의학'의 시선에서 인간에 관한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한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억울함에 대한 해결이 아니고, 더구나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말하고 싶었고, 심지어 법의학은 인권 옹호의 권리 존중 의학이라 힘주어 말하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한데 문득 죽은 자의 인권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들었다. ​


덧붙여 그가 하는 죽은 사람을 진료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의료 행위라는 말에서 '아직' 살아 있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듬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이 든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는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이기에 인간을 이야기하려면 죽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인간인 이유는 우리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법의학은 인간의 죽음을 공부하기에 가장 적합한 학문이다. 실재적으로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18쪽


저자는 많은 분량을 할애해 법의학의 분야에는 어떤 것이 있고 법의학자는 몇 명이나 있으며,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법의학과 관련한 이론적 분야를 한참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한데 이런 이야기가 모르는 분야라서 분명 흥미롭긴 한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이런 이론적 배경이나 필요성 등은 논문이 아닌 다음에야 몰입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 되려 달아오른 흥미와 기대를 냉장고를 뒤집어 씌운 것처럼 순간적으로 식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24쪽


이후 다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데 다름 아닌 '부검'에 얽힌 이야기다. 보통 드라마나 뉴스 혹은 다큐에서나 듣보게 되는 부검은 영장 집행과 유가족 동의가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법적 부검은 유가족 동의가 무시된다고 하니 얼마간 놀랐다.


특히 국가가 책임지고 밝혀야 하는 변사에 11가지나 있다는 것이고, 그중 8번째 평소 건강해 보였으나 갑자기 죽는 청장년 및 노인 사망에서 '노인'이 포함된다는 게 확실히 의외다. 보통 사람들에게  노인의 돌연사는 어쩌면 당장 오늘 어떻게 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또, 생소한 단어인 두벌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제대로 읽혀 많이 공감된다. 부검은 "제대로 죽음의 사인을 밝히는 일 그래서 망자의 죽음을 산자의 앞날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는 일"이라는 말에 설득되지 않을 수 없다.


이어진 이야기로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의 죽음에 대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을 알고 나니 종이 한 장이 엄청 다른 무게를 지녔다는 것이 생소하지만 한편으로 공감하게 했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에 대한 출생과 낙태에 대한 이야기는 한참 생각해 보게 한다.


98쪽


마음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실제 하는 심장에 얽힌 내용과 그 심장을 막 빼낸 것처럼 들고 있는 엔리케 시모네의 그림 <부검>을 보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마음 편하게 감상하긴 쉽지 않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노인들로, 그분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려는 이유를 듣고 그 사유가 슬펐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하려는 이유는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는 뜻이 아니라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137쪽


저자는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언급하는데 몇 년 전 친구가 의식이 없는 노모의 상태를 보며 초췌해져 가는 모습이 기억이 났다.


저자의 말처럼 치료를 중단하자니 몹쓸 자식이 되는 것 같고 주렁주렁 달린 기계에 의지해 연명하는 노모를 지켜 보자니 몹쓸 자식은 안 되더라도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일이다.


친구는 결국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했지만 아무도 친구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할 만큼 했다."라는 위로였는데 어디까지가 할 만큼 인지 생각하게 된다. 남은 인생 동안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면 된 것일까?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빚이 쌓이기 전에 조금 더 빨리 중단했다면 할 만큼 하지 않았던 걸까?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작성한다"라던 노인들의 마음을 슬퍼해야 하는 이유는 돌봄이 오롯이 개인의 몫인 것처럼 그래야 효자, 효부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효를 중시하는 훌륭한 문화처럼 만드는 국가의 돌봄 시스템의 문제에 있다는 것이다. 설령 가족 돌봄이라도 돌봄은 개인이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말았으면 싶다.


알 수 없는 분야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홀딱 빠져들게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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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말을 듣는 눈 - 법의학,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죽음의 시간 드레의 창
나주영 지음 / 드레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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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분야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홀딱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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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특별해요 - 자연과 야생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두 거장의 만남
니콜라 데이비스 지음, 뻬뜨르 호라체크 그림, 조경실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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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밤하늘을 푸른 빛으로 유영하는 고래 표지에 넋이 나갔다. 고래는 아무래도 상상력을 말랑하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그렇게 우영우를 사로잡던 고래가 날아 오른다.


글 쓴 니콜라스 데이비스는 동물학을 전공한 아동 작가로 아동도서에 기여한 공로로 여러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고, 그림 그린 뻬뜨르 호라체크 역시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국제적인 그림작가이면서 일러스트 강사다. 이런 거장들의 콜라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엄청 자극하지 않을까.


15쪽


숨 막히게 멋진 그림도 그림이지만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세 발 고양이와 다섯 발 개의 대화는 눈끝이 시리다. "너만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라는 말은 이 세상 모든 다름에 대한 위로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그림은 강렬하게 기억에 박히고, 시적 메시지를 가득 담은 글은 뭉클한 것이 가슴에 꽂힌다. 세상 모든 존재가 소중한 것처럼 이 책 역시 모두에게 소중할 것이다. 사자가 곰이 천산갑이 어떻게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지 통찰력 있게 알려준다.




거친 듯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붓 터치가 사자, 천산갑, 고래, 나방, 개, 말코손바닥사슴, 박쥐, 까마귀, 잉어, 얼룩말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살아 숨 쉬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 속에서 생명력을 오롯이 빛나게 하는 힘은 서로 교감하고 알아채고 어우러져 위로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말랑말랑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경이로움을 줄만한 책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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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특별해요 - 자연과 야생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두 거장의 만남
니콜라 데이비스 지음, 뻬뜨르 호라체크 그림, 조경실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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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경이로움을 줄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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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식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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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세상에서 풀면 척 답을 내놓는 수학 공식처럼 인생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인생도 그런 공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 제목이다.


상담과 집필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며 긍정 바이러스를 전파했던 상담가 故양순자 선생이 65세에 쓴 <인생 9단>을 재발행했다. 그는 10년 전, 대장암으로 73세에, 삽화를 그린 둘째 사위였던 박용인 작가 역시 작년에 생을 마감했다 한다. <어른 공부>에 이어 읽게 된 그의 두 번째 책으로 아마 기억에 오래 남겠다.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단 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그냥 늙은 거야. '어른'이 아니고 그냥 '늙은이'란 거지.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식을 잘 버무려서 소화를 해야 자꾸 성숙해지는데, 그걸 못했으니까 고집불통에다가 욕심만 많은 늙은이가 돼버리는 거라." 25쪽


나이 듦에 대한 작가의 조언에 마음이 덜컹했다. 젊음에 방황이 있다면, 나이 듦엔 지혜가 있다는 말에 이미 반백이 되도록 병아리 오줌만큼도 지혜 모으지 못한 채 그냥 늙어버리기만 한 것 같아서 속이 씁쓸하다.


33쪽


빵만 먹고 후다닥 도망쳐 버린 어설픈 도둑 이야기에 울컥해져 버렸다. "재수 없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뿐이야. 매일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인데, 그게 당신만 비켜 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냐며 나한테도 왔네" 하고 담담히 받아 들이라는 말에 꼭 34년 전, 뜬금없이 장애를 입고 허우적대던 내 마음이 기억났다. 그때도 지금도 사고나 질병 기타 그밖에 수많은 이유로 장애는 누군가에게 찾아가고 있었을 텐데 그걸 모르고 왜 하필 나냐고 징징댔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덜 힘들어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때의 내가 순간 위로 받았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한참을, 정말 한참을 한 문장에서 멈췄다가 결국 눈이 흐려져 책을 잠시 덮어야 했다. 사람이 일생에 단 한번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그랬다. 늘 행복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불행하다고 세뇌하고 사는 건 아닐까. 복지관에서 삶이 고달픈 이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면서도 나는 행복을 모른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소 하나에도 인생 단수를 생각하는 그의 말이, 인생 단수를 올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버리는 연습을 자꾸 하라는 말이나, 하루 종일 칭얼대는 아이가 있으면 같이 있는 엄마나 아빠가 힘들고 진 빠지겠다 생각했지 칭얼대는 아이도 같이 힘들 거라는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이 남다르다.


또, 감옥 안의 사형수와 감옥 밖의 사형수는 삶의 결과는 같아도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는 말을 그냥 넘기기 어렵다. 결국 삶의 집착이 문제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후회가 없다는 말도 다 옳지 않은가. 인생이 윤회한다는 것이 지지고 볶더라도 뭔가 부족한 채 살면서 채워가는 게 재미있는 것이지 통달하거나 해탈하는 건 재미없다는 철학이 깊은 울림을 준다. 게다가 사랑은 일회용 반창고 같은 거고, 어차피 변하는 거라서 단맛만 본 사람보다 쓴맛까지 다 본 사람이 제대로니 굳이 목에 핏대 올리고 이러쿵 저러쿵 해봐야 머리만 아플 거라는 충고는 사랑에 목메는 이들에게 아주 땡큐겠다.


101쪽


"간혹 심장을 빼다가 어디 햇볕에 말려 놓은 놈들도 있다."라는 사이다 같은 말은 무개념 인간들 이마를 콕콕 짚으며 혼을 내는 작가를 보는 것 같다. 또, 용서는 남이 하자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서 그래도 되겠다고 해줘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와닿는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인생살이가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석 달 열흘이라도 하겠는데, 그럴수록 더 힘들어지잖아. 내가 인생의 공식이라고 들고나온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야. 힘들고 만만치 않은 당신의 인생살이를 조금이나마 살 만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만만하고 쉽다면 뭣 하러 공식 따위를 만들어서 들고나왔겠어?" 210쪽


이 책은 인생, 사랑, 가족 공식의 3가지 주제로 사랑, 결혼, 이별, 미움, 시기, 복수, 배신 등 누구나 삶에서 꼬일 법한 일들을 65년 작가의 인생 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래서 누구나 인생에서 좌절하고 무릎 꿇게 되는 순간에 쿨한 돌직구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따뜻하기도 해서 너무너무 좋다. 내 인생 책장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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