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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판사, 나쁜 판사
류기인 지음 / 펜타클 / 2026년 8월
평점 :

드라마 <소년심판>, <참교육>이 한동안 뜨거웠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보지 않았다. 관심은 있지만 아이들의 촉법 범죄와 학교폭력을 자극적으로 시청자에게 '사이다'로만 각인시키는 게 달갑지 않았다.
아이들의 비행을 눈에 담지 못할 정도로 극악무도하게 만들고, 해결한다면서 또 다른 폭력이 난무한다. 시청자는 폭력으로 제압되는 비행 청소년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대리만족이랄까…. 그 안에 아이들은 없고 애초에 범죄자만 있는 것 같아 예고편만으로도 아주 불편해지던 드라마였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을 다루는(?) 소년법정 판사의 이야기다.
사법연수원 29기 출신의 류기인 판사는 처음부터 법원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무 경력을 쌓은 뒤 판사로 임용됐다. 그런 이력이 사건 기록 너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태도의 밑바탕이 됐다. 2020년에는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장을 거쳐 2022년 2월부터는 전국에서 소년보호사건이 가장 많이 몰리는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를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판결문 한 장만으로는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지론으로, 판사와 국선보조인, 법원 직원 등 이른바 어른과 보호 처분을 받은 소년과 1 대 1로 짝을 이루어 함께 걷는 '걷기학교'를 직접 만들어 운영한다.

저자는 '선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 벌어진 비행이 내일 더 큰 비행으로 자라나지 않게 막아보려는 마지막 시도"라고. 법의 한계를 교묘히 이용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방관 혹은 포기한 부모, 혹시 모를 불똥을 피하려는 학교와 교사 사이에서 아이들의 비행은 끝도 없이 치솟고 결국 인생이 추락하고 나서야 멈추는 게 보통 아닐까.

57쪽
이런 아이들의 보호 처분이 10단계나 있다는 것도, 판사가 아이들이 법정을 나선 후 있어야 할 환경까지 두루 살핀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이 책은 저자가 소년부에서 보낸 5년의 기록이다. 가급적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애썼던 초창기 마음과는 달리 법정에서 재차 마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마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냉정한 선처', 때로는 소년원에 보내는 무거운 처분이야말로 벼랑 끝으로 치닫는 아이의 삶을 멈춰 세우는 진짜 선처일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아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잘못을 가볍게 넘기지도 않는다.' 신념을 세운다.
이와 관련해 판결 이후 달라져 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소년원에서 제빵을 배우던 한 아이의 편지부터 학교폭력 피해를 겪고도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또래를 위해 모아둔 용돈 200만 원을 선뜻 내놓은 열다섯 살 아이의 사연까지 곳곳에서 마음을 흔드는 아이들을 만난다.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는 것 마냥 정신없이 빠져 읽다가 픽, 하고 웃었다. 이 양반이 아무리 판사라지만 세상 물정을 이리도 모르다니. 술을 사다 달라는 중학생에게 꼰대 노릇한 이야기는 순간 이 양반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싶었다. 요즘 아이들 무서운 걸 모르다니. 아슬아슬한 판사다.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덜 무거웠으면 좋겠다." 113쪽
아이들과 걷기 학교와 평산 책방을 통해 기적 같은 변화를 보이는 이야기에 마음이 찡했다. 저자가 말하는 집이 꼭 가정이 아니라도 그곳만이 주는 따뜻함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온기가 가득했으면 하는 소망도 함께.
아이들 이야기와 함께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전국 1위의 업무량을 털어놓는데 그의 영혼도 함께 털리는 고단함이 활자에 고스란히 담겨서 이래도 되나 싶다. 봐야 할 환자가 밀려드니 어쩔 수 없다는 의사의 1분 진료 컷과 별반 다르지 않은가. 그나저나 의사들은 입만 열면 업무량이 과중해 죽겠다고 볼멘소리를 해대면서 의사를 늘리자고 하면 왜 죽기 살기로 반대를 하는 걸까? 법조인도 그러나?

136쪽
"법대 위에서 사건의 시작과 끝을 모두 마주하는 판사의 역할은 그 분노를 기계적으로 집행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년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장의 응징을 넘어, 이 아이가 다시는 다른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는 평범한 이웃으로 자라나도록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 고민하는 데 있다." 181쪽
그리고 인공지능이 고도화되면서 사라질 직업에 늘 빠지지 않는 직업이 판사인데, 한 사람의 인생이 결판나는 판결이 아이에 대한 이해와 진심 없이 과연 판례라는 데이터로만 결정돼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뇌리에 길게 남는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것은 판결은 제목처럼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를 무조건 봐주는 것이 착한 판결도 아니고, 무겁게 처분하는 것도 나쁜 판결도 아니라는 것. 또 비행의 길로 내몰린 아이들 뒤에는 대개 방치하거나 억압한 어른들이 있으며, 진짜 선의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잘못 앞에서 눈 감지 않는, 심판보다 동행이 먼저라는 것을 담는다.
읽으면서 다행이다 싶은 것 하나는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인간과 재판 거래하는 모 판사나, 정치적 욕망 가득한 모 대법원장 같은 판사만 있는 건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된 책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